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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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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128*188*20mm
ISBN13 9788925575599
ISBN10 8925575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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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오늘 있었던 일을 잊어버릴까. 그러면 되게 싫겠다. 어린 시절의 저는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림을 그리거나 일기를 쓰는 걸 좋아한 이유도 그런 생각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걱정했던 대로 어른이 되면서 점차 어린 시절의 나는 멀어졌습니다. 다양한 일들을 잊고 말았어요. 그 사실이 조금 쓸쓸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요, 즐거웠다는 마음만큼은 갑작스럽게 되살아날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겨울, 차가운 바람이 불던 때. 최선을 다해 연을 날리던 ‘어린 나’ 자신이 멀리서 달려와 즐거웠던 마음을 말해 줍니다. 날아가! 날아가! 높이높이 날아가! 뺨을 발갛게 물들이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작은 나. 전부 다 기억하지 못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도록 즐거웠던 감각이 오래오래 남아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놀아 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어른이 된 지금도 이따금 행복한 기분이 들어. 어린 나를 만나러 갈 수 있다면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 p.4

건널목을 건널 땐 하얀 부분만 밟아야 해.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서 그런 규칙이 생겼다. 하얗지 않은 부분은 ‘지옥’이니까. 우리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일 하얀 부분만 밟고 건넜다.
--- p.30

나는 다른 아이들이 어떤 그림 도구 세트를 가지고 올지 걱정이었다. 내 것만 너무 큰 사이즈면 어떡하지? 아침이 되자 더욱더 걱정되었다.
“내 거, 다른 아이들 것보다 크지 않을까?”
--- p.36

껌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배꼽에서 뭐가 자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종종 배꼽을 만지면서 놀았다. 목욕할 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수박 씨앗을 먹어도 배꼽에서 싹이 자라지 않고, 껌을 먹어도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 p.45

“오줌 싼 거 아니야?”
친구가 말해서,
“안 쌌어. 땀이 난 거야. 더우니까.”
나는 거짓말을 했다. 친구는 몇 번이나 돌아보면서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가 보이지 않자, 나는 살그머니 일어 났다. 돌이 오줌 모양으로 젖었다.
--- p.66

신발 속으로 물이 스며들고 젖은 양말이 달라붙었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들어갔네!”
“응, 들어갔어!”
그다음부터 우리 둘은 일부러 물웅덩이에 들어가면서 길을 걸었다.
--- p.76

돌로 흙을 파 우유 뚜껑 두 개를 묻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도록 평평하게 해 두었다.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그 아이가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비밀이야.”
--- p.91

“너희랑 다시 만나서 정말 기쁘구나.”
하고 선생님이 말했다. 그렇구나! 선생님은 쓸쓸했던 거야. 선생님은 우리를 아주 좋아하는데, 여름 방학 동안 우리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생글생글 웃고 있는 거다.
--- p.121

본 적 없는 외국 동전. 이걸 외국에 가지고 가면 외국 사람은 진짜 돈이라고 착각하겠지. 나중에 초콜릿인 걸 알면 놀라겠다고 생각하니 재미있었다.
--- p.137

외국 말을 해 보고 싶다. 하지만 할 줄 모른다. 그렇다면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둘만의 말을 만들자.”
친구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리 둘 말고는 모르는 말. 그러면 큰 소리로 비밀 이야기도 할 수 있다.
--- p.173

“바로 저기. 봄 냄새가 나.”
나는 후웁 숨을 들이마셨다. 봄 냄새는 공기 냄새였다.
바로 저기는 어딜까?
나는 빵집을 도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거기는 ‘바로 저기’니까.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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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그때의 ‘나’가 미숙하고 여렸고, 어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 어린이를 지켜보는 어른도 생각보다 많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했는데, 이제 이 책을 내밀면 될 것 같다. 마스다 미리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미숙했던 나’가 아니라 ‘작은 나’로 이해한다. ‘작은 나’를 존중하는 태도 덕분에 연민이나 과장 없이 담백하게 어린 시절을 돌아볼 수 있다. 나도 내 얘기인 양 읽었다. 짧고 진지한 놀이에 빠지고, 뻔한 거짓말을 했던 내가, 어떤 때는 고지식하고 어떤 때는 엉뚱했던 내가 이해되었다. 우리 어린 시절에도 다정한 이웃 어른과 자상한 선생님이 있었다. 밤에 피리 소리를 듣고 출동하는 뱀을 상상해 보았다면, 물감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드는 데 놀란 적이 있다면 누구나 이 책에서 ‘작은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큰 나’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다른 ‘작은 나’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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