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류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기호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욕구는 인간의 고차원적인 본능으로, 이로 인해 문자가 발명되고 책이 탄생되었다. 한 개인이 발견한 사상이나 기술을 문자로 기록하고 책으로 만든다면, 그 지식은 그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널리 보급되고 후세에도 오래도록 전해진다. 그리하여 문자를 읽고 의미를 파악하는 독서의 기술은 인류가 문화를 이룩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인간 고유의 기능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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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학파인 오마르 하이얌은 큰 나묵사지 밑의 탁 트인 공간에서 시를 읽을 것을 권했다. 그리고 몇세기 뒤에 격식에 까다로웠던 생트뵈브는 스탈 부인의 [회고록]을 '11월의 나무 밑에서' 읽으라고 충고했다. 셸리는 '옷을 홀랑 벗은 채 바위에 걸터앉아 담이 다 식을 때까지 헤로도토스를 읽는 것이 나의 습관'이라고 쓰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열린 하는 밑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나는 좀처럼 해변가나 정원에서 책을 읽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두 가지 빛, 다시 말해서 햇빛과 책이 뿜어내는 빛을 한꺼번에 답으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언제나 전깃불로만, 방안은 어둑하게 하고 책장에만 불을 밝힌 채 책을 읽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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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 성 금요일에 콘스탄티누스가 발견한 것은 한 텍스트가 갖는 의미는 독서가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확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텍스트를 대할 때 독자는 그 텍스트의 단어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역사적으로 그 텍스트나 저자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의문을 풀어 주는 메세지로 바꿔 버릴 수 있다. 이런 식의 의미 변질은 텍스트 자체를 확장시키거나 퇴보시킬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텍스트에 독서가 자신의 환경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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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뵈브는 스탈 부인의 [회고록]을 '11월의 나무 밑에서' 읽으라고 충고했다. 셸리는 '옷을 홀랑 벗은 채 바위에 걸터앉아 담이 다 식을 때까지 헤로도토스를 읽는 것이 나의 습관'이라고 쓰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열린 하는 밑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나는 좀처럼 해변가나 정원에서 책을 읽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두 가지 빛, 다시 말해서 햇빛과 책이 뿜어내는 빛을 한꺼번에 답으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언제나 전깃불로만, 방안은 어둑하게 하고 책장에만 불을 밝힌 채 책을 읽도록 해야 한다.
--- p.225
몇 년을 두고, 아마 종잇값을 아끼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인 듯도 한데 그들은 같은 노트를 사용해야 했다. 모르긴 해도 호프만 자신이 학교에서 배움의 점진적 발전을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레비누스의 필체는 몇 해 동안 텍스트를 옮겨 적었는데도 거의 변화를 느끼지 않는다. 페이지 가운데에 집중적으로 적었고, 훗날 해석과 주석물 적어넣기 위해 행간을 넓게 두었고, 각 모서리에도 여백을 충분히 두고 있으며, 필체는 독일의 15세기 필사본에 나모는 고딕체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구텐베르크가 성경을 인쇄하기 위해 글자를 새길 때 우아한 필체이다. 연한 자줏빛 잉크로 쓴 강하면서도 뚜렷한 필체는 레나누스가 텍스트를 점점 더 쉽게 따라잡도록 했다 여기에 상식적으로 쓴 첫 문자가 여러 페이지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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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어느 경우에나 감을 읽어내는 사람은 독서가 자신이다. 어떤 대상이나 장소나 사건에서 해독 가능한 것들을 인지해 내는 것이 독서가 본인이라는 말이다. 하나의 기호 체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판독해야 하는 사람도 독서가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또 어디쯤 서 있는지를 살피려고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읽는다.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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