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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리뷰 총점9.6 리뷰 37건 | 판매지수 1,590
2월의 굿즈 : 산리오캐릭터즈 독서대/데스크 매트/굿리더 더플백/펜 파우치/스터디 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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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560쪽 | 726g | 149*205*28mm
ISBN13 9791192107929
ISBN10 1192107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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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추천의 말
한국의 독자들에게
서문: 충돌의 경계에서

Lia

1 탄생
3 영혼에게 붙들리면 쓰러진다
5 지시대로 복용할 것
7 정부 소유의 아이
9 약간의 약과 약간의 넹
11 큰 것이 닥치다
13 코드 X
15 황금과 불순물
17 여덟 가지 질문
19 희생제의

Hmong

2 생선국
4 의사가 뇌를 먹나요?
6 고속 초피질 납 치료
8 푸아와 나오 카오 이야기
10 몽의 전쟁
12 탈출
14 도가니
16 그들은 왜 머세드를 택했나?
18 삶이냐 혼이냐

15주년판 후기: 공통의 언어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몽어의 표기법과 발음, 인용에 대하여
출처에 대하여
참고문헌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언제나 가장 볼만한 것은 중심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무엇과 만나는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해안선, 기상전선, 국경이 좋다. 이런 곳에서는 흥미로운 충돌과 부조화가 일어나며 경계에 서 있으면 어느 한 쪽의 중심에 있을 때보다 양쪽이 더 잘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문화일 때는 특히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 p.18

머세드 병원 역사상 최악의 분쟁이었던 리 부부의 딸 리아의 사례에 대해 듣고 그 가족과 의사들을 알게 된 후, 나는 진심으로 양쪽 모두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기가(내가 그렇게 하려고 했다는 건 하느님이 아신다.)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나는 상황을 너무 직선적으로 분석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달리 말해 나도 모르게 조금 덜 미국인처럼 생각하고, 조금 더 몽족처럼 생각하던 사고방식을 그만두게 되었다.
--- p.18

댄 입장에선 푸아와 나오 카오가 딸의 증세를 ‘영혼에게 붙들려 쓰러진 병’으로 이미 진단했다는 사실을 알 방법이 없었다. 푸아와 나오 카오 입장에선 댄이 리아를 뇌전증으로 진단했으며 그것이 가장 흔한 신경질환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양쪽 다 증상을 정확히 알아보긴 했으나 그 원인이 혼을 잃어버린 탓이라는 말을 댄이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리아의 부모 역시 리아의 발작 원인이 비정상적인 뇌세포 자극에 의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적인 격발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 p.61

미국에선 치 넹을 모셔다가 병을 고치는 게 금지되어 있나요? 왜 미국 의사들은 환자의 피를 그렇게 많이 뽑아내나요? 미국 의사들은 왜 사람이 죽으면 머리를 열어 뇌를 끄집어내나요? 미국 의사들은 몽족 환자의 간이나 콩팥이나 뇌를 먹나요? 미국에선 몽족이 죽으면 토막을 내어 깡통에 담아 식품으로 판다는 게 사실인가요?
--- p.67

이들에게 익숙한 무속적인 치유의 체험에 비한다면 더욱 부족한 게 서양 의술이었다. 치 넹은 아픈 사람의 집에 찾아가 여덟 시간 동안 있기도 했다. 그에 비해 서양 의사는 환자가 아무리 아파도 병원으로 오도록 했고 병상 곁에 와서 기껏해야 20분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치 넹은 정중하고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의 생활에 대한 온갖 무례하고 은밀한 것들, 심지어 성적 습관이나 배변 습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 p.67

“저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어요. 그들이 아주 결연한 표정을 지었던 게 기억나네요. 말하자면 ‘우린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고 있다.’라는 표정이었어요. 허튼수작 말라는 태도였지요. 전 그들이 리아를 정말 아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이를 돌보기 위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이었지요. 적어도 전 그렇게 느꼈어요. 화가 났던 기억은 없어요. 그보다는 서로 세상을 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며 약간의 경외감을 갖게 됐지요.”
--- p.99

몽족 환자들은 얘기할 때 ‘예스’ 같은 단음절만 말하며 바닥만 쳐다보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예스’가 환자가 공손히 듣고 있다는 뜻일 뿐 의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것도 그 말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의사 앞에서 소극적이며 고분고분한 듯하지만(말하자면 자신의 무지를 숨김으로써 자기 위신도 세우고 공손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의사의 위신도 세워주는 것이다.)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모든 걸 무시해버리는 게 몽족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 p.122

“한마디로 몽족에겐 제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 없었어요. 이를테면 췌장에 문제가 있어 당뇨를 앓는다는 얘기를 몽족에겐 할 수 없었지요. 그들에겐 췌장을 가리키는 말이 없거든요. 췌장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죠. 그들 대부분에겐 동물에게 있는 기관이 사람에게도 있다는 개념이 없어요. 사람이 죽으면 해부하지 않고 그대로 묻으니까요. 심장의 경우엔 박동을 느끼기 때문에 그들도 알았어요. 하지만 그 밖의 것, 그러니까 폐 같은 기관은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었지요. 폐를 본 적이 없는데 그 존재를 어떻게 직관으로 알겠습니까?”
--- p.123

