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다는 것만으로 기쁜 존재의 소중함] 존재하는 것만으로 삶의 의지가 되는 친구인 릴리와 테드 이야기. "죽음을 속이는 데 인생을 다 써버린다면, 인생을 껴안을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란 메시지가 큰 울림을 전한다. "대방동에서 제일 예쁜 멍뭉이"란 말을 참 좋아하는 토니를, 오늘 집에 가서 꼭 껴안야줘야지. - 소설MD 김도훈
나는 개들이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우리의 가장 사적인 순간들에 함께하는지.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 그들은 우리의 말다툼과 눈물, 우리의 투쟁, 우리의 두려움, 사람 친구들에게 감추고 싶은 모든 비밀스러운 행동들을 목격한다. 그들은 목격할 뿐 심판하지 않는다. --- p.109
모든 좋은 기억들이 실수의 기억으로 떠오른다. 병치된 기억. 가려져 있던 더 어두운 추억들. 강아지 시절에 릴리가 내 신발을 모조리 계단 꼭대기에 가져다놓은 기억은 그녀가 그 계단에서 떨어지는 끔찍한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울타리로 그녀를 막아둘 생각을 못 했었으니까. 외과 수술 후 그녀의 방광을 누르며 좋아라 했던 일은 또다른 회상 장면으로 이어진다. 릴리가 소변을 누려 하지 않아서 내가 절망한 나머지, 아파서 끽 소리를 낼 만큼 세게 그녀의 목줄을 잡아당겼던 일로. 우리가 가장 길게 나눈 대화에 대한 기억은 가장 오래 이어졌던 침묵과 짝을 이룬다. 내가 그 모든 좋은 일들을 기억한다면, 나쁜 일들을 기억할 책임도 있는 것 아닐까? 추수감사절에 맛있게 먹고 즐긴 것을 기억한다면, 음식물 중독에 걸리게 한 것과 억지로 과산화수소를 먹인 것 역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밤에 그녀가 내 옆으로 파고들어 잠들었을 때 그녀의 가슴을 통해 전해지는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다면, 과산화수소를 잘못 삼켰을 때의 밭은 숨소리도 들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 pp.167-168
지나온 그 밤들에 그녀는 내가 왜 화를 내며 잠자리에 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알았다 하더라도 잊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들은 현재를 사니까. 왜냐하면 개들은 억울해하지 않으니까. 왜냐하면 개들은 그들의 분노를 매일, 매시간 털어내고, 절대 곪게 내버려두지 않으니까. 흘러가는 매 분마다 무책임을 선언하고 용서하니까. 모든 코너를 돌 때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 시작할 기회가 있으니까. 공이 튀어오를 때마다 기쁨이 솟아나고, 새로운 도약을 약속하는 거니까. --- pp.179-180
“죽음은 특별한 적이지요. 언제나 이기는 적.” 칼은 아주 잠깐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별 의미 없다는 듯이. “싸움을 그칠 때가 된 거라면 항복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에요.” --- p.240
“너도 좋아하는 추억이 있지 않니?” 릴리는 생각해본다. “내 모든 기억들이 다 좋아하는 기억인데.” 나는 이 말에 놀란다. “나쁜 기억들도?” “개들에게 나쁜 추억은 없어.” 부러워하며 나는 그녀 가슴의 벨벳처럼 부드러운 부분을 긁어준다. 얼마나 멋진 삶의 방식인가. --- p.250
“개들은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 나를 봐.” 나는 그녀의 턱을 쥐고 눈을 똑바로 들여다본다. “개들은 늘 착하고 사심 없는 사랑으로 가득해. 그들은 순수한 기쁨의 전달자들이야. 그 어떤 나쁜 일도 당해서는 안 돼. 특히 너는. 내가 널 만난 이후로 넌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내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일 말고 다른 것은 하지 않았어. 이해하겠니?”
죽음을 앞둔 나이든 개 이야기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좋아하는 이야기의 열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한다. 그러나 이 가슴 아픈, 궁극적으로는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이 소설이 내게 아주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열 마리가 넘는 반려동물과 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동물을 계속해서 사랑하고 동물에게서 사랑 받다 보면, 인간과의 이별을 애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실의 아픔과 만나며 그것을 견디는 법도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저자가 탁월하게 묘사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