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는 시장소득만큼이나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다. 사람들은 일할 수 있을 때는 일해서 얻는 소득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실업·질병·노령·장애·산재 등으로 시장소득을 상실하게 될 때는 여러 가지 복지급여를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또 의료·교육·보육·노인 간병·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 사회서비스를 통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복지는 또한 경제적으로 발전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국가 예산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대표적인 현대 국가의 업무이기도 하다. 이 엄청난 자원의 배분과 조달을 두고 여러 사회집단과 정치세력은 갈등하고 투쟁한다. 누가 어떻게 돈을 내서 이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그리고 그 재원은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나를 두고 사회 구성원들은 각자 나름의 이해관계와 정의관을 가지고 다투게 된다. 이 다툼의 과정이 복지정치이고 그 결과가 복지정책을 결정한다.
---p.6
-물론 한국의 복지국가는 여전히 ‘작다’(Yang 2017). 또 상병수당 같은 중요한 소득보장 제도들의 부재, 사회보험의 거대한 사각지대, 낮은 급여수준, 낮은 사회 서비스의 질 등 내실이란 측면에서 볼 때도 많은 결함을 안고 있다. 복지국가의 성과도 좋지 않다. OECD 최저 출산율 과 최고 자살률, 최고 노인 빈곤율, 높은 불평등도 등이 이를 잘 대변 한다. 그러나 이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최저 생활 보장 정도, 주 요 사회복지 제도 구비 여부 그리고 공공복지비 지출 규모 등 핵심적 기준에 비춰볼 때 이미 복지국가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된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뒤늦게 산업화를 달성한 나라 중 민주화를 이룩 하고 복지국가로까지 진입한 매우 이례적인 나라가 된 셈이다.
---p.18
-이 연구에서는 권력자원론과 리코의 접근법을 차용하되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변형한다. 즉 복지국가의 발전 과정에 나타나는 중요한 정책결정과 변화가 경쟁 관계에 있는 행위자들의 상대적 권력‘자원’의 크기보다는 이들 간의 권력‘관계’에 의해 좌우된다고 본다는 것이다. 리코에 의하면 권력자원(power resources)은 행위자들의 힘의 원천이 되는 자산으로서 집단행동 자원(collective action resources), 공식적인 제도적 자원(formal institutional power resources), 재정적 자원(financial resources), 지식기반 자원(knowledge-based power resources) 등이 이에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복지정책을 둘러싼 주요 정치세력 간의 경쟁의 결과는 이런 제휴 혹은 연합세력의 권력자원의 총합에 좌우된다고 본다.
---p.39
-한국의 정치제도는?나아가 어떤 나라의 정치제도도? 일관되게 복지국가 발전에 불리하다기보다는 유불리 를 포함한 다양한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제도로부터 복지국가의 발전 가능성을 바로 예측하는 것은 무리이며, 중요한 것은 제도 자체보다는 제도가 부여하는 기회와 제약 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자들의 선호와 전략, 실질적 행위와 역동적 상호작용일 것이다. 다시 리코의 축구게임의 비유를 가져오자면, 게임의 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선수들의 기량과 팀워크 그리고 전략이 훨씬 중요하다.
---p.77
-한국 복지국가 발전에 개입해온 핵심적 행위자는 누구였으며 이들은 어떤 자원들을 동원해 복지국가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현재의 복지정치에는 어떤 자산과 부채를 유증(遺贈)하고 있는가? 현재 복지정치의 주요 행위자들 및 그들 간의 관계는 선진 복지국가에서와는 어떻게 다르며, 이는 한국의 정치경제적, 정치사회적 맥락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가?
---p.80
-기초보장법 제정 과정의 정치는 기초보장법의 이중적 성격?원칙적 보편성 및 진보성과 그 구체적 내용에 있어서 잔여성 및 자유주의적 측면?이 법 제정까지의 시민운동 단체의 영향력과 법 제정 이 후 행정부 내 관료정치의 영향력이라는 이중적 정치과정에 각각 대응하는 것임을 확인시켜준다. 기초보장법 제정 과정은 민주화 이후 복지정치의 변화와 그것의 한계, 즉 한편으로는 민주화로 열린 정치 공간에서 시민운동의 참여에 의한 개혁이란 측면과, 다른 한편으로는 발전주의 시대의 유산과 신자유주의 시대 분위기의 결합을 토대로 한 관료 정치에 의한 개혁의 지연을 잘 보여준다.
---p.151
-부모의 맞벌이 여부를 고려하지 않은 채 하루 12시간의 무상보육을 제공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도 커다란 논란거리가 되었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보육 서비스의 이용 자격을 취업 부모로 제한하거나 그들 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취업모 우선권은 고려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에 따라 대체로 높은 영아 보육률은 여성 고용률의 증가와 연결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p.218
-이런 무상보육의 급속한 확대 뒤에는 복지문제의 뜨거운 정치 쟁점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2011년 지방선거, 2012년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보편적 복지 바람이 거세지면서 여야 모두 앞다투어 보육 서비스 확대를 공약하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급속한 확대는 정책적 합리성보다는 정치적 필요성에 더 좌우되면서 시설보육 필요성이 큰 3~4세보다 0~2세 무상보육이 먼저 도입되고, 보육 재정 문제를 둘러싼 중앙-지방정부 간의 갈등, 외벌이 가구와 맞벌이 가구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등 혼란과 진통 속에 이루어졌다.
---p.217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의 결정 과정은… 공식적 제도의 내·외부 행위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기존의 정책결정 모델의 가정과 달리 청년수당 정책은 외부자와 내부자의 협력적 거버넌스의 전면화에 의해 정책이 형성되었다. 즉 외부의 당사자 조직에서 요구와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제도 내 활동가가 내부에서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면서 외부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외부의 사회운동 조직들은 이를 중요한 정치적 기회 구조가 열린 것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협업을 시도한 결과로 정책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p.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