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8년 03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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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20쪽 | 620g | 145*213*30mm |
ISBN13 | 9791160801248 |
ISBN10 | 116080124X |
출간일 | 2018년 03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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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20쪽 | 620g | 145*213*30mm |
ISBN13 | 9791160801248 |
ISBN10 | 116080124X |
진수가 위나라를 정통에 놓으면서도 촉나라와 오나라에 독립된 역사적 위상을 인정해주려 했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진수는 촉나라 출신이고 촉에서 관리 생활을 했으므로 당대의 중요한 사건을 직접 보고 들었고, 통치자들의 경력을 잘 알았으며, 그 시대의 제도에도 익숙했다. 게다가 그는 《제갈씨집諸葛氏集》이라는 책을 편집했으므로 제갈량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했다.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의지할 것도 없이 노력만으로 천하를 차지하려고 했던 유비는 고향의 대학자 노식盧植에게 사사했으나, 공부보다는 잡기에 능했다. 하지만 평소 말수가 적고 아랫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며 기쁨이나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다투어 그와 사귀고자 했다. 분명한 사실은 유비는 조조, 손견孫堅(손책, 손권)과는 출생 배경이 전혀 다르고 의지할 만한 지연이나 혈연도 없었다는 점이다. 유비는 형제도 없고, 자식 이외에는 친족도 없으며, 같은 고향 부하도 장비와 간옹簡雍뿐이었다. 따라서 유비가 한 왕조를 부활시킨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유비의 정치적 입지는 후한의 군벌 세력과 다른 점이 있으니, 구세제민救世濟民의 원대한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가 한실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분투노력한 것은 유가적 가치관과 맞닿아 있음을 의미한다. 유비는 겸허한 성품의 소유자였고 백성을 가장 높은 위치에 두었다. 수십 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 조운 등이 온 힘을 다해 지켜주었다. 제갈량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었다. 형주목 유표와 친분이 두터웠던 숙부 제갈현諸葛玄이 죽자 제갈량은 직접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은둔했다. 항상 자신을 관중管仲과 낙의樂毅에 비유했지만, 당시에는 이를 받아들이는 자가 없었다. 오직 박릉군의 최주평崔州平과 영천군의 서서(徐庶, 서원직徐元直)만 제갈량과 친교를 맺었다. 그 무렵 유비는 신야에 주둔하고 있었다. 서서가 유비를 만났는데, 유비는 서서를 인물로 생각했다. 때마침 서서가 유비에게 “제갈공명은 와룡臥龍”이니 “장군께서 몸을 굽혀 수레로 찾아가야만 합니다.”라면서 만날 것을 강력하게 권했다. 이에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러 갔는데, 모두 세 차례 찾아간 후에야 비로소 만났다고 한다. 여기서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한 인물은 서원직인데 그에 관한 전傳이 없으니 그의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다만 과장이 적지 않게 들어갔음은 분명하다. 