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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파일명 서정시

창비시선-426이동
나희덕 | 창비 | 2018년 11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2 리뷰 26건 | 판매지수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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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2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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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78g | 128*188*20mm
ISBN13 9788936424268
ISBN10 893642426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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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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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중에서

다만 비스듬히, 비스듬히, 말하는 법을 배울 거야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과
길게 성호를 긋고 사라지는 별똥별에 대해
수많은 대각선의 날들, 날개들, 그림자들, 핏자국들에 대해
대각선의 종족이 남긴 유언들에 대해
---「대각선의 종족」중에서

눈동자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발들은, 얼굴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중에서

절망은 길가의 돌보다 사소해졌다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느냐고 누군가 물었다
---「나날들」중에서

손가락 사이로 힘없이 흘러내리는 말. 모래 한줌의 말. 혀끝에서 맴돌다 삼켜지는 말. 귓속에서 웅웅거리다 사라지는 말. 먹먹한 물속의 말. 해초와 물고기들의 말. 앞이 보이지 않는 말. 암초에 부딪치는 순간 산산조각 난 말. 깨진 유리창의 말. 찢긴 커튼의 말. 모음과 자음이 뒤엉켜버린 말. 발음하는 데 아주 오래 걸리는 말. 더듬거리는 혀의 말. 기억을 품은 채 물의 창고에서 썩어가는 말. 고름이 흘러내리는 말. 헬리콥터 소리 같은 말. 켜켜이 잘려나가는 말. 잘린 손과 발이 내지르는 말. 핏기가 가시지 않은 말. 시퍼렇게 멍든 말. 눌린 가슴 위로 내리치는 말. 땅. 땅. 땅. 땅. 망치의 말. 뼛속 깊이 얼음이 박힌 말.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말. 감전된 말. 화상 입은 말. 타다 남은 말. 재의 말.
---「문턱 저편의 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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뱉지도 못하고 토해낸, 남루와 비루, 청음과 득음, 허기 같은 살기(殺氣), 죽음 그리고 죽음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시인을 쓰게 하는, 서른해 시의 시간들로부터 스스로 멀어져서, 돌아보지 않고 온몸으로 돌아서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음으로 허허로운, 가파른, 너른, 기록함으로 지우는, 지움으로 흔적을 남기는, 그 흔적에도 마음이 자주 걸려 넘어지는, 넘어진 자리에서 스러지는, 저주하지 않고 저주받는, 절망이라 하지 않고 절망하는, 기약 없이 보듬는, 이는 것들과 함께 일어, 차마 사람으로 건널 수 없는 사람의 일들을 건너는, 힘이라 할 것도 없는 힘으로 다시 쓰는, 오늘 우리가 처음 만나는 나희덕의 시, 우리가 처음 만나는 서정시.
-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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