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는 호세아와 대비되는데, 호세아는 사랑의 하나님을 반영하고 요나는 집안의 탕자를 반영합니다. 요나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두 아들 비유의 큰아들입니다. 그는 은혜로 시작하여 어느새 공로를 내세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처음 되었다가 나중 될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나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보다 이런 요나가 먼저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니느웨 수십만 명의 회개보다 요나 한 사람의 회심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되어 있습니다. 사실상 한 도시의 회개보다 한 사람의 회개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무한히 크시면서도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한 사람을 위하여 온 세상을 동원하십니다.
---「프롤로그」중에서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무한히 크신 분이지만, 한 사람에게 무한한 관심을 쏟아 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요나 한 사람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 바다의 풍랑, 큰 물고기, 박 넝쿨 등 온 세상을 동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변화를 위해 일하시고, 그 회개한 한 사람을 통하여 수십만 명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있어 천하보다 귀한 것이 한 영혼이기에, 하나님은 한 영혼에게서 세계를 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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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모습은 오늘날 은혜 받은 자의 자리에서 시작하여 스스로 공로자가 된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말하고 스스로 영적인 공로를 쌓았다고 생각하며 교만해지고, 때로는 자기 연민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시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요나처럼 자신의 삶과 생각 속에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직 남아 있는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민족주의, 정치적 신념, 사업의 확장, 자녀의 성공, 명예욕과 자존심, 누군가를 향한 복수심과 증오심 같은 것들입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소중하고 세상의 절대적인 가치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pp.32,33
요나서는 기적 같은 이야기입니다. 니느웨의 회개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전도자 요나의 성의 없는 말 한마디에 온 니느웨가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은 기적 말입니다. 구원은 확실히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 누구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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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자각한 요나는 이제 “내 탓이요” 하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그의 모습에서 소망을 찾아본다면, 그래도 요나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던졌다는 사실입니다. 불순종했고 죄를 지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생사를,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믿음은 자신을 하나님께 던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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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자신의 죄 때문에 바다에 던져졌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하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바다에 던져졌지만, 예수님은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요나는 죽을 뻔했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죽으셨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을 뻔했고,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요나는 죽을 고비에서 회개의 기도를 하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우리를 위한 부활의 증거이자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큰 이’십니다. 예수님은 요나를 구원하신 주님이십니다.
---pp.72,73
요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미리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요나의 불순종과 실수가 있었지만, 이러한 요나의 기도는 그의 선지자다움을 보여 줍니다. 그 기도의 시간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진실한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며 실수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진실한 순간들을 보시고 기억하십니다.
---pp.77,78
니느웨 사람들의 전적인 돌이킴은 선지자 요나의 노력의 결과도, 니느웨 사람들의 윤리적 결단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회개는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성령의 역사도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우리를 죄로부터 건져 살리는 능력이자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는 힘입니다.
---p.118
은혜의 특징은 불공평, 무자격, 과분함입니다. 만약 은혜가 공평하게 자격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합당하게 주어진다면 우리 중에서, 아니 인류 역사 전체에서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이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니느웨는 악한 성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요나의 기준에서는 결코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없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니느웨의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장 잘 보여 줍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 더 내려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더 더 내려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롬 5:6, 8, 10).
---pp.152,153
하나님의 마음은 어느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벧후 3:9). 그러므로 요나서는 위대한 복음입니다. 누가복음 15장 두 아들 비유처럼, 요나서도 미종결로 끝납니다. 저는 큰아들이나 요나도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회개했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위해 미종결로 남겨 놓으셨습니다. 요나서는 요나의 대답이나 그의 깨달음을 기록하지 않고 미종결 상태로 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을 끝으로 열린 결말로 마칩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4:11).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질문입니다. 우리도 먼저 믿은 신앙인으로, 혹은 부르심 받은 목회자로 요나의 입장에 서서 진실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나지만, 요나는 이미 대답했습니다. 요나가 바른 대답을 했기에 요나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pp.154,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