촉은 어떻게 멸망했는가? 263년 10월 위나라 종회鐘會는 18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촉나라로 들어가는 입구인 검각을 지키던 촉나라 대장 강유姜維와 대치하게 된다. 한편으로 관중에서 내려온 등애鄧艾는 음평에서 강유로 들어와 촉을 급습하여 면죽에서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諸葛瞻이 이끄는 촉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른다. 촉나라 조정은 대경실색하여 투항을 결의했고, 망국의 군주 유선은 도읍 성도의 북쪽까지 온 등애의 군문軍門에서 스스로 손을 묶고는 자신의 죄를 사죄하고 항복했다. 이로써 촉나라는 유비에서 유선으로 이어지는 43년 역사를 허무하게 마감했다. |
《정사 삼국지》 해제 10 〈촉서〉 해제 22 촉나라 가계도 31 일러두기 38 1. 유이목전劉二牧傳 감언이설에 빠져 제위를 넘보다|유언전劉焉傳 40 어리석어 유비에게 촉 땅을 빼앗기다|유장전劉璋傳 45 2. 선주전先主傳 때를 기다린 천하의 효웅梟雄|선주전先主傳 52 3. 후주전後主傳 우매하여 나라를 빼앗긴 군주|후주전後主傳 84 4. 이주비자전二主妃子傳 후처였으나 바른 행실로 존경받다|감 황후전甘皇后傳 98 유비의 정비正妃|목 황후전穆皇后傳 100 유선의 부인이 된 장비의 맏딸|경애황후전敬哀皇后傳 102 유선과 최후를 함께한 장비의 딸|장 황후전張皇后傳 103 유선에게 배척당한 이복동생|유영전劉永傳 104 요절한 유선의 이복동생|유리전劉理傳 106 종회의 난 때 살해당한 불운의 태자|유선전劉璿傳 108 5. 제갈량전諸葛亮傳 세상 다스리는 이치를 꿰뚫은 불세출의 정치가|제갈량전諸葛亮傳112 6. 관장마황조전關張馬黃趙傳 의리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다|관우전關羽傳 140 장판에서 홀로 조조의 대군을 막다|장비전張飛傳 146 조조도 두려워한 서량의 맹장|마초전馬超傳 150 하후연을 죽여 노익장을 과시하다|황충전黃忠傳 154 유선을 품고 조조의 대군을 돌파하다|조운전趙雲傳 156 7. 방통법정전龐統法正傳 익주 탈환책을 내고 화살에 맞아 아깝게 전사하다|방통전龐統傳 160 계책을 내어 하후연을 죽이고 한중을 평정하다|법정전法正傳 166 8. 허미손간이진전許?孫簡伊秦傳 인재를 사랑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다|허정전許靖傳 176 유비가 곤궁할 때 군자금을 대주다|미축전?竺傳 184 유비를 그림자처럼 수행하다|손건전孫乾傳 186 풍자와 기지가 넘쳤던 유비의 세객|간옹전簡雍傳 187 언변이 뛰어났던 유비의 비서|이적전伊籍傳 189 탁월한 문장가이자 절세의 논객|진복전秦宓傳 191 9. 동유마진동진여전董劉馬陳董陳呂傳 제갈량과 나랏일을 협의한 청빈한 관료|동화전董和傳 204 청렴하고 고상했던 문장가|유파전劉巴傳 207 백미白眉 고사의 주인공|마량전馬良傳 210 오나라와 맹약을 맺어 평화를 이끌어내다|진진전陳震傳 214 충심으로 유선을 바르게 보좌하다|동윤전董允傳 217 청빈하고 유능했으나 지나치게 엄해 신망을 잃다|여예전呂乂傳 222 10. 유팽요이유위양전劉彭寥李劉 魏楊傳 죄를 부인하다가 자살을 명령받은 유비의 양자|유봉전劉封傳 226 오만하여 반역을 꾀하다가 처형되다|팽양전彭?傳 232 인사에 불만을 품고 조정을 비방하다 유배되다|요립전廖立傳 237 제갈량을 모함하여 쫓겨나다|이엄전李嚴傳 240 유선이 아내와 사통했다고 의심했다가 처형당하다|유염전劉琰傳 245 양의와 제갈량의 후계를 다투다가 패하여 죽다|위연전魏延傳 247 제갈량의 후계가 되지 못하자 불만을 토로하다 죽다|양의전楊儀傳 252 11. 곽왕상장양비전?王向張楊費傳 수백 명으로 고립된 가맹성을 일 년 넘게 지켜내다|곽준전?峻傳 256 제갈량의 남방 정벌을 만류한 경제 관료|왕련전王連傳 259 높은 학문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다|상랑전向朗傳 261 지조가 굳었던 제갈량의 참모|장예전張裔傳 264 근면하고 공정하여 제갈량의 신임을 받다|양홍전楊洪傳 268 유비의 칭제稱帝를 반대하다가 좌천되다|비시전費詩傳 272 12. 