우리는 팬데믹이 없었다면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또는 그보다 먼 미래에 일어날 법한 일들이 2, 3년 만에 벌어지는 초가속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관점에서 보면, 21세기의 진정한 시작은 2000년이 아니고 2020년이라고 주장해 볼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이제 궁금해집니다. 지난 5년에서 10년 동안 잠잠했었던 트렌드들 가운데 과연 어떤 트렌드가 가속화될 것인가?
--- pp.10-11
지난 100년 동안 뇌과학이 발견한 가장 놀라운 결과 가운데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내용이 모두 틀렸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뇌가 만들어 낸 착시 현상입니다. (…)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은 세상의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인풋(input)이 아니라, 우리 뇌의 해석을 거친 결과물, 즉 아웃풋(output)입니다.
--- pp.27-28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여러 흥미로운 글들을 썼는데, 그중에는 「원형의 폐허들」이라는 짧은 소설도 포함됩니다. 이 소설에는 신전이 하나 등장하는데, 어느 날 이 원형의 신전에 불이 납니다. 벽이 불타 지붕이 무너지고, 결국 그 안에 갇힌 신자마저도 불길에 휩싸이지요. 그런데 불길에 휩싸인 신자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집니다. 자신의 몸이 불로 뒤덮이는데도 전혀 아프지 않은 것입니다!
--- pp.39-40
이제는 기계가 세상을 알아보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질문 하나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데이터를 통해 기계가 규칙을 만들어 낸다면, 그 규칙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할까?’ 이와 관련해, 2014년에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21세기에 심층 학습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처음 해결하고자 한 과제는 물체 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약 60여 년 동안 풀지 못한 이 문제가 해결되자, 기대하지도 않았던 다른 과제가 해결되기 시작했지요.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하는 과제 말입니다.
--- p.85
21세기의 우리는 500여 년 전의 역사를 잊고 살아가지만, 어쩌면 15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이 지닌 낙관과 오늘날 우리가 지닌 낙관은 닮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인터넷의 발명으로 책 1권의 가격이 1만 원에서 0원으로 떨어지자, 모든 사람이 무료로 양질의 교육을 받고, 과학이 대중화되며, 사회가 투명해질 것이라는 예측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 우리가 온라인에서 경험하는 것은 명백한 진실들이 아니라 온갖 필터 버블과 다중 현실이지요.
--- pp.117-118
따라서 그들은 아날로그 현실보다 디지털 현실에서 보다 편안함을 느끼며, 오프라인 모임이 아닌 온라인 커뮤니티로 도피하고자 합니다. 사회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그들의 경제적인 활동도 대부분 그들의 뇌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디지털 현실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출생한 Z 세대의 일부는 이미 시장의 트렌드를 이끄는 주요 소비자로 떠올랐습니다. 이 사실은 아직은 미흡한 메타버스 기술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가속할 것입니다.
--- pp.143-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