하지만 닐은 리아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계속해서 처방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게 최선이라고 확신했었다. 만일 그가 괜찮은 항경련제 하나를 골라 그것만 반복해서 처방했다면, 복잡한 처치를 기꺼이, 그리고 제대로 따를 수 있는 미국인 중산층 가정의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치료를 리아에게 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차별적인 행동이었을까? 리아에게 다른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처치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리아의 가족이 따르기 좋은 방식으로 치료를 단순화하지 않은 것일까?
--- p.137

전후 미국으로 온 몽족 난민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한 신문 기자의 표현처럼 “석기시대에서 우주시대로 이주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견해는 몽족 전통문화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며 많은 몽족이 전쟁 동안 경험한 엄청난 사회·문화·경제적 변화를 무시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여러 세기 동안 박해를 당하면서도, 19세기 라오스로 대규모 이주를 하면서도 살아남았던 생활양식이 불과 몇 년 만에,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돌이킬 수 없이 달라져 버렸던 것이다.
--- p.227

생활보호대상자가 된 것을 비난하는 것만큼 몽족을 화나게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몽족이라면 누구나 ‘약속’이란 것에 대해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그것은 라오스 내전 당시 CIA 요원들이 서면 또는 구두로 했던 계약으로, 미국인을 위해 싸워주면 인민군이 전쟁에서 이길 경우 불리해질 몽족을 도와주겠다고 한 약속이었다. 몽족은 불시착한 미국인 조종사를 목숨 걸고 구했고 미국인의 폭격으로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것을 감내하며 ‘미국의 전쟁’을 도왔기 때문에 살던 나라를 탈출해 미국에 오면 영웅 대접을 받으리라 기대했다.
--- p.330

우리는 누구한테 먹을 것을 받아먹고 살라고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에요. 지금처럼 남한테 의지해서 사는 건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지요. 우리 나라에서 살 때는 이렇게 누구한테 도움을 청해본 적이 없어요. [……] 저는 영어를 배우려고 무진 애도 써보고 그러면서 일자리도 열심히 찾아다녔어요. 어떤 일이라도, 화장실 청소도 좋다고 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믿어주질 않고, 일을 주지도 않아요.
--- p.332

“우린 돌아가고 싶어. 여기서 태어났다면야 여기 있을 수 있겠지. 여긴 참 좋은 나라이긴 하지만 우린 여기 말을 못해. 운전도 못하고. 외롭게 집에만 있어야 하지. 거기 가면 조그만 땅에 농사도 짓고, 닭이랑 돼지랑 소도 기르고,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고, 철 되면 수확도 하고, 그다음 수확 철까지 있는 걸로 먹고 살면 되잖아. 그거면 충분하지. 그러면 얼마나 마음 편하겠어. 여기선 우리는 이거다 싶어서 해도 저 사람들은 틀렸다고 해. 우리가 아니다 싶은 걸 하면 맞다고 하고. 그러니 어떻게 해야겠나? 돌아가는 수밖에.”
--- p.336

MCMC의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 책임자가 된 댄 머피는 몽족 환자 하나를 잘못 치료하면 몽족 사회 전체에 대한 치료를 실패하는 것이라는 말을 내게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자기 아이가 리 씨네 어린 딸처럼 되는 걸 원치 않아서 병원을 멀리 한 몽족 가정이 얼마나 많은지 누가 알겠는가? 머세드의 리 씨 집안과 양 씨 집안에서 리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나쁜 의사들 같으니!) 그건 MCMC 소아과에서 리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나쁜 부모들 같으니!) 리아의 케이스는 몽족 사회에는 의료 종사자들에 대한 최악의 편견을, 의료계에는 몽족에 대한 최악의 편견을 확실히 심어주었다.
--- p.418

메울 수 ‘없는’ 간극이었다고? 나는 리아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리 부부가 MCMC 의료진과 처음 마주치던 때를 자꾸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통역자는 아무도 없었고 리아의 뇌전증은 폐렴으로 오진되었다. 만일 응급실의 전공의들이 ‘동물 병원 의사’가 되는 대신, 몽족이 믿거나 두려워하거나 바라는 걸 알려고 노력해 애초부터 리 부부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다면(아니면 적어도 신뢰를 짓밟지 않았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 p.427

