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그런데 출근 1주일 만에 둘째 아이가 다시 열이 났다. 병이 재발한 것이다.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추가로 휴가를 내기는 어려웠다. 식구들과 병원을 교대로 드나들며 지냈다. 대신 밤에는 내가 아이 곁을 지켰다.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출퇴근하며 일주일을 버텼다. 상계동 집에 이삿짐도 풀기 전이었는데 아이가 입원을 두 번이나 하다보니 집은 엉망진창이었다. 이모가 두 아들을 모두 돌보아 주셨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고 일이 밀렸다. 특히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앞두고 있어서 더 그랬다. 진득하게 앉아서 생각을 정리해야 글이 써지는데, 일하는 엄마에게는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늘 조각 시간, 일정과 일정 사이의 틈새 시간밖에 없었다. 아이가 아픈 것도 내가 임신 기간에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여 자책감도 들었다.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어 논문심사를 연기하려고 마음먹었다.
--- p.39~40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가 되면 정기적으로 재산을 등록하게 된다. 그리고 종종 재산등록 사항이 뉴스 기사가 되기도 한다. 나는 부동산 4채라는 타이틀로 기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거주하는 집 1채 외 9평짜리 지방 아파트, 9평짜리 오피스텔, 3평짜리 상가, 다 합쳐봐야 고가주택 1채 값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금수저라 유산상속을 받은 것도 아니고 개발 정보를 입수해서 투자 목적으로 사 놓은 것도 아니었다. 각각이 다 살만한 이유가 있었고, 떳떳하게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부동산(땅, 주택, 건물, 등)을 어떻게(유산상속, 개발 정보 입수) 가졌느냐 보다 몇 개를 가졌느냐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이는 SH공사 사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내가 자진 사퇴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혹자는 그때 왜 더 적극적으로 소명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때는 마침 LH 투기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시절이다. 문재인 정부의 다주택자는 곧 투기꾼이라는 프레임도 여전히 유효했다. 투기 목적이 아니고 실사용 목적이며, 개발 정보를 알고 매입한 것도 아니고, 매각 수익을 실현한 것도 아니었다. 소득법상에서도 지방 근무를 이유로 2채의 집을 소유하는 것은 다주택자가 아니다. 그러나 부동산이 4개라는 그 숫자만으로도 민심은 싸늘했다.
--- p.104~105
애초 1기 신도시를 워낙 급하게 추진했기 때문에 광역교통망 구축이 입주 초기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1기 신도시를 위해 건설된 광역교통시설이 완공되는 즈음에 이에 무임 승차한 연접개발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문제는 연접개발이 1기 신도시보다 계획적 측면에서 진일보하지 못하고 후퇴했다는 점이다. 한 예로 1기 신도시는 상하수도 물론, 통신시설들을 공동구로 모두 지하화했는데, 연접 지역 개발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 공동구를 설치하지 않고, 전봇대를 설치한다거나 공원이나 녹지공간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1기 신도시보다 주거환경이나 인프라 수준이 떨어진 난개발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광역교통시설의 과부하가 시작되었다. 서울의 집값이 오를 때마다 경기도는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농지나 산지를 택지로 전환해 추가 신도시를 건설해야 했고, 비싼 서울 집값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수용하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 p.151
