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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동반자, 미생물

치명적 동반자, 미생물

: 병원균은 어떻게 인간의 역사를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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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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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년 06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64쪽 | 452g | 135*210*23mm
ISBN13 9788934988854
ISBN10 893498885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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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지구라는 행성에 처음 출현한 것은 약 40억 년 전이다. 우리가 유인원에 가까운 조상에서 진화한 이래 미생물은 계속 인류와 공존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이 피조물은 우리 몸 구석구석에 진을 치고 살면서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으며, 유행병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몰살시킴으로써 역사를 바꾸었다. 하지만 기나긴 공존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우리 조상들은 도대체 무엇이 이런 ‘천형天刑’을 몰고 오는지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가 최초의 미생물을 발견한 것은 불과 130년 전이다. 그 후로 우리는 미생물이 우리 몸을 침범하고 병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기발한 방법들을 생각해냈다.
--- p.16

항상 옮겨 다니는 수렵채집 생활에서 정착하는 농경 생활로의 전환은 인류사의 큰 이정표인 동시에 새로운 미생물의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제 인류는 처음으로 자연의 모습을 급격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바꾸었다.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해 숲을 개간하고 덤불을 정리하면서 자연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던 생태계가 교란되고,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면서 생물다양성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작물화된 식물이나 가축화된 동물과 한 번도 접촉하지 않았던 미생물들, 서로 고립된 인간 집단 사이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미생물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활짝 열렸다. 많은 미생물이 그 기회를 붙잡았다. 드넓은 경작지에 빽빽이 자라는 밀과 수많은 가축 떼를 접한 미생물은 새로운 숙주의 몸속에서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식했다.
--- p.105

이집트에서는 새로 받아들인 농경 생활 방식이 큰 성공을 거둔 덕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고대 문명의 발판이 되었다. 최초의 대도시가 출현한 것은 기원전 2500년경이며,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도 같은 시기에 건설되었다. 이 시기 이집트 의사들이 남긴 파피루스 두루마리에는 당시 이집트인이 흔히 앓았던 병과 치료법이 적혀 있다. 기원전 3000년경에 작성된 문서를 기원전 1700년경에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에드윈 스미스Edwin Smith 외과술 파피루스에는 매년 이집트에서 발생한 유행병을 ‘올해의 유행병’이라 하여 자세히 기술했다. 전문가들은 이 병을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모기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되어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말라리아일 것으로 추정한다.
--- p.117

로마인들은 이 전염병을 신의 형벌이라고 믿었다. 셀레우키아에서 로마군이 아폴로 신전을 약탈하고 봉인된 고대의 무덤을 열어젖힌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Ammianus Marcellinus는 이렇게 썼다. “로마 병사들이 무덤을 열었을 때 역병이 새어 나와 이란 접경에서부터 라인강과 골족의 땅에 이르기까지 제국 전체에 전염병과 죽음을 가져왔도다.” 어쨌든 안토니누스 역병 때문에 로마 제국의 인구는 거의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줄었다. 모든 기능을 거의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했던 제국은 기울기 시작했다. 마을과 들판이 텅 비고, 군대는 부족했으며, 교역과 상업은 정체되었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 채 기운을 잃었다. 결국 역병은 로마 제국이 이후 100년간 끊임없는 침략과 전쟁과 전염병에 시달리며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 p.131

흥미롭게도 최근 유전 연구에 따르면, 페스트균은 불과 1,500~2만 년 전에 가장 가까운 미생물인 가성결핵균Y. pseudotuberculosis에서 갈라져 나왔다. 결국 페스트균은 사람뿐 아니라 설치류에게도 비교적 새로운 병원체인 셈이다. 가성결핵균은 쥐를 비롯해 수많은 포유류의 위장관을 감염시키는 미생물로, 음식과 물을 통해 전파되므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독성이 강하고 벼룩을 통해 전파되는 페스트균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의 대규모 유전적 변화를 거쳤을 것이다. 가성결핵균도 때때로 설치류의 혈액 속을 순환하므로 쥐의 피를 빠는 벼룩의 몸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벼룩의 장에서 살아남아 증식하여 집락을 이룬 후, 벼룩이 다른 생물을 물었을 때 그 생물의 몸속에서 증식하여 퍼지지 못한다면 막다른 골목에 처하고 만다.
--- p.154

아메리카 원주민의 운명은 천연두에 의해 결정되었다. 느닷없이 온몸이 흉측하게 변하는 질병이 돌기 시작해 하루에도 수천 명씩 죽어가는 모습을 본 그들은 사기가 꺾이고, 혼란에 빠져 망연자실했다. 스페인군에게 더없이 좋은 시점에 찾아와준 전염병의 효과는 원주민의 병력을 크게 감소시키고 지휘관들의 목숨을 빼앗아 사기를 떨어뜨린 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원주민은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가는데 스페인 병사들은 멀쩡한 모습을 보고(대부분 어린 시절 감염에 걸려 면역을 갖고 있었다) 양측 모두 천연두를 원주민들의 악행에 노한 신이 내린 형벌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 끔찍한 비극은 스페인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것 같았으며, 원주민들은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p.187쪽

페니실린 개발의 역사는 발견과 정제에서 대량 생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눈부신 인간승리의 드라마였지만, 동시에 주요 인물 간의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이라는 곰팡이에 항균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의사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지만, 그의 발견은 뜻밖의 우연 덕이었다. 1차세계대전 중 플레밍은 서부 전선의 야전 병원에 복무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젊은이가 상처 감염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 그때의 경험은 연구 분야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 p.279

신종 병원체는 매년 한 건꼴로 우리를 찾아왔으며 최근 들어 빈도가 계속 늘고 있다. 1만 년 전,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감염병이 우후죽순처럼 출현했던 시대가 고스란히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오늘날 이런 병이 창궐하는 이유 또한 그때와 똑같다.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가 ‘새로운’ 병원체들과 접촉하고, 그렇게 해서 발생한 감염병이 여행자들에 의해 널리 퍼져 간다. 오늘날 심각한 신종 질병이라면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전 세계로 퍼져 가는 에이즈, 조금씩 다가오는 항생제 내성균의 공포, 돌연변이 독감 바이러스에 의해 치명적인 독감이 전 세계에 유행할 가능성,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인수공통감염병이 출현하여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상황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 pp.287~288

결국 우리는 장차 팬데믹을 일으킬 바이러스의 정확한 분자적 구성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느라 대응이 너무 늦을 가능성과 조기 대응에 나섰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고 보니 준비한 방법이 불필요하거나 아무런 효과가 없을 가능성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동물과 인간에서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 병원체가 나타나는지 계속 감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는 매년 적절한 백신을 생산하기 위해 전 세계에 걸쳐 한시도 쉬지 않고 인간 독감 바이러스 균주들을 감시하는 검사실 네트워크를 운용한다. 이 검사실들은 세계동물보건기구the World Organisation for Animal Health 및 유엔과 협력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조류와 H5N1 바이러스 진화와 전파 상황을 감시하고 있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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