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내가…… [진짜] 죽은 거야?」
그는 망연자실한다. 그리고 일곱 단계를 순서가 조금 다르게 다시 겪는다. 분노, 부정, 수용, 체념, 슬픔, 타협, 충격.
「말도 안 돼! 난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니에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웰즈 씨. 당신은 말이죠…… 일체의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고 유약한 것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것, 즉 당신의 정신만 간직하게 됐다고 생각해 봐요.」
「그러니까 이게, 끝……이라는 거예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거네…….」
「마침맞게 깨달았네요.」
그는 얼이 빠져 의자에 주저앉는다.
「끔찍해.」
「[달라진] 거예요.」
「내가 죽다니, 젠장! 내가 죽었어, 죽었어, 죽었다고! 정말 죽었어!」
「누구한테나 한 번은 닥쳐요……. 당신한테는 오늘, 지금, 여기에서인 거예요. 나한테도 일어날 일이에요. 나중에, 다른 곳에서. 당장은 아니길 바라지만.」
--- 「1권: p.33」
「당신 소설 중간중간에 나오는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도 참 좋았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에드몽 웰즈 교수]는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내 친척 할아버지세요. 그분은 자신을 위해 실제로 백과사전을 만들었고 우리 가족에게 유산으로 남기셨죠. 어느 날 그걸 우연히 읽게 됐는데,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백과사전 속 정보를 널리 전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은 어떤 일을 하셨어요?」
「개미를 연구한 곤충학자셨어요. 생물학자이자 철학자, 역사학자이기도 하셨죠. 자신이 만든 특이한 백과사전에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제목을 붙이셨죠. 출간된 적은 없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 책을 가족의 교과서처럼 여기셨어요. 내 소설들에 나오는 유용한 정보가 그 책에 많이 들어 있어요.」
--- 「1권: p.54~55」
「영매의 95퍼센트가 허풍쟁이에 사기꾼이라……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니에요?」
「차라리 사람들이 영매들을 찾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양쪽 통행로가 분리된 채 있는 게 낫다는 생각 말이에요. 그러면 방금 당신이 목격한 그런 식의 부정적인 상호 간섭은 없어질 테니까요. 자, 이제 그만 가줘요. 당신이 관심을 가질 행사에서 내일 아침 다시 만나요.」
「엥? 뭐 말이죠?」
「당신 장례식 말이에요. 살인자가 있다면 틀림없이 식장에 나타나겠죠.」
그녀가 태블릿 PC를 가리킨다. 다음 문구가 선명히 보인다.
[소설가 가브리엘 웰즈의 장례식, 오전 9시,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
--- 「1권: p.199~200」
「웰즈는 [한마디로] 작가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죠. 그가 이런 방송에 출연하고 문단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문제예요. 다수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한 선동이 아니고 뭐겠어요. 시간이 유일한 비평가네 어쩌네 하는 건 오만이에요. 자기 책이 백 년 뒤에도 읽힐 거라고 생각하나 보죠? 아주 기고만장이군요. 미래 세대에게 어필하겠다는 건 그의 공상에 불과해요. 나는 고전만이 유일한 가치를 지닌 수준 있는 문학이라고 믿고 그것만을 옹호할 뿐이에요. 슈퍼마켓의 진열대를 채운 환상 문학, 영웅 판타지, SF, 추리, 스릴러, 공포 소설, 만화, 에로 소설, 이것들이 과연 문학입니까? 이것들은 상상의 소산이지 [진짜] 문학이 아니에요. 좋은 소설이라면 응당 지금 여기를, 현실과 현재를 말해야죠. 작가의 앎과 경험에서 나와야 좋은 소설이지, 환상의 결과물은 좋은 소설이 될 수 없어요.」
「웰즈,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진행자가 히죽거리며 가브리엘을 쳐다본다.
「프랑스, 아니 파리에서 인기를 끄는 유일한 문학인 오토픽션은 문학으로 위장한 테라피에 불과해요. 자신의 유년기를 소설로 쓰는 작가는 아무것도 새로 만들어 내지 않고 그저 관찰한 걸 기록할 뿐이에요. 그의 부모나 그를 둘러싼 세계, 그의 삶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가 만들어 낸 게 아니에요. 그들은 자서전을 쓰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신]을 공저자로 올려야 해요. 그들이 묘사하는 사람들과 풍경, 심지어 상황들까지 모두 신이 만든 거니까요.」
--- 「2권: p.38~39」
알랭 로트브리예가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의 검을 빼 들자 가브리엘 웰즈가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당신은 내게 고통을 가할 수 없어요. 난 순수한 영혼이거든요.」
「정말 그럴까? 별 볼 일 없는 작가 선생? 잘 생각해 보게, 어렸을 때 자네가 제일 아파하고 두려워했던 게 몸의 상처였는지 마음의 상처였는지.」
--- 「2권: p.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