1기 신도시 개발이 서울 전체의 주택수요를 분산시키려는 필요에서 이루어졌다면 2기 신도시는 ‘강남으로 쏠리는 수요집중’이 문제였다. 정치적, 정책적으로 강남을 의식했기에 입지(주로 수도권 남부), 계획 기준(녹지 비율 등), 첨단 업무기능과 중대형 아파트의 배치와 고급화 등이 신도시 개발에서 강조되었다. 강남 모방 중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파트의 명품화이다. 특히 2000년대 초에는 1998년 폐지된 분양가 상한제의 영향으로 아파트의 고급화와 브랜드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시기였기에 더 가능했다. 정부도 2기 신도시(1인당 공원녹지 비율 24.5㎢/인)에는 1기 신도시(1인당 공원녹지 비율 8.2㎢/인)보다 더 많은 녹지 비율을 적용하고, 산업 용지 등 자족 기능을 늘리고 대신 상가 비율은 축소하였다. 아파트 층수로는 2기 신도시가 훨씬 고층이지만 용적률로 보면 2기 신도시가 1기 신도시와 비슷하고 인구밀도는 오히려 1기 신도시보다 낮다. 건폐율을 낮추면서 개방성을 높인 결과이다. 모든 계획 기준을 1기 신도시보다 더 좋게, 더 쾌적하게 세웠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입지였다. 강남이 갖는 여러 상징성 중 가장 큰 것은 사통팔달의 교통 허브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남급’이라는 의미는 강남으로의 접근성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2기 신도시는 판교, 위례를 제외하고는 1기 신도시보다 강남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으며 자족 기능을 확보하여 성공한 사례 역시, 판교와 광교 정도다. 무수히 강남을 모방했지만 신도시는 ‘강남급’에 머물러야 했다. 외형만 따라 했을 뿐 강남개발을 완성으로 이끌었던 기능 이전과 도시경쟁력은 이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강남 모방은 서울 내부에서도 이루어진다.
--- p.208~209
그다음은 부동산 시장 생태계의 복원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규제 폭격으로 피폐한 시장생태계의 회복 없이는 어떤 정책도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없다. 따라서 시장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예측할 수 있도록 일관된 신호를 보내는 일이 필요하다. 정부 정책은 시장에 보내는 신호다. 수요와 공급자들이 어떤 룰을 갖고 움직일지는 기본적인 수요 공급의 원칙도 있지만 정부의 규제나 정책의 힘도 크다.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는 이제 방법의 문제이지 방향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규제 완화라기보다는 더 정확하게 규제 정상화가 맞는 표현이다.
--- p.243
내가 생각한 정치의 목적이 맞는가, 과연 정치가 세상을 살리는가, 라는 의심을 매일 한다. 지금처럼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치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도 만만치 않다.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나의 전공 분야에서 활동할 공간을 많이 잃었다. 정치인 이전에 전문가이지만 한번 정치인으로 낙인이 찍히면 전문가의 발언과 의견은 늘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이젠 정치를 알지 못했던 연구자로 돌아갈 수 없다. 설사 연구자로 돌아가더라도 정치를 아는 연구자이어야 한다. 나는 정치를 아는 연구자가 매우 자랑스럽다. 연구실에서 낯선 나라의 이론이나, 탁상공론으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보고서를 쓰는 일은 이제 충분하다. 30년 정도 경험한 주택과 부동산 문제에 대해 이제는 책임 있는 정책 제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리고 정치를 경험한 나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한다.
--- p.258
정치를 하면서 칭찬만 받을 수는 없다. 때론 억울하게 비난도 당하고 누명을 쓸 때도 있다. 만약 그런 게 싫다면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없다. 비난을 받지 않는 정치는 인기영합주의거나 시늉만 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민심은 늘 정확하지만, 변동이 심하다. 중심을 잡고 있지 않으면 민심이라는 물결에 배는 뒤집힌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마음의 중심이다. 그리고 마음의 중심은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하며 비판받고 비난받는 그 시간을 견디어야 한다.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어려움도 많다. 정치인치곤 술을 못마시는 사람이 없다. 여자도 예외가 아니다. 지역에 와보니 지역 주민들과 어울려 술 한잔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소통 기술이었다. 비례대표 시절 대변인을 하면서도 술 안 먹기로 유명했던 내가 지역에 와서는 도저히 버티지 못했다. 지금도 많이 먹지 못하지만, 술을 조금씩 한다. 술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서로 다투더라도 술 한잔 마시고 서로 화해하며 푸는 일이 많은데 여성에게는 딱히 그 방식이 맞지 않는다.
--- p.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