병원 차트를 읽고 리아와 그 가족을 이해한다는 것은(나는 차트를 이해하는 데만 수백 시간을 바쳤다.) 서정시를 일련의 삼단논법으로 축소해가며 해체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리아를 생후 3개월 때부터 맡았던 전공의들과 소아과 의사들에겐 ‘차트’ 말고는 리아의 세계를 안내해줄 길잡이가 없었다. 그들 각자가 그들이 아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문제들을 이해하려고 발버둥칠 때마다 차트는 점점 더 길어져 결국 40만 단어가 넘는 기록이 되어버렸다. 그 단어들 하나하나는 기록을 남긴 사람들의 지식과 훈련과 선의를 반영하고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도 딸의 병에 대한 리 부부의 관점은 다루지 않았다.
--- p.427

“그건 횡포예요. 병이 영혼 때문에 생긴 것이라 믿어서 수술을 거부하는 가족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이가 수술을 받다 죽으면 영영 저주받을 게 확실하다고 믿는다면요? 게다가 죽음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면요? 어느 게 더 중요하죠? 삶인가요, 혼인가요?”
빌이 말했다.
“둘러서 말할 것 없죠. 당연히 삶이 먼저죠.”
그러자 수키가 말했다.
“아니요. 혼이에요.”
--- p.457

온 가족과 스무 명 넘는 친척들이 리아를 둘러쌌다. 그들의 온 신경은 움직임 없는 리아에게 집중되었다. 마치 확대경으로 모은 햇빛이 대상을 태워버리기 직전 같았다. 디 코르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리아는 사랑할 줄도 알고 사랑받을 줄도 알아요.”
무엇을 잃어버렸건 리아는 아직 사랑받는 법을 알고 있었다.
--- p.469

나는 자신의 관점만이 옳은 관점이라는 가정과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나는 이것이 이 이야기에서 충돌하는 양극단이 빠져 있는 함정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것은 내 책의 핵심 교훈이 무엇인지 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함정이 아니었다. [……] 공감이라는 것이 참 어려워서 우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한 상태로 생을 살아간다. 공감은 분노보다 어렵고 연민보다도 어렵다.
--- p.494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문화와 문화의 만남, 피할 수 없는 충돌에 관하여
『서재 결혼시키기』 앤 패디먼의 걸작 르포르타주


“이슬람 난민 집단 거주 형성을 반대합니다.” 올해 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 청원의 제목이다.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의 지역 내 정착을 반대한 이 청원은 “집단 거주를 허용해 몇 년 뒤 타국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에겐 없을 거라고 보장하느냐?”라며, 이주민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를 동시에 드러냈다. 이러한 타문화와의 충돌은 ‘단일민족 신화’를 굳건히 믿어온 한국인들에게 오늘에서야 인식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제 미등록 이주민을 더하지 않아도 OECD가 ‘다문화사회’로 정의하는 전체 인구 대비 외국인 비율 5퍼센트 기준에 상당히 근접했다. 다른 국적,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의 충돌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는 충돌 아래 깔린 것들을 봐야만 한다. 문화 간에 발생하는 위계와 권력 차이, 그로부터 비롯되는 혐오와 배제, 서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끝없고도 지난한 대화가 그것이다. 1980년대 미국, 한 난민 아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의료 분쟁을 9년간 기록한 앤 패디먼의 르포르타주 『리아의 나라』는 피할 수 없는 문화 충돌 앞에서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숙고하게 하는 책이다. ‘문화 차이’란 과연 무엇인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집단 간의 신념과 가치 체계가 극심하게 부딪칠 때, 우리는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리아의 나라』는 2002년 한국에 소개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애서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 『서재 결혼시키기』 저자 앤 패디먼의 데뷔작이다. 훌륭한 에세이스트로 명성이 높지만, 패디먼이 걸출한 르포르타주 작가이기도 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이민자 가족과 미국 의료 체계 사이의 갈등을 9년에 걸쳐 민감하고 예리하게 옮긴 『리아의 나라』다. 이 책은 출간된 해에 전미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고, 현재까지도 미국 의대 필수 교양도서로 채택되어 널리 읽히고 있으며, 2019년 《슬레이터》 선정 ‘지난 25년간 출간된 최고의 논픽션’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에는 2010년 번역 소개되었는데, 출간 당시부터 섬세한 의료인류학적 성찰로 의학도와 간호학도에게 널리 읽혔으며 절판 이후에도 눈 밝은 독자들에게 여러 차례 재발견되며 복간 요청이 꾸준히 이어진 책이다. 이번에 새로이 출간되는 『리아의 나라』는 사실관계에 관한 저자의 전면적인 수정과 새로운 후기를 더한 15주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1980년대 미국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2022년 지금, 다른 문화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전면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다시금 펼쳐보는 일은 더없이 시의적절하다. 패디먼은 뛰어난 균형 감각과 사려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문화와 문화가 만날 때 발생하는 권력의 역학을 기록하는 동시에 그 사이를 매개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모색한다.

