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어떤 기행서보다도 혜초의 글은 순례길에서 몸으로 직접 체험한 현장감이 살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그 점에서 다른 글보다 생동감이 있었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방향, 왕의 이름, 언어와 기후, 풍습, 왕이 소유하고 있는 코끼리의 수, 종교적 성향, 불교가 전파된 곳일 경우에는 대승인지 소승인지,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지극히 단편적인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초가 그곳에서 보고 들은 현장의 사정이 어떤 글보다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왕오천축국전??의 매력이다. 문학적인 수사가 거의 없고 장황한 설명이나 해설도 별로 없는 단순한 기록물 같은 이 글이 우리나라 사람이 쓴 가장 오래된 여행기라는 점에서 갖는 문헌적 가치 이전에 한 구법자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다라니(陀羅尼)로 느껴지기도 했다. ---pp.7~8 '서문' 중에서
절 안에 한 구의 금동상(金銅像: 금으로 도금한 불상)이 있다. 여기 마갈타국(摩?+?+國, 마가다Magadha)에는 옛적에 왕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이 시라율저(尸羅栗底, 실라디탸?l?itya)였다. 그가 이 금동상과 함께 금동 법륜도 만들었다고 한다. 바퀴가 둥글고 반듯하며 둘레가 30여 보(步)나 된다.
이 성은 갠지스 강을 굽어볼 수 있는 북쪽 언덕[北岸]에 있다. 녹야원(鹿野苑, 므리가다바Mgad?a)과 구시나(拘尸那, 쿠시나가라Ku?nagara), 사성(舍城, 라자그리하R?agha), 마하보리(摩訶菩提, 마하보디Mah?odhi) 등 4대 영탑(靈塔)이 마갈타국 왕의 영토 안에 있다. 이 나라에는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지고 있다. 마하보리사(摩訶菩提寺)에 도착하고 나니 내가 본래 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아 너무나 기뻤다. 간략히 나의 뜻을 서술하는 오언시를 지었다.
보리대탑 멀다지만 걱정 않고 왔으니
녹야원의 길인들 어찌 멀다 하리오.
길이 가파르고 험한 것은 근심 되지만
개의치 않고 업풍에 날리리라.
여덟 탑을 보기란 실로 어려운 일
세월에 타서 본래 그대로는 아니지만
어찌 이리 사람 소원 이루어졌는가.
오늘 아침 내 눈으로 보고 말았네. ---pp. 40~41 '4. 마하보리사' 중에서
중천축국에서 남쪽으로 석 달 남짓 가서 남천축국 왕이 사는 곳에 도착했다. 왕은 800백 마리나 되는 코끼리를 가지고 있다. 영토가 매우 넓어서 남쪽으로는 남해에, 동쪽으로는 동해에, 서쪽으로는 서해에 이르며, 북쪽으로는 중천축국과 서천축국, 동천축국 등의 나라들과 경계가 접해 있다. 옷을 입는 복장과 음식, 사람들의 풍속은 중천축국과 비슷하다. 다만 말은 좀 다르고 땅은 중천축국보다 덥다. 토지에서 나는 물건은 무명, 천, 코끼리, 물소, 황소가 있다. 양도 조금 있으나 낙타나 노새, 당나귀 등은 없다. 벼는 있으나 기장이나 조 등은 없다. 솜이나 비단 같은 것은 오천축국에는 모두 없다. 왕과 수령, 백성들은 삼보를 지극히 공경하며, 절도 많고 스님들도 많으며,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진다.
산속에 천사(天寺)라는 절이 하나 있다. 용수 보살(龍樹菩薩)이 야차신(夜叉神)을 시켜 지은 것으로,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다. 산을 파서 기둥을 세우고 삼층 누각으로 지었는데, 사면이 모가 나면서도 둥근 형이다. 둘레가 300여 보나 된다. 용수 보살이 살아 있을 적에는 절에 3,000명의 스님이 있었고 공양미도 15섬이나 되어, 매일 3,000명의 스님들에게 공양하였다고 한다. 쌀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고 써도 다시 생기곤 하여 원래 양이 줄어들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절이 황폐해져 스님들이 없다. 용수는 나이 70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입적하였다. 마침 남천축국의 길에서 오언시를 지어 읊어 보았다.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뜬 구름만 흩날리며 돌아가고 있네.
편지라도 써서 구름 편에 부치고 싶건만
바람이 급해 구름은 돌아보지도 않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는데
남의 나라 땅 서쪽 모퉁이에 와 그리워하네.
더운 남쪽 천축은 기러기도 없으니
누가 고향의 숲을 향해 날아가려나.---pp.60~61'8.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중에서
토화라국(토카리스탄)에서 동쪽으로 7일을 가서 호밀(胡蜜, 와칸Wakhan) 왕이 사는 성에 이르렀다. 오다가 마침 토화라에서 번(蕃: 서쪽 이역 변방)으로 들어가는 중국 사신을 만났다. 이에 간략하게 넉 자의 운을 맞춘[四韻] 오언시(預言詩)를 지었다.
그대는 서쪽 이역이 멀다고 한탄하지만
나는 동쪽 길이 멀다고 탄식한다네.
길은 험하고 산마루엔 눈이 잔뜩 쌓였는데
험한 골짜기 길엔 도적떼가 들끓고
새도 날다가 솟아 있는 산봉우리에 놀라며
사람은 가다가 조심조심 외나무다리도 건너야 한다네.
평생 눈물을 훔쳐본 적 없었는데
오늘따라 하염없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구나.
겨울 어느 날 토화라(토카리스탄)에서 눈을 만난 소회를 오언시로 읊었다.
차디찬 눈이 얼음 위에 쌓이고
차가운 바람이 땅이 갈라질 듯 매섭게 부는구나.
바다마저 얼어붙어 발라놓은 단(壇)인 듯하고
강물은 벼랑을 갉아먹고 있네.
용문(龍門)엔 폭포수마저 얼어 끊기고
우물 가장 자리도 도사린 뱀처럼 얼어붙었는데
불을 벗하여 층층대를 오르며 노래하지만
어떻게 파밀(播密, 파미르 고원)을 넘을 수 있을까?
호밀 왕은 군사가 적고 약해 스스로를 지켜낼 수가 없어서 대식의 관할 하에 있다. 해마다 비단 3,000필을 세금으로 보낸다. 주거지가 산골짜기여서 처소가 협소하고 가난한 백성이 많다. 옷은 가죽 외투와 모직 적삼이며, 왕은 비단과 모직 옷을 입는다. 빵과 보릿가루만을 먹는다. 이곳은 매우 추워 다른 나라들보다 추위가 훨씬 더 심하다. 언어도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 양과 소가 나는데, 아주 작고 크지 않다. 말과 노새도 있다. 스님들도 있고 절도 있으며, 소승법이 행해진다. 왕과 수령, 백성들 모두가 불교를 섬기며 외도(外道)에 귀의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나라에는 외도가 없다. 남자는 모두 수염과 머리를 깎으나,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주거지가 산 속이기는 하나, 그곳 산에는 나무와 물 그리고 풀조차 없다.
--- pp.152~154 '33. 객수(客愁)를 달랬던 호밀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