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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388g | 133*200*20mm
ISBN13 9788954680875
ISBN10 8954680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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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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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봄의 햇빛은 정신을 망가뜨린다. 따뜻한 온기가 분노를 만들어낸다. 화려한 꽃의 향기가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린다. 그리하여 봄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만 되돌아왔다.
--- p.155

그는 원래 하던 대로 나쁜 놈으로 살았어야 했지만, 그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더 나쁜 놈이 되어버렸다.
--- p.163

“아주머니 돈 많다며. 얼마 줄 거요? 우리 애 죽음값이 얼마나 돼요?”
계속되는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우물쭈물 말을 못했다. 쓰러진 자신을 내려다보며 말하던 남편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일억으로 어떻게든 해결해. 그것도 농사꾼한테는 많은 돈이야. 귀찮게 나까지 나서게 하지 말고. 알았어? 알았냐고.” 남편이 다시 발길질을 하려고 해서 그녀는 움찔했다. “네 잘못을 모르는 모양인데, 잘못한 게 뭔지 알아? 아들을 살인자로 키운 거야.” 남편의 발길질을 피해 그녀는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눈을 질끈 감으며 아들 일만 해결되면 이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자가 주섬주섬 가방에서 합의서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가 그것을 받아들고 스윽 읽어보더니 접어서 도로 여자에게 건넸다.
“저희가 요즘 사정이 좋지 않아서…… 최선을 다한 겁니다. ……죄송합니다.”
“아녜요. 일억이면 큰돈이지. 서원이 죽음값이 그만큼 된다는거요, 그니까.”
여자는 남자가 호의적인 것 같아서 마음이 좀 놓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요. 만약에 아줌마가 죽었다면, 합의금을 얼마로 해야 하는 거요? 그때도 일억이면 되겠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그니까 우리 서원이 죽음값이 일억이면 아줌마가 죽었을 때도 가격이 같은가 하는 말이오.”
--- pp.291~292

불온한 생각은 고되고 힘든 일이 없었던 하루를 금세 머릿속에서 물러나게 만든다. 악에 대한 상상은 두 가지 다른 길을 예고한다. 악행과 반성이 그것이다. 범죄는 오랜 기간 숙성된 악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된다. 전혀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반성과 성찰도 과정은 마찬가지이다. 선을 좇으면서 악에 대한 상상을 하는 것이 인간의 일이다. 악을 상상하면서 선을 좇는 것이 정신의 승리다. 그것은 떨어져 있는 이중성이 아니라 한 몸의 양면이다.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나약한 몸, 그것이 우리의 정신이다.
--- p.256

장례식 첫날, 취기가 불콰하게 오른 형이 머릿수를 세며 말했다.
“도둑놈 일곱, 강도 넷, 사기가 일곱, 강간도 셋이나 되네.”
형은 그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키득거렸다.
“저놈들이 모여서 고스톱을 치면 누가 따는지 알아?”
“그거 진짜 어려운 문제네.”
“간단하지, 도둑놈은 훔치고, 사기꾼은 밑장 빼고, 강도는 빼앗잖아.”
“강간범은?”
“고스톱판에 안 끼워주지.”
형은 아버지 영정 사진 아래 앉아서 낄낄거렸다.
“아, 그래?”
“전과자들한테는 죄목이 벼슬이거든.”
“그래서 누가 따?”
“당연히 아무도 못 따지. 계속 돌고 도는 거야. 돈을 훔치면 밑장 빼서 따고 그런 다음엔 강제로 빼앗고.”
“그럼, 저걸 왜 하는 거야?”
“저거라도 하는 거지. 그나마 건전한.”
“그나저나, 저 사람들을 왜 불렀어?”
“왜 부르긴, 내가 ‘저 사람’이야. 몰랐어?”
형이 환하게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형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제 막 차려진 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 앉아 슬픔이나 울음 대신 자신의 못난 친구들을 불러놓고 취한 채로 배가 째지게 웃고 웃었다.
--- pp.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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