“서정시의 우아함과 스릴러의 긴장감을 갖고 쓴 인류학 보고서”
섬세한 취재와 유려한 글쓰기로 기록한 문화 충돌의 현장


태어난 지 3개월이 되던 때, 캘리포니아주 머세드로 이민한 몽족 가족의 아이 리아는 문을 쾅 닫는 소리에 놀라 처음으로 발작을 일으킨다. 미국 병원의 의사들은 리아가 뇌전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리아의 가족은 이 현상을 ‘코 다 페이’, 즉 영혼에게 붙들려 쓰러진 병으로 인식한다. 한 아이의 병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 치료는 두 문화 사이를 헤매게 되고 그렇게 “모두가 지는 싸움”이 시작된다. 의사들은 처방된 약을 제대로 투약하지 않는 리아 가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리아의 가족들은 리아에게 나타나는 부작용을 보며 의사들과 약물을 불신한다. 리아의 부모는 리아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고, 미국인 의사들은 어린 환자를 치료하고자 밤낮없이 애썼지만,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가운데 리아는 오락가락하는 약물 치료의 지난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앤 패디먼은 9년에 걸쳐 이 사건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방대한 문헌 자료를 조사해, ‘합리적인 의사들과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환자 가족의 갈등’으로 단순화되기 쉬운 이야기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을 드러낸다. 리아의 여러 주치의들을 비롯해 간호사와 위탁 가정 부모부터 통역사와 몽족 이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몽족의 기원부터 그들의 전통적 삶의 방식, 그들이 겪은 이주와 차별까지 책과 기사, 판결문과 증언을 망라해 동원하는 저자의 충실한 서술은 층층이 쌓인 문화 간 갈등의 복잡한 면모를 드러내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마술처럼 책장이 넘어갈”(김현경) 정도로 몰입감 넘치는 글솜씨를 발휘하면서도 그 태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홀수 장에는 리아를 구하고자 애쓰는 의사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짝수 장에는 전쟁으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몽족의 역사를 배치해 병렬 구조로 내용을 전개한 정교한 구성도 눈에 띈다.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리아의 병실과 몽족의 피난길은 어느새 하나의 이야기로 모여 현재의 문제를 지적한다.

대단히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문화 갈등으로부터 비롯된 이 개인의 비극에 접근하는 패디먼의 태도는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리아의 사례를 만나고 나서 “진심으로 양쪽 모두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고 말하는 패디먼은, 어째서 선의와 노력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했는가에 대해 다각적이고도 인간적으로 접근한다. 패디먼은 너무도 당연해져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조차 부자연스러운 서구 의학에 거리를 두면서도, 신비화되는 동시에 미개하다고 멸시받는 아시아 고산민족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한다. 한편 문화 간 만남에서 필연적으로 “권력의 비대칭성이 수반”(김현미)된다는 점 역시 예리하게 포착한다. 독자들은 패디먼의 섬세한 글쓰기를 통해 몽족이 라오스 고산지대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데에는 미국을 도와 대리전을 했으나 약속받은 안위와 기존 생활을 모두 박탈당한 역사가 숨어 있었음을 알게 되고, ‘문화 충돌’ 또는 ‘문화 갈등’이란 동등한 입장의 양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낯선 문화와 마주쳐야 하는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책

