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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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80쪽 | 388g | 132*225*20mm |
ISBN13 | 9788937484087 |
ISBN10 | 8937484080 |
발행일 | 2012년 0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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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80쪽 | 388g | 132*225*20mm |
ISBN13 | 9788937484087 |
ISBN10 | 8937484080 |
이야기의 배경은 한 고성이다. 18세기 T부인과 기사의 느리지만 열정적인 하룻밤 사랑, 그리고 20세기 곤충학회의 참가자 베르크와 뱅상 또 체코 학자 체호르집스키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곳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이 고성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나'가 있다.
나는 아내 베라와 함께 고성으로 가는 길에 미친듯이 속도를 올리며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목격하고, 속도란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물한 최고의 엑스터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라져버린 느림을 생각한다. 이 바쁨과 속도의 시대에 느림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느림의 기쁨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하고.
나의 이야기, 그리고 T부인과 기사의 사랑 -서로 밀고 당기며 느리지만 서서히 불타올라 뜨거운 열정을 체험하고야 마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지식은 베르크와 뱅상 그리고 체코 학자의 이야기가 교차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이야기가 이야기의 서두인 느림과 무슨 관계가 있나 책을 덮고 생각해 보았는데 아직 뚜렷하게 잡히는 것은 없다. 베르크와 뱅상을 통해 제기되는 춤꾼의 주제는 소년이 온다에서 먹는다는 행위에 치욕스러운데가 있다는 것 만큼이나 나에게 강렬한 통찰을 제공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대한 고민들. 얇은 책이라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사유할 수 있는 주제는 무겁다. 기억과 망각의 속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의 제목으로 익숙한 작가이다.
이 책은 내 책장에 십 년 넘게 꽂혀 있었으나, 왠지 철학적이고 어려울 것 같아 책장을 멋지게 장식하는 용도로만 놓아두었다가 읽어보았다. -> 결론 : 겁먹었던 게 우습게도 유쾌하고 풍자적이고 재치 백 단짜리 소설이다.
'인간의 우스꽝스러운 뒷면'을 예리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우아한 철학적 사고가 바탕이 되기에 이 책을 읽는 것도 무척 즐거운 사고의 과정이었다.
세 개의 큰 줄기로 서술되는 독특한 방식인데, <프랑스의 어느 고성에서 묵게 된 소설가와 아내> - 소설가는 관찰자의 역할을 하면서 다른 두 줄기의 이야기를 관조하고 비평한다, <'내일은 없다'라고 하는 18세기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 기사의 하룻밤의 독특한 환락 모험> , <벵상이라는 젊은 이의 콤플렉스(?)와 돈키호테적인 수영장 가에서의 가짜 정사를 하기까지> 의 세 줄기가 엮이면서 묘하면서도 매력적인 이야기 줄기를 만든다. (이런 형식의 소설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소설가는 한가한 프랑스 시골길에서 추월을 엿보는 뒤차를 관찰하며 현대인은 왜 속도에 몰입하는가를 고찰해보며, 벵상과 그 주위의 인간들은 텔레비전과 카메라로 대변되는 현대 세계에서 타인을 의식하여 주목을 받고 싶은 우스꽝스런 욕망으로 가득찬 '춤꾼'들로 그려진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벵상의 욕망은 수영장 가에서 커지지 않은 성기로 진짜인 척 섹스를 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치닫는다. '내일은 없다'라는 18세기 소설 속의 주인공은 T부인이라고 하는 여자와 '느린' 속도로 3단계를 거쳐 황홀한 하룻밤을 보내지만 그녀의 정부를 남편으로부터 감추려고 꾸며낸 가짜 정부 행세였음이 아침에야 밝혀진다. 그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으나 초라한 조연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침에 벵상은 18세기 기사의 우스꽝스럽고 촌스러운 복장을 한 젊은이와 마주치고 그 둘은 (둘 중 누구도 상대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 채 헤어진다. 나(소설가)는 오토바이에 탄 벵상이 속도를 높이며 자신을 망각하는 것을 관찰하여 소설을 끝맺는다.
책을 몇 장 넘기자마자 너무나 멋진 구절이 있어서 메모해 두었는데, 다 읽고 나니 이야기의 결론과 수미쌍관이 맞는 것 같다.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그는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있다. 그는 시간의 바깥에 있다. 달리 말해서, 그는 엑스터시 상태에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나이, 자신의 아내, 자신의 아이들, 자신의 근심거리 따윌 전혀 알지 못하며, 따라서 그는 두려울 게 없다. 두려움의 원천은 미래에 있고, 미래로부터 해방된 자는 아무것도 겁날 게 없는 까닭이다."
속도의 엑스터시의 추구는 자신을 망각하기 위한 것이다. 왜 망각해야 할까? 부끄럽기 때문이다. 왜 부끄러운가? 멍청이이기 때문이다. 왜 멍청이인가? 춤꾼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앞에서 카메라 앞에서 남의 시선 앞에서 시선을 끌고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춤꾼. 이라고 간단히 나름의 결론을 요악해본다.
두번째다. 작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기묘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쩌며 쇠락해 가는 자신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그가 망명 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쓴 마지막글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절망스런 조국의 운명은 의사에서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유리창 딱이 전락한 주인공으로 조국을, 자신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이에비해 <느림>은 밀란 쿤데라 특유의 능청스러움이 짙게 배여있으면서도 삶의 집착이 읽힌다.
기행문 형식을 빌어 쓴 중편 소설이다.
"마차의 움직임에 흔들려 두 육체가 처음에는 그들 몰래 접촉했다가 곧 그들이 알게 접촉하며, 그리하여 이야기가 엮인다."(10쪽)
스토리는 아직도 낯설다. 그닥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나 심령을 후벼파는 서술 방식은 심장을 옥죄어 온다. 물론 번역된 한글로 읽지만, 그렇다할지라도 원저에서 느껴져오는 문장력이 숨을 막히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심장이 두근 거린 적이 몇 번 없는데, 밀란 쿤데라는 그 몇 번 중의 한 번이다.
4는 호텔에 들어가 TV를 보는 장면을 묘사한다. 마치 지금 그 장면을 곁에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섬세하게 장면을 그려낸다. 글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어쩌면 내가 밀란 쿤데라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의 사상이 아닌 문장력이라는 생각이 불쑥 든다. 그의 글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절망과 회한, 그리움, 퇴폐가 꿈틀 거린다. 그럼에도 그는 삶이 처절하게 아름다움을 글로 조목조목 변증해 나간다.
장면 6에서 신비의 인물로 상정한 퐁트벵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는 도덕을 설교하는 게 아니라, 도덕을 춤추는 거야! 그는 제 삶의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를 감격시키고 눈부시게 하려는 거지! 그는 마치 조각가가 자신이 조각 중인 조각상을 사랑하듯 제 삶을 사랑해!"(29쪽)
그는 삶을 사랑한 작가다. 어쩌면 느림에서 보여주려했던 두 사람의 불륜도 삶에대한 사랑의 고백이 아닐런지.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외친다.
내일은 없다.
청중도 없다.
제발, 친구여, 행복하게나. 막연한 느낌이지만 난 행복할 수 있는 자네 능력에 우리 유일한 희망이 달렸다고 느끼네.
마차는 안갯속으로 사라져 갔고, 나는 시동을 건다.
첫 장면을 회귀한다. 지독한 쾌락 주의자. 행복은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심산이다. 그래서 난 밀란 쿤데라의 이기적 행복의 추종자가 되었다. 오늘 난 행복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