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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작가 세트

천명관 작가 세트

: 고래+고령화 가족+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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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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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10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1435g | 크기확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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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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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살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자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天刑)의 유니폼처럼 그녀를 안에 가둬놓고 평생 이끌고 다니며 멀고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다시 이곳 벽돌공장까지 데리고 온 그 살들을 춘희는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햇볕에 그을리고 군데군데 상처를 입었지만 그녀의 피부는 아직도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춘희는 자위행위를 하듯 부드럽고 은밀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냈다. 목욕을 하는 동안 文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래 전, 의붓아버지인 文은 이미 몸무게가 백 킬로그램에 가까워지는 그녀를 펌프 옆에 세워놓고 몸을 씻기며 말하곤 했다.

춘희야, 너의 이 굵은 다리로는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진흙을 이길 수 있고 이 두꺼운 팔로는 누구보다도 벽돌을 많이 들어옮길 수 있으니 그게 다 너의 복이란다.

그녀에게 벽돌 굽는 방법을 가르쳐준 文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서서히 눈이 멀어갔으며 깊은 고독 속에서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춘희는 문득 가슴이 먹먹해져 몸을 닦는 손을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목욕을 끝내고 그녀는 옆에 벗어둔 수의를 짓이기듯 꼼꼼하게 빨아 풀 위에 널었다.
멀리 계곡 쪽에서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거대한 알몸을 핥고 지나가는 바람을 음미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산뜻한 기분이었다. 이제 그녀의 예민한 감각은 목욕을 통해 새롭게 되살아나 바람 속에 섞여 있는 계곡의 음습한 기운과, 그 계곡 아래 바위틈에 숨어 잠들어 있는 너구리의 누린내와, 벌판을 지나오는 동안 묻혀온 온갖 풀들의 향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비로소 자신이 의당 돌아올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그녀는 오랜 긴장에서 서서히 풀려나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사람들이 그러지, 하우스에 드나들면 신세 망친다. 거기서 돈 따는 놈 못 봤다. 알고 보면 다 사기다. 그런데도 꼭 그런 데 가서 돈을 쑤셔 박는 놈들이 있어. 참 이상하지? 그런 부조리한 현상에 대해서 누가 이름을 붙였는데 그걸 맨홀의 법칙이라고 그러더라고. 맨홀의 법칙, 그게 뭐냐? 맨홀 뚜껑을 열어놓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빠지게 되어 있다, 그런 거야. 그래서 애초에 맨홀 뚜껑을 열어놓으면 안 되는데, 뭐 어떻게 해? 벌써 빠진걸. 쏙!
--- p.21

그는 자신이 더는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동안 참한 마누라도 얻었고 연수동에 제법 유명한 고깃집도 가지고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기분이 우울했다. 한 마디로 사는 재미가 사라진 것이다. 그즈음 그가 관심을 돌린 건 좋은 차와 멋진 슈트였다. 값비싼 이태리제 양복으로 잘 차려입고 나서면 잠시 기분이 근사해지곤 했다. 그래도 가끔은 경마장에서 마권 다발을 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시절이 그리웠다. 남자의 인생이란 대개 그런 거였다.
--- p.126

지니는 자신의 지난 삶이 언제나 항성의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부터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손에 잡을 수도 없는 행복을 꿈꾸었지만 정작 그녀는 그 행복이 무엇인지, 어떤 느낌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리 마셔도 늘 목이 마른 삶이었다. 언제나 항성을 그리워하며 떠돌았지만 끝내 그 중심으로 다가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항성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성간을 오갈 수도 없는 신세였다. 그리고 드디어 항성의 중심에 다가가나 싶었는데 그곳은 그녀가 견디기에 너무 뜨거운 곳이었다. 다 녹아버릴 신세였다.
--- p.269

양 사장은 문득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가 세상살이에 대해 배운 건 모두 그의 아버지가 가르쳐준 거였다. 미끼를 어떻게 꿰는지, 어떤 물살에 낚시를 던져야 고기가 올라오는지, 어디를 때려야 상대가 한 방에 쓰러지는지……. 살아 있는 동안 그는 아버지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증오했지만 그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양 사장은 자신을 너무 사랑했고 그의 아버지는 평생 자신을 너무 증오했다는 거였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해를 받을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죽고 없어 세상엔 그 혼자뿐이었다. 양 사장은 아버지가 죽었을 때의 나이보다 자신이 더 오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사는 건 내남없이 모두가 외로운 일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멀리 희붐하게 서해가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막막한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던 양 사장은 문득 어깨를 떨며 울기 시작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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