리아가 태어난 지 4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에서 『리아의 나라』를 읽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것은 숨을 쉬듯 당연해진 우리 주변 문화에 질문을 던진다는 의미다. 의학의 판단이 늘 다른 무엇보다 우선할 수 있는지, 문화 간 권력 차이 속에서 타문화와 진실하게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들을 말이다. 리아의 가족이 내린 선택은 이미 상당히 서구화된 한국의 문화와 의료 상식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문화와의 마주침이 늘어날수록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늘어날 것이다. 앤 패디먼은 타자의 이야기를 치우치지 않는 탄탄한 글쓰기로 설득력 있게 밀고 나가 마침내 그들을 그들의 문화 속에서 보게 하며, 그곳에서 우리의 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이로써 『리아의 나라』는 주류 문화만이 정답이라고 여기는 태도의 위험성과 혐오와 배제를 대신할 대화의 필요성을 함께 제시한다. 권력의 위계 윗자리를 차지한 문화에 질문을 던져 균형을 맞추는 공통의 언어를 상상하게 하는 『리아의 나라』는 이미 미국에서 문화인류학과 의료윤리학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이주민과 난민을 비롯해 그 어느 때보다 낯선 문화와의 마주침을 준비해야 할 한국에서 『리아의 나라』는 또 한 번 답해지지 않았던 질문과 다른 미래를 여는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앤 패디먼은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처음에 그는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을 무대로 뇌전증을 앓는 어린 소녀와 영어를 못하는 부모, 그리고 이들에게 약 먹이는 법을 가르치려고 애쓰는 미국 의사들을 보여준다. 이어 이 가족이 어쩌다가 미국에 왔는지, 그들이 왜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지를 설명하며 라오스의 고원지대, 난민캠프, 캘리포니아의 몽족 공동체를 차례로 조명한다. 동시에 전쟁, 인종차별, 문화 간 갈등, 현대의학과 타자의 문제로 주제를 확장한다. 좋은 책이 갖추어야 할 미덕을 모두 갖춘 책이다. 유려한 번역 덕택에 마술처럼 책장이 넘어간다.
- 김현경 (인류학자,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
미국 의료체제와 몽족 치유 주술 간의 폭력적인 왕복 운동 사이에 끼인 몽족 난민 아동 리아. ‘비문명적’ 존재로 낙인화되어 언어와 대표성을 박탈당한 난민은 어떻게 자신과 가족의 신체 결정권을 가질 수 있을까? 저자는 권력의 비대칭성이 수반되는 문화 간 만남에서 고통받는 리아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자고 호소한다. 그곳은 문화, 정체성과 질병이 배제와 혐오의 근거로 활용되지 않는 ‘공동의 세계’다.
- 김현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처음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책을 소통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의료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읽었다. 그러나 책의 목표는 다른 곳에 있다. 이 책은 사이에 문화의 높다란 장벽이 있어 소통할 방법을 모르던 부모와 의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한 아이를 소중하게 여길 때 발생하는 비극을 그린다.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서로가 이해의 자리로 나와야 하고, 뛰어난 통역이 필요하다. 『리아의 나라』와 같은 그런 통역 말이다.
- 김준혁 (의료윤리학자,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의 저자)
서정시의 우아함과 스릴러의 긴장감을 갖고 쓴 매우 인간적인 인류학 보고서.
- 애비 프룩트 (《뉴스데이》)
인간 삶의 한 현장을 면밀히 살핀 뒤 남들에게 전달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작가들이 있다. 제임스 에이지나 조지 오웰처럼 말이다. 앤 패디먼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 로버트 콜스 (아동심리학자, 하버드대학교 교수), 《커먼윌》)
불편한 공존을 해야 하는 두 문화에 대해 영감을 주는 흥미진진하고 특별한 탐사 보도다. 이 책이 특히 놀라운 점은 두 개의 전혀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치우침 없이 정밀하게 포착해냈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슈에 대하여 양측의 입장을 냉정하고 무심하게 보려는 공평함이 아니라 온정과 열정을 갖고 껴안으려는 자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탁월한 문화인류학 보고서다. 우리의 시야를 트여주고 잘 읽히며 대단히 매력적이다.
- 캐럴 혼 (《워싱턴 포스트》)

회원리뷰 (37건) 리뷰 총점9.6

혜택 및 유의사항?
당신과 나의 나라, 우리의 이야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E*C | 2022.11.0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출판사 반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상상해보자. 당신에게는 가족이 있다. 집도, 땅도, 마을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온 나라가 전쟁통이 되어 살기 위해서는 세간도 추억도 하다못해 자식까지도 버려가며 낯선 땅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말도, 문화도, 생활도 그 어느것도 이해할 수 없으며 그 땅의 사람들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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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반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상상해보자. 당신에게는 가족이 있다. 집도, 땅도, 마을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온 나라가 전쟁통이 되어 살기 위해서는 세간도 추억도 하다못해 자식까지도 버려가며 낯선 땅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말도, 문화도, 생활도 그 어느것도 이해할 수 없으며 그 땅의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당신의 언어, 가치관,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도움을 청할 길이 없다. 능력있던 가장도 모든 일을 해치웠던 지혜로운 어른도 한순간에 온종일 집에만 처박혀 멍하니 앉아있다. 때때로 도움이나 제도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손짓발짓을 해가며 온갖 눈총과 한숨 끝에 맞는 건지 아닌건지 모를 뭔가를 구해와야 한다.
어찌저찌 먼저 정착한 먼 친척과 같은 민족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집 한칸을 구해 살아가던 나날, 아이가 아프다. 사랑을 다해 키우던 아이가 눈을 뒤집고 숨을 못 쉬며 온몸을 경련한다. 병원에 갔더니 나의 믿음과 지식은 전부 무용한 것이 되고 말도 생김도 다른 이들이 떼로 몰려와 아이를 이리 뒤집고 저리 헤집어가며 온갖 장치를 매달아놓는다. 듣기로는 저 백인들이 사람 장기를 먹는다고 한다. 혹자는 우리 민족의 수를 줄이기 위해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수를 쓴다고도 한다.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다. 뭔가를 열심히 말하고 윽박지르는데 서로가 서로의 그 무엇도 이해하지 못한다. 서명을 하라니 한다. 그 알 수 없는 문자의 나열, 이 땅에 오기까지 수십수백번도 더 했다. 했다. 내가 알기로 가장 필요한 방법이 있는데 그건 안 된다고 한다. 저들이 주는 약과 주사와 처치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내가, 온 우주만큼 사랑하는 내 아이를 학대하고 있다고 한다.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남의 집에 훔쳐다놓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댄다.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단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믿음과 언어, 정체성을 모두 버려야 한다. 거부는 없다. 저항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모두가 이 땅의 이방인이다.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보편적이며 누구에게나 쉽게 납득 가능한,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내가 정당한 성원으로 여겨짐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세계는 누구에게나 그러한 곳일까? 그렇지 않다. 당장 낯선 장소에만 가도 사람은 적응에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나마 조금 긴장하는 정도로 해결되는 것은 그 장소, 그 상황이 그나마 이해 가능한 시스템에 속하기 때문이다. 범위를 넓혀보자. 해외에 가기 전 우리는 도착지의 문화나 언어를 미리 학습한다. '덜' 당황하기 위함이다. 만일 그럴 시간이 없다면? 생각해본 적도 없는 가치관이나 절차를 요구한다면? 뭔가를 설명하려고 애쓰다 결국 찌푸려지는 미간을 하루, 이틀, 일주일, 반년... 수도없이 마주해야 한다면? 평생을 당연한 것으로 믿고 살아온 삶의 방식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 비명을 지르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야 한다면? 그러고도 나의 세계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이 책의 주인공처럼 서구사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몽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언제든 갑작스레 낯선 상황에 놓인다면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다.