두주두허맹래윤이초극전杜周杜許孟來尹李??傳 제갈량의 존경을 받은 은자|두미전杜微傳 278 천문을 읽고 점을 친 자|주군전周?傳 281 촉의 멸망을 예언하다|두경전杜瓊傳 284 박학으로 이름을 날린 유학자|허자전許慈傳 287 직언을 좋아하여 세상의 미움을 받다|맹광전孟光傳 289 신중치 못한 언행으로 여러 번 쫓겨난 훈고학자|내민전來敏傳 293 경서와 사서에 통달하여 유선의 스승이 되다|윤묵전尹?傳 295 경학과 잡학에 두루 능했던 학자|이선전李?傳 296 문장 해석에 정통한 일세의 큰 선비|초주전?周傳 298 탁월한 문장가로 유선을 끝까지 따른 충신|극정전?正傳 310 13. 황이여마왕장전黃李呂 馬王張傳 위나라에 귀순했으나 끝내 촉나라를 버리지 않다|황권전黃權傳 322 제갈량의 남정南征을 승리로 이끌다|이회전李恢傳 327 절개를 지켜 반란자 옹개를 꾸짖다|여개전呂凱傳 330 과감한 결단력으로 여러 차례 남쪽 변방을 평정하다|마충전馬忠傳 334 위연의 모반을 평정하다|왕평전王平傳 337 덕으로써 15년간 만족蠻族을 다스리다|장의전張?傳 341 14. 장완비의강유전蔣琬費?姜維傳 정직하고 엄숙했던 제갈량의 후계자|장완전蔣琬傳蔣 350 마지막까지 제갈량의 뜻을 받든 유선의 보좌|비의전費?傳 357 지나친 출병으로 촉의 멸망을 재촉하다|강유전姜維傳 361 15. 등장종양전鄧張宗楊傳 오나라와 국교를 회복시킨 명사신|등지전鄧芝傳 372 강유와 함께 촉의 부활을 꿈꾸다|장익전張翼傳 376 외교로써 오나라 군사를 물리치다|종예전宗預傳 379 강유를 비웃다 평민이 되어 죽다|양희전楊?傳 382 촉나라 연표 402 찾아보기 409 |
유비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도원결의가 정사 삼국지에는 없다. 삼국지연의에서 최고 스펙타클한 장면, 적벽대전도 한 줄로 끝이다. 시시하다.
유비란 인물이 漢 나라 경제의 아들 유승의 후예라고 했는데, 이 유숭이란 자는 아들이 120명이었다고 한다. 그 120명 중 누가 유비의 선조인지는 모른다. 즉 金 씨 성이면 다 옛날 왕의 후예인 것과 마찬가지다.
한 나라 고조 유방과 촉 나라 고조 유비는 적에게 쫒기다 수레에서 자식을 내버린 전력이 있다. 그 유전자는 자식 버리기를 돌 버리듯 하나보다. 유비 뒤를 이은 유선은 티미할 뿐이어서 조조 아들 조비에게 나라를 바치고 만다. 고작 이런 인물을 갖다가 영웅호걸로 만들었으니 '삼국지연의'는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좀 너무 나갔다.
제갈량
삼고초려는 맞는데, 적벽대전은 몇 줄 뿐이고, 볏집배를 이용해 활을 모아온 장면은 뻥이다.
관우와 장비는 제갈량을 탐탁찮게 여겼다.
유비가 죽을 때 유언하기를, (내)후계자가 보좌할만 하면 도와주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나라를)가지세요, 라고 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신하된 의리를 다하고자 반푼이 유선을 왕으로 섬겼다. 왕을 허수아비로 세우고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리에 올라 맘껏 권력을 휘둘렀으니 과연 현명하도다.
그런데 제갈량을 모사가로 보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제갈씨집'에 보면, "제갈량의 재능은 군대를 통치하는 데는 뛰어났지만 기이한 계책이라는 점에서는 열등했으며, 백성을 다스리는 재간이 군사를 지휘하는 재능보다 나았다, 고 하였다. 또한 진수는, 해마다 군대를 움직이고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아마 임기응변의 지략이 그의 장점이 아니었기 때문인 듯하다, 고 했다. 즉, 삼국지연의에서 그린 지략가 제갈량은 완전 뻥인 것이다.
관우
미염공(수염이 멋진) 관우가 조조에게 잡힌 후 원소와 싸울 때, 만 명 속에 있는 안량의 목을 베어 돌아온 고사는 있지만, "아직도 식지 않았군"은 없다.
관우를 흠모한 조조는 그를 붙잡아 두길 원했으나 관우는 유비와 함께 죽음을 같이하겠다는 맹세를 되새기며 조조를 떠난다. 삼국지연의에서처럼 장엄한 도원결의는 없었지만 유비, 관우, 장비가 큰 뜻을 함께 도모하며 의형제를 맺은 일은 있었던 것 같다.
