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마음은 육신에 생명을 준다 했는데, 주께로 향하는 마음이 바로 평온한 마음입니다(잠 14:30). …(중략)… 불붙은 떨기나무 안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나의 하나님, 질병의 찔레와 가시 한복판에 있는 제게도 나타나 주시기를 구합니다. 이 모질고 힘든 시기에도 제 곁에 가까이 계셔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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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기의 손상이 몸의 모든 활력 징후(vital sign)에 영향을 줄 수 있듯, 두려움은 마음의 모든 작용에 파고든다. 몸 안의 가스가 여러 질병으로 가장하여 통풍이나 담석으로 보일 수 있듯, 두려움도 마음의 여러 병으로 가장할 수 있다. 사랑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질투라는 의심에 찬 두려움일 수도 있다. 위험 앞에서의 용기로 보이는 것이 실은 체면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때문에 기겁할 수도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죽음은 그리 두렵지 않지만 병이 악화되는 것이 두렵다. 그 두려움을 부인한다면 자연에 어긋나는 일일 테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내 약함은 자연에서 나오고, 내 강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pp.81,82
고통 때문에 힘들 때 제가 당신을 바라보게 하시고,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통이 드러낼 때 하나님이 제 전부이심도 깨닫게 하소서. …(중략)… 제 눈을 열어 이 질병의 의미를 보게 하소서. 제가 이것을 징계의 언어로 읽을 때, 다른 언어로 번역해 자비라고 읽도록 허락하소서. 당신의 자비와 징계, 둘 중 어느 것이 원래의 주요 메시지이고 어느 것이 인간의 눈으로 번역한 것인지는 죽는 날까지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죽음이 분명히 징계처럼 느껴져도, 제가 당신 안에서 죽고 그럼으로써 저를 위해 죽으신 그분과 연합하는 일은 당신의 자비를 알리는 무엇보다 큰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p.97
주님이 당장에 저를 데려가시든지, 이곳에 좀 더 머물며 당신을 영화롭게 하시든지 저는 상관없습니다. 오, 하나님! 그저 저와 함께해 주소서. 이 침실과 당신의 집이 차이가 없게 하시고, 여기서 제 육신의 눈을 감는 일과 그곳에서 제 영혼의 눈을 뜨는 일이 모두 한 가지이게 하소서.
---pp.144,145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머리카락 하나까지 돌보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죽음 이후에는 우리 유해의 마지막 한 줌까지 당신께 맡깁니다. …(중략)… 오, 하나님, 이 기도가 제 마지막 호흡, 작별, 당신 안에서의 죽음이 되게 하소서. 지금이 제가 떠날 시간이라면, 죄 가운데 푹 잠겼으나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통해 구원받은 죄인으로 죽게 하소서. 그리고 제가 좀 더 오래 산다면, 죄에 대해 죽는 의인의 죽음을 맞게 하소서. 그것은 곧 새 생명으로의 부활입니다. 주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무엇이 찾아오든 주님에게서 옵니다. 무슨 일이 다가와도 제가 주께로 가게 하소서.
---pp.168,169
최근에 수도원에서 누가 아침 기도를 알리는 종을 울려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고,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종을 쳐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우리가 이 망종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파악한다면, 일찍 일어나 그 의미를 숙고할 것이다. 죽음의 문 앞에 누운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은 자기를 위해 종이 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울리고, 하나님과 연합하게 될 시간을 준비할 기회를 제공한다.
태양이 떠오를 때 누가 바라보지 않으며, 유성이 하늘을 가로지를 때 누가 올려다보지 않겠는가? 종소리가 날 때 무슨 일인가 하여 귀 기울이지 않는 이가 있는가? 내가 듣는 이 종소리는 내 자신의 일부가 이 세상에서 사라짐을 의미한다. 인간은 아무도 고립되고 독자적인 섬이 아니다. 흙덩이 하나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이 그만큼 작아진다. 곶이 쓸려 나가든 친구나 내 소유의 영지가 쓸려 나가든 마찬가지다. 나는 인류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죽음에도 나는 그만큼 줄어든다. 그러니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하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나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pp.172,173
한 줄기 바람이 불 때마다 제 몸의 건강이 흔들리고, 허영이라는 돌풍이 몰아칠 때마다 제 영혼은 휘청거린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늘 감사하고 겸손하게 하소서. 받은 것에 늘 감사하게 하시고, 주께 기도하고 구할 것도 늘 있게 하소서.
---p.216
하나님과 씨름하는 동안 던의 질문은 달라졌다. 처음에 그는 대체 무엇 때문인지 물었다. “누가, 왜 이 질병, 이 역병을 일으켰을까?” 그는 그 질문의 답을 찾지 못했다. 그의 단상은 점차 고통받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본질적 사안인 반응의 문제로 옮겨 간다. 위기가 닥치고, 그 때문에 두려움에 휩싸인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앙심을 품고 분통을 터뜨리며 하나님을 등지고 떠날 것인가? 던은 자신의 질병이 징벌인지 단순한 자연적 사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느 쪽이건 그는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었다. 결국 신뢰만이 주님을 올바르게 두려워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던은 이러한 과정을 의사들을 향한 그의 태도 변화에 비유했다. 처음에 의사들이 새로운 징후가 있는지 그의 몸을 살피고 나서 밖으로 나가 자기들끼리 낮은 소리로 상의할 때, 그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동정 어린 관심이 느껴졌고 그들을 믿어도 된다는 확신이 찾아왔다. 이런 상황은 하나님께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이나 그 배후에 놓인 이유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의사’이신가?” 던은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pp.277,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