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길을 새로 닦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는 글
『문장의 무게』
삶이 너무 커다란 시련을 내 앞에 던져줄 때마다, 나는 ‘문장의 숲’ 속으로 피신했다. 인생은 상처와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아름다운 문장 속에는 치유와 안식의 향기가 그득하기 때문이다. 『문장의 무게』에서 나는 바로 그런 반가운 문장들의 오케스트라를 들을 수 있었다. 슬픔으로 얼어붙은 마음에 문을 두드리는 문장들은, 곱씹어 읽을수록 더욱 깊고 따사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나곤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름다운 문장들은 더욱 그윽한 향기로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문장의 무게』는 바로 그런 ‘읽고 또 읽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한 번 읽었을 때는 놀라움을, 두 번 읽었을 때는 깨달음을, 세 번 읽었을 때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듯한 뜨거운 감동을 주는 것이야말로 문장의 힘이다.
다시 읽을 때 더욱 깊은 깨달음을 주는 문장들은 예컨대 이런 울림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어떤 형태로든 다른 것들을 죽이고 있어. 고기를 잡는 일은 나를 살려주지만, 나를 죽이기도 하지.” 우리가 가장 꿈꾸었던 성공이 때로는 우릴 질식시킬 때, 이 문장을 읽으며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노인과 바다』의 이 문장은 어른이 되어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더욱 커다란 의미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늙은 어부가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잡은 청새치가 바로 성공의 은유임을 포착한다. “성공이 풍긴 피비린내가 상어 떼를 부른 것이다. 우리는 청새치, 성공을 버리는 것만이 내가 사는 유일한 길임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처절하게 파멸할 것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청새치를 결코 놓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의 파멸은 시작된다.” 성공에 대한 지나친 열망이 당신을 괴롭힐 때, 이 구절을 읽는다면 과도한 욕심을 내려놓을 용기가 샘솟을 것 같다.
“자유를 잃어버린 인간, 그들은 이미 사형당한 존재들이다.”(〈그리스인 조르바〉)라는 문장은 또 어떤가. 아니야, 나에겐 자유가 있어, 아직 사형당하지 않았어, 라고 절규해 보지만, 조르바는 또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줄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긴 것일 뿐 영원히 그 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요.” 그렇다. 우리는 시간과 죽음과 육체와 감정이라는 ‘줄’에 묶여 있는 존재들이기에, 완전한 자유는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자유를 추구해도 항상 끝없이 모자란 느낌은 바로 그 온갖 ‘줄’이 우리를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토록 불완전한 우리의 자유에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춤’ 뿐이다.
조르바의 춤이란 말 그대로 몸으로 추는 ‘댄스(dance)’이기도 하고, 온갖 다채로운 상황과 끝내 어우러짐으로써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무한한 낙천성’이기도 하다. 책벌레이자 지식인인 주인공은 그 어떤 세속적인 권력에도 찌들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에게 바로 이 ‘춤’을 배우고자 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든 신명나게 춤출 줄 아는 조르바, 아무리 힘들어도 음악과 춤으로 모든 고통을 날려버리는 조르바는 눈부신 춤사위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종이와 잉크는 지옥으로나 보내버려!” 『문장의 무게』는 조르바의 춤에 이렇게 ‘장단’을 맞춘다. “춤은 내 안의 더러운 먼지들을 털어내고 막혔던 피들을 흐르게 하며, 거짓된 자아를 토해낸다”고. “이제 춤을 추자. 조르바처럼 묶여 있던 끈을 잘라 버리고 음악조차 없는 춤을 추자. 내 속을 채운 책과 가르침을 죽이고, 미친 듯이 춤을 추자.” 이런 문장을 읽다 보면, 정말 아무리 몸치라도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명나는 막춤을 추고 싶어지지 않을까.
이 책에는 깨달음으로 가득한 강렬한 문장 뿐 아니라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평화로운 문장들도 가득하다. 그중에서 나는 특히 『고도를 기다리며』를 작가 사무엘 베게트의 문장이 좋다. “나는 날씨가 어떤지 더 이상 모른다. 하지만 내 인생의 날씨는 영원한 따스함이었다. 마치 땅이 춘분점에서 잠들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떻게 하면 이토록 평온하고 따사로운 경지에 오를 수 있는지, 사뭇 부럽고 궁금해진다. 내 인생의 날씨도 ‘영원한 따스함’이라고 기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지혜로운 나그네가 무심코 던진 듯한 문장이 마음속에서 또렷한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특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속 문장들이 그렇다. “운명이란, 우리가 아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길을 믿는 것이라네.” 과연 그렇다. 이 길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이 길을 잘 안다는 이유로 따라가는 것이 운명이라면, 너무 안전하고 지루하지 않은가.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 운명은 우리가 매일 새롭게 창조하는 쪽이 더 나을 것이다. 우리가 가고 있는 바로 이 길을 사랑하는 것. 멋지게 잘 닦여 있는 길, 이미 다른 사람이 걸어간 길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새로 닦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이 책의 저자는 마치 운동선수가 결전을 앞두고 ‘스파링 파트너’를 두듯이 항상 수많은 고전들을 늘 곁에 두며 읽고 또 읽는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다시 곱씹어 읽고 또 읽음으로써 어느새 그 의미까지 새로워지는 해석과 창조의 글쓰기를 통해 『문장의 무게』는 태어났다. 그렇게 책을 항상 곁에 두고 읽으면, 어느새 어려운 고전 속의 문장이 마치 절친한 벗처럼, 둘도 없는 소울메이트처럼 가깝고도 친밀해진다. 고전의 책장이 닳아질 때까지 읽고 또 읽어 어느 새 마음속에 항상 고전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그렇게 책과 완전한 친구가 된 저자의 열정이 『문장의 무게』 속에서 빛을 발한다.
『문장의 무게』는 때로는 날개 달린 운동화를 신은 것 같은 활기찬 문장들, 때로는 상쾌한 죽비로 뒷목을 내리치는듯한 시원한 문장들을 우리 곁에 데려온다. 이런 문장들이 때로는 든든한 텐트가 되어 눈비를 막아주고, 때로는 싱그러운 물 한 모금이 되어 영혼의 갈증을 채워준다. 당신이 인생의 미로에서 길을 잃었을 때, 『문장의 무게』는 마치 향기로운 초콜릿 선물세트처럼 맛과 향이 풍부한 문장의 축제를 선물할 것이다.
-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온도를 찾다』 저자. KBS제1라디오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