또한 풀어주면 화근이 될 줄 알면서도 관우를 놓아준 것으로 보아 조조는 간신이라기보다는 매우 큰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장비
유비가 조조에게 쫒길 때 처자식 마저 버리며 장비에게 기병 20명을 주면서 뒤를 봐달라며 줄행랑쳤다. 장비는 장판교에서 혼자 대군과 맞짱 떴다. 장비의 기세에 눌려 아무도 대적하려드는 자가 없었으니 과연 지옥에서 온 맹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장비였으나 부하들을 개패듯했으므로 잠자다가 부하인 범강, 장달에게 어이없게 죽었다. 장수로써 싸움판이 아닌 침대에서 죽었으니 치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사 삼국지'를 보면 '삼국지연의'에서처럼 인물들이 생동감 있게 다가오지 아니한다. 또한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인물을 기술하면서 배경으로 언급되기 때문에 졸가리 잡기가 어렵다. 나관중은 이런 개략적 자료를 바탕으로 어쩌면 그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삼국지연의는 사실이 3, 뻥이 7이라 하는데, 나는 정사 삼국지를 읽으면서 진수보다는 나관중이 더 천재로 보였다.
지난 6월7일.. 내 생애에 언제 다시 개최될지 여부를 알 수 없는, 2002 FIFA WORLD CUP KOREA JAPAN 의 개막전 말고, 당시 우리나라가 속해있던 D조에서 우리나라와 폴란드의 조별리그 첫경기가 부산월드컵 경기장에서 킥오프 했다. 당시 군대를 전역하고, 민간인 신분을 만끽하고 있으면서.. 아직 복학하기전의 나로서는 집근처인 아시아드 주경기장으로도 사용된 월드컵 경기장에서 우리나라 첫경기를 직관하고 싶었고, 그래서, 어렵사리 표를 구해서 볼 수 있었다. 나머지 이야기들(홈에서 였다지만, 암튼간에 우리나라가 월드컵 첫승이었고, 이후 4강까지 진출하는 동화같은 이야기의 시작같은)이야 다 아는 것이니까, 더 후술하지는 않겠다.
어쨌거나, 그 때 그 경기에서, 두번째 골을 작렬시켜서, 사실상 승부의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한, 한일월드컵의 영웅인 유비 유상철 선수(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가 아직 더 해야할 일이 많은 나이(향년 50세)임에도 불구하고 췌장암으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왜 고 유상철 전 인천 감독의 별명이, 단지 성이 같은 이유로 '유비'라고 불린 것일까? 그렇게 보게되면, 이름이 그러하다해서, 뚜렷한 족적하나 없던.. 어디서 굴러먹던 것이 갑툭튀해서 히어로다 영웅이다 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정구죽천'이라는 소리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때, 직관을 할 당시, 유상철 선수의 골 세레머니는 손을 덩실덩실 흔들면서 관중석을 향해 전부 기립해서 춤을 춰도 된다는 일종의 흥을 돋구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와서 다시 보기로 보니까, 더더욱 짜릿한 느낌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찌르르~ 하고 느껴지던 기분이 다시 생각난다. 그렇게 나의 첫 국제대회 직관(뭐 그전에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직관은 몇 번 했었었지만)에서 전율을 느끼게 해준, 영웅이 하늘의 별이 된 것이다.
진수의 삼국지(정사)는, 허구를 걷어낸 연의에서조차 더 본질만 남은 것이기에 읽다보면, 좀 초라해진다. 겨우 이것이었나? 싶은 내용이, 나관중이라는 소설가에 의해서 뻥튀기 된 것을 비교하면 할 수록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협소설.. 이라고 잘 쳐주면 그러한.. 무협지인 삼국지연의가 아닌 정사를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위서와 오서 그리고 촉서까지 한권씩 구매하였지만.. 제일 먼저 읽어보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관우장비 라는 의형제를 제일 먼저, 정의(?)롭다고 편견처럼 작용시켜준 연의 덕분에.. 그리고 유상철 전 인천 감독의 별세 소식 때문에 제일 먼저 서평을 쓰고 싶어진 것이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 삼국지연의를 접하지 정사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많을 겁니다. 저 역시 여러 가지 버전의 삼국지연의는 읽었지만 정사는 한 번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좀 더 삼국지에 대해 깊이, 자세하게 알고 싶어 정사를 구입하게 됐습니다.
소설에 비해 박진감이나 흥미는 없지만 허구가 섞인 연의와 달리 인물에 대한 평을 담백하고 간결하게 다루어 나름대로 읽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번역을 하신 김원중 교수님이 크게 공을 들여서 그런지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원전은 읽어 볼수도 없겠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번역을 해주신 역자에게 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드커버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만큼은 소중하게 다루고 싶고, 그래서 하드커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