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11월 07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342g | 108*190*30mm |
ISBN13 | 9791160262964 |
ISBN10 | 1160262969 |
발행일 | 2022년 11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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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342g | 108*190*30mm |
ISBN13 | 9791160262964 |
ISBN10 | 1160262969 |
MD 한마디
[한겨울의 서핑을 떠나야만 했던 이유] 번아웃, 급행 휴가, 한겨울 연말연시의 서핑. 이 3가지만으로 설명되는 주인공 ‘이제이’가 일상의 투쟁을 건너는 이야기. 우리에겐 모두 각자의 한계를 다독여줄 위로가 필요하다. 긴 인생의 파도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파동이 우리에게 모두 오기를 바라며. - 소설 PD 이나영
1. 해변으로 가는 길 2. 오아후 시절 3. 해변 아파트 4. 베드서핑 5. 제9호 투자 품목 6. 서피 비치 7. 서퍼 8. 와이키키 하우스 9. 파도 잡는 법 10. 인 더 수프 11. 에고서핑 12. 분홍 코끼리 13. 빗질하는 법 14. 파도 타는 법 15. 규칙 없음 서핑 용어 작가의 말 작가 인터뷰 |
주말 동안 유튜브에서 서핑 영상을 찾아보았다. 서핑 강좌나 서핑 브이로그도 보았고, 이 책에 등장하는 '미친 자들만 골라서 후원하는' 레드불 영상이나 터틀롤, 덕다이브 같은 서핑 동작들도 찾아보았다. 패들 위에 서서 파도를 느껴보고 싶었다. 영상들을 보며 서핑하는 감각을 상상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을 만큼 물이 무섭지만. 상상 속에 나는 꽤 즐거웠다. 중심을 잡기 위해 버둥거리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지만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
이게 사는 건가?
나는 이 말을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재생하며 아파트로 연결된 산책로를 걸어 올라갔다. 사는 게 그다지 힘들지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99)
『서핑하는 정신』의 제이는 해양학 연구원인 아버지를 따라 하와이에서 자랐고, 현재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20년 12월 23일, 코로나 확진자 수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는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7일간의 급행 휴가를 쓰고 양양의 해변 아파트로 간다. 죽음을 선택한 큰이모가 조카인 내게 상속한 양양의 아파트로. 끝나지 않는 바쁜 업무와 일상의 권태로움이 반복되면서 스스로 '어디에도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책하고,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막막함을 느끼던 차였다. 하와이에서 자랐지만 서핑은 해본 적도, 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한 게스트하우스의 서핑 강습에 가입하게 되어 해파리, 돌고래, 우뭇가사리, 상어 등 여러 사람을 알게 된다.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해외로 여행을 처음 갔었다. 당시 나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기 어려웠다. 스스로 당차고 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직장 생활을 해보니 내가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답다고 여기던 모습들은 매번 무너졌고,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고? 종종 놀라곤 했다. 문득 잠시라도 현실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떠난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어땠냐면, 그냥 나였다. 뭐든 서툴고, 서툰데 당당하고, 블로그의 추천이나 주변인의 조언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무모한 나.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무던히 애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했냐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뭘 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아니라,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그에 맞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또 활짝 웃었다. 극도로 내성적인 사람이 대면 업무를 주로 하며 '쾌활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온다면 꼭 저렇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 저러다 저 사람 죽지 싶어서 나는 마음이 쓰였다. 어쩌면 저토록이나 필요 이상으로 본인의 감정을 혹사하는지. (156)
한겨울 크리스마스에 혼자 서핑을 하겠다고 모인 초보 서퍼들. 하루하루에 진심을 다해 살았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왜 서핑을 배우는 걸까? 현실에서 도망쳐 양양으로 왔지만 또 최선을 다해 서핑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 그럼에도 서핑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파도를 타기는커녕 마지막 수업까지 모두 필사적이었지만 거의 서지 못했다. 보드는 나가지 않고, 패들 하다 힘이 빠져 팔이 아프고, 그래서 제자리도 벗어나지 못했다.
『서핑하는 정신』이라니. 그렇다면 가까스로라도 파도를 타봐야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까. 자신을 자신답지 못하게 만드는 권태로운 일상을 떠나 양양의 아파트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면 독자로서 마음이 시원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다만, 제이는 서퍼가 되긴 한다. 회사에서 서핑과 한 달 살기와 공유 오피스를 묶은 워케이션 제품을 출시해 화제를 모아 도시를 가르는 시티 서퍼로 불렸다.
나는 지하철 2호선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지하철이 한번씩 크게 요동칠 때마다 넘어지지 않게 양다리에 힘을 주었다. 바닥이 서핑보드이거나 요가 매트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고서 어깨를 펴고,가슴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계속 파도가 밀려왔고, 나는 파도를 보고 있었다. 이제 내가 타야 할 타이밍이었다. (274)
그렇다면 '서핑하는 정신'은 뭘까? 글쎄. 각자 나다운 게 무엇인지 정의 내릴 수 있는 만큼 수많은 정답이 있지 않을까. 제이가 권태로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휴가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받은 영감으로 일상에서도 꿋꿋이 잘 버텨내며 자신의 몫을 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게 우리의 모습일 테니까. 도시를 가르는 서퍼, 그건 우리 모두이다. 아직 물 위에 뜨지 못했을지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