사람은 그가 속하고 오랜 시간을 살아온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사람의 일 또한 그러한 까닭에 질병 또한 문화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적어도 환자 개인 또는 그 보호자가 질병을 이해하는 관점은 그가 속한 문화, 그의 위치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4장에서 볼 수 있듯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문화 충돌에 대해 다수 혹은 강자의 입장에 있는 이들은 어떻게 우열을 배제하고 의료대상자와 보호자를 존중할 수 있는가? 또 어떻게 치료적 협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가?
현대 서구 의료 체계, 그 중에서도 대형병원은 환자보다는 의료진 및 기관을 중심으로 한다. 환자 또는 보호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맥락 안에 있든 간에 의료현장에서 주도권을 갖기는 쉽지 않다. 이것은 분명 효율성을 높이고 각종 변수의 위협을 제거하는 데에 적합하다. 그러나, 환자에게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시스템 앞에서 단순한 몸 또는 부위, 질병으로 존재하는 환자에게는 그 자신의 배경이 있다. 그는 사람이다. 6장과 7장에서 볼 수 있듯 문화적 배경과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다중압박상태에 놓이는 의료대상자 및 보호자에 대해 공공의료시스템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들의 장기적인 건강을 위해 사회복지시스템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하는가? 만일 문화적 신념이 효과적인 치료방침과 충돌할 때 의료진은 어떤 태도로 대상자들을 대해야 하는가?

이 책은 비극인가. 그러하다. 그것도 아주 큰 비극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감히' 고마워할 줄 모르는, '미개하고 비문명적인' 몽족 이주민의 탓인가? 과연 그럴까? 애초에 그들은 왜 자급자족하던 땅에서 벗어나 이곳까지 떠밀려왔는가? 왜 알지도 못하는 언어의 나라로 도망치고 쫓겨와야 했는가?
민족으로서의 몽족의 역사는 가히 피란과 자구의 삶이라고 할 만하다.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면서도 굴복과 동화를 거부했던 이들은 미국에 '비밀군사'로 이용되었고, 그 결과 수많은 이들이 난민이 되어 미국으로 몰려왔다. 살기 위해서, 또 마땅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그렇게약속했기 때문에, 우리의 목숨을 걸고 당신들의 전투를 대신 치렀으니 응당 신의를 지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문제는, 달리고 떠내려가며 당도한 나라가 입을 싹 닦은 정부와 그런 일이 있었던 줄도 모르는 대다수의 국민, 알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 오지는 말라는 파렴치한으로 구성된 곳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기가 울면 아편을 물에 타서 먹었어요. 이기가 잠잠해져서 군인들한테 들키지 않게요. 아기 소리 매문에 알려지면 다 죽을 수 있으니까요. 아편을 타 먹이면 아기는 대개 곯아떨어져요. 하지만 잘못해서 너무 많이 먹이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런 일이 아주 많았어요.” (…) 몽족의 경우 아편 과다 복용으로 아기가 죽는 일은 워낙 자주 일어나서 신문 머리기사를 장식하거나 세상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한 나라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기는커녕 살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로 무덤덤하게 가족과 친지에게 알려지는 정도였다.(p.270)

