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 돈짱은 아라가세 4인조 패거리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돈짱에게 큰소리로 덤비라고 응원을 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척한다. 자기도 당할까봐…
아이들 앞에서 바지가 벗겨지는 창피를 당한 돈짱은 학예회 발표회날 무대에서 아라가세 바지를 벗기고 전학을 간다. 그런데 아라가세도 중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졸업식날 나는 의자에 올라가 돈짱에 대하여 모르는 척한 일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돈짱이 집단괴롭힘 당한 것을 모르는 척 했던 '나'의 고백
--- 00/01/05 허은순(purpleiris@channeli.net)
돈짱이 야라가세 패거리들에게 집단 괴롬힘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히 야라가세 패거리들이 지나갈 때 돈짱이 재채기를 했다는 이유뿐이었습니다. 단지 그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야라가세 패거리들은 그 후로 집요하게 돈짱을 괴롭히고, 이 책의 화자인 '나'는 다른 아이들과 그저 모르는 척 할 뿐입니다. 선생님이 모르는 사이 야라가세 패거리들의 괴롭힘은 더욱 심해집니다. 연극 연습을 가장해 괴롭히고 심지어 머리를 다치게도 합니다.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까지 시킵니다. 우연히 수퍼에서 돈짱이 샤프를 훔치는 것을 목격한 '나'에게 샤프를 억지로 떠맡겨서 입을 못 열게 하는 교활함도 보입니다. 샤프를 귓가에 대고 '나'를 협박하는 야라가세는 얼마나 소름이 끼치는지 모릅니다. 야라가세가 샤프를 '나'의 귓가에 대고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겁을 주는 장면에서는 '찰칵찰칵'하는 소리가 얼마나 소름끼치는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그려 놓았습니다. 야라가세라는 아이는 그 아이가 정말 아이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교활하고 섬뜩합니다.
그러다 '나'는 돈짱이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을 오뎅 파는 아저씨에게 푼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아버지에게 털어놓으리라 결심합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도 학교에서 당하는 일들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조금도 짐작하기 못합니다. 돈짱은 결국 샤프를 훔친 사건을 사람들에게 알렸고, 학예회 때는 무대에서 연극을 하던 도중에 야라가세에게 도전합니다. 그 후 돈짱은 전학을 가죠. 하지만, 그것으로 일이 끝난 것을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밝혀진 뒤 어른들의 태도는 어떠했던가요? 야라가세의 아버지는 오히려 돈짱이 부추겼다고 목소리를 높여 야라가세를 두둔했고,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 애에겐 아무 문제없으니 다행'이란 결론을 내립니다. 모르는 척하기에는 어른도 마찬가지군요. 그러나 '나'는 자신이 모르는 척했다는데 대해 자책감을 느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럴 즈음에 야라가세가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있는 것을 그저 모르는 척 하지 못했던 오뎅 파는 아저씨의 포장마차가 죄 부서지는 일이 생깁니다. 그 이후 체육관에서 졸업식예행 연습을 하던 '나'는 그 동안 돈짱이 괴롬힘을 당할 때 모르는 척했던 것에 대해 모두에게 고백합니다.
이 책의 표지그림(반 잘라진 가면 사이에 아이가 있고 가면을 벗어 들고 있습니다.)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 책에서 차지하는 얼굴의 위치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 책에 그려진 그림은 직설적으로,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과장되게, 어떤 때는 섬뜩하게 글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글로 일어나는 일들을 구구절절이 설명해서 읽는 이들에게 이해를 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스쳐 지나가는 일인 것처럼 툭툭 던져 놓습니다. 별 관심이 없는 것 처럼요. 그리고 눈에 띄는 점은 단순화된 얼굴로 많은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 한 부분이 치카코가 돈을 잃어버린 일 이후 다시 교과서랑 노트을 잃어버렸다고 하자 나타나는 아이들의 반응을 단순화된 얼굴로 나타낸 부분입니다. 처음에 나타난 아이들의 얼굴은 잔뜩 웃고 있지만, 치카코가 대응하자 아이들의 얼굴은 한 쪽으로 쏠려 있는데다 찌그려져 있습니다. 이때 야라가세가 대꾸하니 그나마 아이들의 얼굴은 흐물흐물 흐트러지고 형체도 없이 꼬리를 감춥니다. 집단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해두어 착잡하기까지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체육관에 모인 아이들의 얼굴은 처음에는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에서 돈짱이 썼던 것 같은 가면 같은 얼굴을 하고있죠. 모두 모르는 척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나'의 고백을 듣고 난 아이들의 얼굴은 달라집니다. 가면이 아닌 사람의 얼굴로 변해 있습니다. 모두 눈을 뜨고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관심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작가의 직설적인 그림은 '나'가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나'가 학교에서 당한 일을 듣고도 아버지의 얼굴은 신문에 가려 보이지도 않고, 어머니도 뒷모습을 하고서는 마주 앉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음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이후에 나오는 부모님의 모습에서도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자 '나'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샤프로 마구 되는대로 그어놓은 것입니다. 더 이상 '나'의 심리상태를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문제이기도 한 '집단 괴롭힘'에 대해 잘 묘사했습니다. 그래서 읽는 이들에게는 요즘 심심치않게 들리는 '집단괴롬힙'에 대해 '우리 아이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안심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