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8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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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34쪽 | 790g | 153*224*36mm |
ISBN13 | 9788972979609 |
ISBN10 | 8972979600 |
발행일 | 2020년 08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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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34쪽 | 790g | 153*224*36mm |
ISBN13 | 9788972979609 |
ISBN10 | 8972979600 |
추천의 말 만남 어린 시절 혁명 룸펜인텔리겐치아 압록강을 넘어서 망명자들 결코 결혼하지 않을리라 중국 대혁명 광둥코뮌 목격자 하이루펑 나의 승리 재회 류링 투쟁 모함 아리랑 작가의말 |
아리랑을 몇 번 읽었다. 그래서 이 책은 원작을 만화로 얼마나 잘 표현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집어든 판이었다. 그런데 웬걸! 이건 완전히 새로운 ‘충격!’ ‘불꽃’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김산, 장지락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마누라가 그랬었다. 아리랑의 저자 님 웨일즈는 김산을 사랑한 것 같다고. 나도 동의한다. 어디 님 웨일즈 뿐이던가.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여인들은 김산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듯 싶다. 그만큼 매력적인 인물. 뒤집어 보자면 님 웨일즈가 아니었다면, 그가 남긴 아리랑이 아니었다면 과연 누가 있어 그의 삶을 증언해 줄 수 있었을까
나는 아리랑을 잘못 읽었던 것 같다. 그동안 기억에 있던 그 책이 아니다. 다시 정독을 해봐야겠다.
박건웅의 글과 그림도 훌륭하다. 원작을 빛나게 한다. 예전 작품들 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독립운동가 '김산'을 아는가. 김구, 안창호 같은 이른바 '네임드'는 아니지만, 타국 땅에서 자신의 삶을 불살라 조국 독립을 꿈꾸었던 그의 삶 앞에 우리는 충분히 삼가 두 손을 모으고 경의를 표할 만하다. 그의 본명은 장지락. <아리랑>은 님 웨일즈라는 외국 기자가 그를 만나 기록한 삶의 흔적이자, 그 이후의 삶을 덧붙인 역사이다. 온 몸으로 시대의 폭력과 싸우며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고 결국 그 결과는 보지 못한 채 스러졌던, 그래서 불꽃이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그의 삶을 이 '만화'책은 참 적절한 그림체로 묘사하고 있다. 섬세하지는 않지만 판화와 같이 선 굵은 그림체로 인물의 심리와 내면 갈등을 순간적으로 포착하고 느껴지게끔 하는 데에 이 책의 장점이 있다.
2월 28일에서 3월 1일로 넘어가는 그 밤에 이 책을 읽었다. 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얼마 안 있어 열렸던 5.18 추도식에서 유가족을 안아주던 그 장면으로부터 국가 기념 행사의 의미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 책을 그 밤에 골라 읽은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 같다. 그리고, '민족 최대의 역량을 결집시켜 보여주었던 평화적 저항 운동'이라는 찬사 일변도로 3.1운동에 접근하는 대신 조금은 색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만난 것이 신선했다. 사실은, 그 이후의 역사를 알고 있으니 어쩌면 솔직하게 듣고 싶었던 말일 것도 같았다.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혁명가 김산이 되기 전의 장지락은, 학생의 신분으로 3.1운동을 접했다. 그 역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폭력을 지양하는 평화적인 저항 운동으로서 3.1 운동을 매우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잘 조직된 기독교 운동이 조선 독립의 모태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로 인해 그 믿음은 산산이 부서지고 만 것이다.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론을 바탕으로 희망을 걸었던 파리강화회의에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유지되기로 했다는 데서 느끼는 힘의 부재와 그에 따른 허망함. 비폭력주의 운동의 무력함. 무기를 갖지 않은 군중이 학살당하는 상황과 한 줌도 안되는 일본 순사들에 의해 목사가 십자가에 못박혀 불법적으로 살해되는 것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떨쳐 일어나지 않고 그저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그는 "기독교적 순교 정신이 아주 영웅적으로 느껴졌으나 결국 어리석은 것이라는 게 드러났다"며 수동적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분노하게 되었다.
기독교 운동을 이끌었던 한 외국 선교사의 말은 그를 더욱 깊은 절망으로 이끌었다.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죄 때문이며 그 죄의 보상이 끝나야만 원래대로 돌려주실 것이라는 그 말은 그에게 "신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내가 태어난 투쟁의 세계에서는 별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게 했다. 그가 사회주의적 혁명론자가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중국 전역을 떠돌며 굶고, 다치고, 죽음의 위협을 겪고, 말라리에아 걸리고, 밀고당하고, 잡혀와 고문을 당하고, 풀려났고, 다시 사람들을 조직하고, 일제에 맞서는 삶을 변치 않고 걸어온 삶. 사형을 앞두고 형장으로 끌려가며 사형수들이 불렀던 '아리랑'외에 그의 신산한 삶을 담아낼 노래가 또 있을까. 끝까지 혁명과 조국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지만 간첩으로 몰려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스러져 버렸기에 '불꽃'이라는 말 외에 달리 그의 삶을 표현할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이 생에서는 불꽃처럼 스러졌으나 공동체의 평등한 공존을 꿈꾸는 누군가의 가슴에는 분명히 영원히 살아있는 불꽃으로 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