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으로 처리될 거라고 그랬다. 팀장님에게 물었다. 희망하지 않으면 안 나가도 되는 거냐고. 동료들이 하나둘씩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지언정 나는 그들을 외면하고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여길 붙들고 싶은 사람이라고. 그는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희망하고 말 일이 아니라고.
알람시계를 껐다. 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회사 갈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내가 퇴사했다는 사실을 깜빡한 채, 늦잠 잤다고 놀라서 번쩍 일어날지도 모른다. 퇴사했다는 걸 제대로 실감할 때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테니까. 아마 한동안은 그 회사가 그리울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어느 쪽이 먼저 무뎌지게 될까. 남겨진 쪽일까 떠나간 쪽일까.
점점 더 검게 짙어져 가는 적막함을 견뎌내지 못하고 지방에 내려가 있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오늘 잘렸어요. 붙잡고 있던 무언가가 손아귀를 빠져나간 기분이 들어요. 나는 수화기를 붙잡고 오랫동안 울었다.
--- 「희망한 적 없는 희망퇴직」 중에서
수 달 전, 친구가 희망퇴직을 당했다. 회사 측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접기로 하면서 거기에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을 대거 정리한 모양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칼끝은 그 프로젝트를 하기로 한 의사 결정권자들이 아니라, 단지 참여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오래전에 내가 당했던 것과 같이. 거긴 언젠가 직원들에게 큰 포상을 했던 일로 유명한 회사였다.
친구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은 삼십 대니까 이렇게 되어도 괜찮아. 그런데 사십 대 중반 넘어서 혹은 오십이 넘어서 이렇게 잘리게 되면 그땐 어떡하지?
--- 「사정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다는 그 방식」 중에서
그 회사는 그렇게 하고 가도 된다니?
말은 그렇게 하더라고. 근데 잘 모르겠어.
뭘 모르겠어?
진심은 그게 아닐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시험당하는 기분이 들어. 그런데 엄마, 나도 이제 좀 힘들어. 면접 볼 때마다 미용실 가서 머리도 받아야 하고 화장하는 데에도 공들여야 하고, 저 높은 구두 신고 걷기도 힘든데 버스 타고 계단 오르내리고. 왜 그렇게까지 외모에 손을 많이 써야 하는지 자꾸 의문이 생겨. 엄마, 그거 알아? 여자 승무원들의 업무랑 손톱 색깔은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잖아. 파랗게 칠하든 칠하지 않든 그게 여자 승무원들 일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런데 여자 승무원들은 일할 때 손톱에 피부색 매니큐어를 칠해야 한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손톱 색깔이 분홍색이면 비행이 더 안전하대? 이해가 안 돼. 엄마, 나 그렇게 하기 싫어. 오늘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갈래. 회사에서 먼저 슬리퍼 신고 와도 된다고 한 거잖아. 거기서 그렇게 말해놓고 나중에 딴말하면, 나도 그런 회사 필요 없어.
--- 「그렇게 정규직이 되었고」 중에서
그때 화장실로 불쑥 들어온 그녀. 나만 없다 하면 내 험담을 하느라 정신없다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배가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그녀는 대뜸 다른 사람들이 다 있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외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임신했네? 임신이야! 임신!
나는 너무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다.
그거 임신이야. 정확해. 내가 애 둘 낳아봐서 알아.
그녀의 말대로라면 전 세계의 모든 가임기 여성은 명치가 아플 때마다 임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남의 삶에 가타부타 덧붙이는 걸 아주 싫어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딱 한 마디를 할 수 있다면,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다. 돈은 필수 불가결한 게 맞긴 한데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라고. 그러니까 마음을 버려가면서까지 돈을 구하지는 말아 달라고. 사회생활이, 돈벌이라는 게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돈을 벌거나 경력을 쌓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개개인이 사회에 맞서서 이겨낸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으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함이 내 앞길에 도사리고 있을 땐 헤쳐나갈 생각 말고 그 길로 도망가라고. 회사는 들어가 봐야 아는 거긴 한데, 막상 가고 보니까 진짜 아니다 싶으면 바로 도망가라고. 꼭 그렇게 하라고.
--- 「지금이야, 도망쳐!」 중에서
회사는 중소기업 청년인턴제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 지원금으로 나에게 떨어지는 월급은 96만 원. 물론 식비와 교통비 포함. 당황스러울 만큼 당당하게 과로를 요구하던 것에 비하면 쥐꼬리만도 못한 돈이었다.
(...)
입사 첫날, 정규직 대표 한 명이 환영 미팅 자리를 열어 내게 알려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들이 참여하는 인턴제는 정규직 전환과는 매우 무관합니다. 정규직 전환이 된 직원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보시는 게 맞습니다.
노력과 관계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리고 휴가는 한 달을 채워 일하면 한 개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인턴으로 근무하며 중간에 휴가를 쓸 수는 없습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말이나 휴가가 있더라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은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는 시구만큼이나 역설적이었다.
그럼 휴가는 언제 사용할 수 있나요?
그녀는 답했다.
휴가는 인턴 계약 기간이 끝나는 주에 몰아서 다섯 개 사용해야 합니다.
정규직 전환이 안 되는 인턴제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인턴으로 근무하다가 다른 회사와의 정규직 채용 면접이 잡히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더라도 휴가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면접을 포기해야 합니다. 휴가는 반드시 퇴사 직전에 몰아 써야 합니다. 인턴이지만 이 회사에 입사한 이상 직장에서의 예절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 「내 이름은 인턴, 호구라고도 합니다」 중에서
그나마 대학교에 다닐 땐 시간표를 내가 짤 수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유연하게 시간을 관리할 수 있었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니까 그나마도 쉽지가 않았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무수한 사람들이 일제히 버스정류장으로, 전철역으로 몰렸다. 나는 그 시간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여름이면 사람들의 땀 냄새나 머리 냄새에 치여 숨이 막혔고, 겨울엔 두툼한 패딩 사이를 허우적거리다 숨이 막혔다.
분주한 아침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되풀이될 것 같았다. 전철이 들어오는 플랫폼에 네 줄로 서 있는 사람들의 무리와 노란 불을 번뜩거리며 역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역마, 스크린도어가 열린다는 안내가 마치자마자 밀물처럼 쏟아지는 사람들. 그건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하며 내일도 그러할 무한의 데자뷰였다.
---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는 직장인 L씨」 중에서
팬데믹 때문에 더는 사무실에 모여 일할 수 없게 되었지만, 어쨌든 바이러스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니, 집에서 일도 하는데 회식이라고 못할 건 뭐야. 그렇게 랜선 회식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같이 일하는 듯 아닌 듯한 오묘한 업무 환경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외로웠다. 그래서 종종 티타임을 갖는다. 떨어져 있어서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그렇게 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랜선에서 만나기 때문에 같이 다트를 던질 수는 없지만, 카드 게임을 할 수는 있다. 가까이서 서로 눈을 마주하거나 자잘한 숨소리, 감정 등을 읽어가면서 대화하기는 좀 어렵지만 어쨌든 서로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공간의 제약이 있을지언정 아주 불가능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랜선 회식은 소중하다. 물리적으로 동떨어진 내가 동료들과 일이 아닌 것을 함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최초의 랜선 회식은 포트럭 파티 같았다, 우린 각자 먹을 걸 들고 랩탑 앞으로 모였다. 구태여 회식 메뉴를 맞출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 알아서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했다.
--- 「랜선 회식이라고 들어는 봤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