어쩌면, 아니 분명히 이것은 받아들인 나라의 시스템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마땅히 환대해야 할 이웃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돈만 축내는,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대상' 정도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과 생각이 다른 사람간의 소통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조율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과 비용과 기회가 충분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될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 결과가 이것이다. 이 책에서 리아, 한 아동과 그의 가족으로 대표되는 모든 비극들이다.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다. 억울한가. 과연 그럴까?
이제 우리는, 적어도 한국은 다민족국가임을 부정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다.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그저 모르쇠하며 단일민족의 순수성으로 대중을 동원하기에는 개개인이 마주하는 사회의 모습이 이미 그렇지 않게 되어버렸다. 몽족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태도, 그들의 혐오범죄가 남 일처럼 느껴지는가? 그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한다고 치자. 어느 누가 선뜻 환영하겠는가? 적어도 목소리 큰, 다수라고 여겨지는 권력집단은 아닐 터이다. 당장 온 나라를 시뻘겋게 뒤덮는 십자가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모스크 하나 들어선다는 데 온 나라가 뒤집어져가며 악을 쓰지 않는가? 이주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난민을 환대하는 것에도 하늘이 무너질세라 반대하지 않는가? 자치권을 줄 수 없다면, 우리와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다르게 살아가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면 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 이전에, 그들이 나와 같은 권리를 보장받는 것에 크나큰 위협을 느끼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이 책을 단순히 의사소통과 협력에 실패해 가능성을 놓친 비극적 케이스로만 기억할 수도 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전보다 더, 앞으로는 더욱 다채로워질 사회는 소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을 읽을 모두가 곱씹어보기를 바란다. 잠을 설치고 막막함에 몸부림치며. 내가 아닌 그들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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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있는 “좋은 책이 갖추어야 할 미덕을 모두 갖춘 책이다”라는 문장을 이해하고 공감했던 책.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s*****8 | 2022.10.1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해외여행 중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는 아니었는데, 지도와 번역기 앱은 말을 듣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그 나라 언어라고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가 전부였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걷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보디랭귀지를 섞어가며 길을 묻는 것뿐이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국제 미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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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중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는 아니었는데, 지도와 번역기 앱은 말을 듣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그 나라 언어라고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가 전부였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걷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보디랭귀지를 섞어가며 길을 묻는 것뿐이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국제 미아가 된다는 두려움으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영어를 통하는 친절한 사람을 만났고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정말 세세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었다. 고작 길을 잃었을 뿐인데도 두려워 말 그대로 ‘눈물이 줄줄’흘렀다.
그런데, 만약 내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아팠다면? 혹은 내 일행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도움이 필요했다면?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달라서 내가 하는 보디랭귀지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찌어찌 도움을 받은 것 같은데 그게 정말 도움인지도 모르겠다면? 내가 살겠다고 했던 행동이 그 나라에선 법으로 금지되어 처벌받는다고 한다면? 이 모든 게 잠깐의 해프닝이 아니라 매 순간 반복된다면? 나는 그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막막함을 이겨내고 버텨낼 자신이 있을까? 아마 나는 겁이 많아 차라리 삶을 포기하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번엔 반대로 누군가 정말 간절하게 무언가를 요청한다고 치자. 그런데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말이 하나도 안 통한다. 손짓 발짓해가며 부탁하길래 알아들은 대로 도와주는데 그걸 바란 게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해주는 걸 믿지 못하는 눈치다. 최대한 친절하고 쉽게 알려주려 했지만 날 믿지 않고 무서워한다. 그리고 자꾸 자기를 이해해 달라고 한다. 근데 내 상식에선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을 직업상 매주 만나야 한다. 나는 이 상황에서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상대방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상대방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상식적이지 않은 게 그 사람에겐 상식일 수 있다고 믿고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이것도 자신 없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양쪽의 상황도 모두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리아의 가족과 병원(때로는 미국 사회) 모두 풀리지 않는 실을 잡고 당기기만 해서 더 세게 묶이기만 하는 것 같았다. 서로 거주고 받은 말들은 고장 난 번역기를 돌리는 것 같았다. 이유가 뭘까. 조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지 않고 말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꾸 나의 세계에 맞춰 해석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해석만 할 뿐 문화를 이해하는 중개인의 부재 때문이다. 나라의 시스템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 뿐.
그런데 이걸 과연 미국과 몽족의 이야기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다. 타국의 난민이 입국한다고 했을 때 우리 사회의 태도는 어땠나? 우리는 그들을 환영하긴 커녕 배척했다. 떠도는 흉흉한 소문을 사실 확인 없이 믿어버렸다. 그들이 받은 것들을 혜택이라고 역차별이라고 했다. 그들이 힘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만 하길 바랐다. 아무렇지 않게 부끄럼 하나 없이 그들을 혐오했다. 나라가 그랬을 뿐 나는 아니라고? 마음속에 아주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그런 태도는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냈나? 적어도 나는 아니었고 그래서 떳떳하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이 책은 우리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갖춰야 할 태도를 말해준다. 나와 다른 타인을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는지, 어떤 노력과 태도를 갖춰야 하는지, 어떤 실수를 할 수 있는지, 혐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과 그렇지 않을 경우 나올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주 담담한 말투로. 그래서 우리 모두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당신도 나처럼 책을 읽고 생각이 많아질지 모른다. 생각이 깊어지다 못해 머리가 아프고 울적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어나갔으면 좋겠다. 왜냐면 이제는 그 생각들이 이 모든 이해와 배움의 첫걸음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지에 있던 “좋은 책이 갖추어야 할 미덕을 모두 갖춘 책이다”라는 문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좋은 책의 모든 미덕을 갖춘 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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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리아의 나라》 문화의 경계에서 쓰인 걸작 르포르타주!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지* | 2022.10.17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나는 언제나 가장 볼만한 것은 중심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무엇과 만나는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해안선, 기상전선, 국경이 좋다. 이런 곳에서는 흥미로운 충돌과 부조화가 일어나며 경계에 서 있으면 어느 한 쪽의 중심에 있을 때보다 양쪽이 더 잘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문화일 때는 특히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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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가장 볼만한 것은 중심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무엇과 만나는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해안선, 기상전선, 국경이 좋다. 이런 곳에서는 흥미로운 충돌과 부조화가 일어나며 경계에 서 있으면 어느 한 쪽의 중심에 있을 때보다 양쪽이 더 잘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문화일 때는 특히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9년 전 머세드에 처음 갈 때 나는, 내가 조금은 아는 미국의 의료 문화와 내가 전혀 모르는 몽족 문화 사이에서 양측의 십자포화에 피격당하지 않는다면 그 둘을 서로 어떤 식으로든 비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p.18

