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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파랑, 어쨌든 찬란
eBook

빨강, 파랑, 어쨌든 찬란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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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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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년 06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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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28.97MB ?
ISBN13 978895224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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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작가 겸 열혈 파이 애호가다. 스스로 양성애자임을 밝히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1990년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태어나 자랐고,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잡지, 출판업에 수년 간 종사하다 이 책 『빨강, 파랑, 어쨌든 찬란』으로 데뷔했다. 현재는 푸들 페퍼와 함께 뉴욕에 살고 있다. 성격이 나쁘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즐겨 쓴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거기 헨리가 서 있었다. 스리피스 정장을 입은 고전적 미남 헨리는 모랫빛 금발에 높은 광대뼈, 보드랍고 호감 가는 입매를 지니고 있다. 흠잡을 데 없이 타고난 자세는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꽃이 흐드러진 버킹엄궁의 정원에 어느 날 완벽한 미모 그대로 뚝 떨어진 것 같은 자태였다.
헨리와 눈이 마주치자 알렉스의 가슴에 짜증인지 아드레날린 분출인지 모를 감정이 찌릿하게 퍼졌다. 헨리와 대화를 나눈 지는 아마 1년도 넘었을 것이다. 헨리의 얼굴은 비위 상하게 좌우 균형이 완벽했다.
--- p.22

“그러니까 대중문화를 좋아하지만 안 그런 척하는 거군. 왕가의 체면이 깎일까 봐 말하지 못하든가, 아니면 ‘교양인’인 척하려고 알아서 말하지 않기로 했겠지. 어느 쪽이야?”
“정신 분석이라도 하려는 건가?” 헨리가 묻는다. “왕실의 내빈으로서 금지된 행각일 텐데.”
“왜 그렇게까지 실제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려고 심신을 바쳐 노력하는지 궁금해서. 방금 여자애한테 자기 입으로 말했잖아. 위대함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거라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하지만 만에 하나 알아듣는다 쳐도, 그쪽이 상관할 문제가 아닐 텐데.” 헨리의 목소리는 팽팽하게 날이 서 있다.
--- pp.60~61

“완전히 돌겠다. 넌 어떻게 이렇게까지 바보냐.”
헨리는 그 말과 함께 알렉스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키스했다.
알렉스는 그대로 얼어붙는다. 꾹 눌러오는 헨리의 입술과 턱에 쓸리는 헨리의 울코트 커프스를 서서히 느끼며. 세상에 흐릿하게 노이즈가 끼어 지직거리고, 뇌가 허덕허덕 헤엄치며, 철없던 시절의 불화와 웨딩케이크와 새벽 2시의 문자의 등식을 연산하지만, 어쩌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변수를 계산할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이건… 그렇다, 놀랍게도, 전혀 싫지가 않다. 정말 하나도.
--- p.131

호르몬이 요동치던 청소년기를 돌이켜보던 알렉스는, 샤워하며 여자애들 몸을 상상했던 기억도 있지만, 단단한 턱선과 넓은 어깨를 가진 남자의 손길을 꿈꾼 적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라커룸에서 본 팀원의 몸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 적도 한두 번 있지만, 그건, 그냥 객관적으로 근사해서 그랬을 뿐인데. 그런 남자애들 같은 외모를 갖고 싶었는지, 아니면 그 남자들을 원하는 건지, 그때 그런 걸 어떻게 알 수가 있냐고? 아니, 발정 난 10대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기는 한 거야?
--- p.135

대화가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 알렉스는 휴대폰 배터리가 죽지 않도록 선에 연결해야 한다. 옆으로 누워서 헨리의 말을 듣고, 옆에 있는 베개를 손등으로 쓸며 지금 자기 방 침대에 누워 있는 헨리를 그려본다. 5,600킬로미터의 거리를 가운데 품은 한 쌍의 괄호처럼. 잘근잘근 씹어먹은 자기 손톱을 내려다보며, 손가락 아래 헨리가 있다는 상상을 해 본다. 불과 몇 인치 거리에서 헨리가 말하고 있다. 푸른빛 도는 회색 어둠 속에서 헨리의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 상상한다. 턱에 가뭇가뭇 희미한 수염이 돋아 아침 면도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눈 밑의 다크서클이 낮은 조도에 씻겨나갔을지도 모른다.
--- p.207

헨리가 그를 붙잡고 그토록 확신에 찬 키스를 했던 후 처음으로 알렉스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싹튼다. 처음부터 나한테 결정권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헨리의 글에, 헨리의 가슴앓이에, 헨리의 모든 면에 맹목적으로 사로잡혀서 원래, 항상,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를 깜박 잊고 있었다. 알렉스 스스로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짓을 저질러 버린 건 아닐까. 그러니까 왕자라는 판타지와 사랑에 빠졌던 건 아닐까?
--- pp.309~310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헨리와 저는 올해 초부터 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이미 많은 분이 기사에서 읽어 아시다시피 우리는 날마다 이 사실이 우리 가족, 우리 국가, 우리 미래에 어떤 의미일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상황에서 우리의 관계를 세상에 밝힐 때까지 충분한 시간 여유를 확보하고자 둘 다 타협을 했고 그 대가로 둘 다 밤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자유를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또한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단순하게 이렇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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