 

<서재 결혼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의 데뷔작으로 국내에는 2010년에 소개되었었는데, 이번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개정판은 사실관계에 관한 저자의 전면적인 수정과 새로운 후기를 더한 15주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이 작품은 라오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몽족의 이민자 가족과 미국의 의료 체계 사이의 갈등을 무려 9년에 걸쳐 취재한 르포르타주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1980년대의 미국에서 벌어진 것이지만, 다른 문화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2022년 현재에도 사라지지 않은 문제이므로,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리 부부는 1975년 라오스가 공산 세력에 완전히 넘어가면서 살던 땅을 떠나게 된 15만 몽족 가운데 하나이다. 리 부부의 열네 번째 아이인 리아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현대식 공립병원에서 태어났다. 리 부부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데다 주변에 몽족 언어를 아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것은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미국 의학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은 리아가 병원에 자주 가게 되면서부터였다. 몽족 사람들은 다양한 원인 때문에 병이 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꼽는 병의 가장 큰 원인은 혼을 잃어버려서이다. 특히 신생아의 생명의 혼은 떠나버리기 쉽다고 생각해, 아기를 기를 때 조심하는 부분이 많았다.

 

 

메울 수 ‘없는’ 간극이었다고? 나는 리아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리 부부가 MCMC 의료진과 처음 마주치던 때를 자꾸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통역자는 아무도 없었고 리아의 뇌전증은 폐렴으로 오진되었다. 만일 응급실의 전공의들이 ‘동물 병원 의사’가 되는 대신, 몽족이 믿거나 두려워하거나 바라는 걸 알려고 노력해 애초부터 리 부부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다면(아니면 적어도 신뢰를 짓밟지 않았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p.427

 

리아가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아파트 현관문이 쾅 닫히는 소리에 놀라 기절하는 일이 생겼다. 리 부부는 리아의 증상을 '코 다 페이'로 보았는데, 이는 '영혼에게 붙들리면 쓰러진다'는 뜻이다. 이 병은 몽족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이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한쪽에서는 이 병을 심각하고 위험한 질환으로 받아들이고, 한편에서는 이를 영예로운 병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리아의 발작을 바라보는 리 부부의 태도엔 걱정과 자부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리아는 적어도 스무 번의 발작 증세를 보였고, 리 부부는 서구 의술의 효능을 의심했음에도 너무 걱정이 되어 리아를 병원으로 데려가야 했다. 의사 입장에선 리 부부가 딸의 증세를 '영혼에게 붙들려 쓰러진 병'으로 이미 진단했다는 사실을 알 방법이 없었고, 리 부부 입장에서는 의사가 리아를 뇌전증으로 진단했으며 그것이 가장 흔한 신경질환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비극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 아이의 병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 치료는 두 문화 사이를 헤매게 된 것이다. 의사들은 처방된 약을 제대로 투약하지 않는 리아 가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리아의 가족들은 리아에게 나타나는 부작용을 보며 의사들과 약물을 불신한다. 앤 패디먼은 9년에 걸쳐 이 사건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방대한 문헌 자료를 조사해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문제점을 정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치료하고자 하는 미국 의료진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밤낮없이 애쓰며 최선을 다했고, 리아의 부모 역시 가장 전통적인 몽족 치료법을 병용하길 원했던 것이 리아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이었으니, 양쪽 누구도 틀렸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좋은 의도와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화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리아를 중심으로 의사들과 가족들간의 대립과 전쟁으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몽족의 역사가 교차로 진행되는 무겁고, 복잡한 이야기이지만 층층이 쌓인 문화 간 갈등을 이렇게 진지하면서, 생동감있게 그려내는 앤 패디먼의 글솜씨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다양한 문화의 소통을 위해 한번쯤 읽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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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라오스 고산지대 사는 몽족의 문화와 미국 의료체계와의 충돌, 문화중개인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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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m****h | 20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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