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저마다 달랐지만, 모든 이들이 ‘지난날보다는 지금의 내 자신이 더 성숙해졌다.’라고 한결같이 말하였다. 이런 사실이 내게 나이에 대한 일종의 긍정적 확신을 갖게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노년학자 장 뤽 에튀가 밝히듯 ‘나이가 들며 우리는 비로소 성숙해진다.’라는 사 실을 믿는다.
--- p. 5-6
심리재교육학자 쟈닌 갱동Jeannine Guindon은 “사람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성장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에서 우리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을 ‘세 살 배움 여든까지 새로 배운다.’로 바꾸는 사고의 전환 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전환이 어떻게 가능할까? 핵심은 모두가 태어나서부터 지닌 ‘인간 생명력’을 잘 활용하는 데 달렸다. 이 생명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적 힘(자율적 에너지)’ 으로 발휘할 때, 언제라도 성장할 수 있다.
--- p. 15
목표가 확실할 때, 포기는 좀 더 쉬워진다. 아브람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떠났고, 파우어 수녀는 수녀회의 결정을 듣고 떠났다. 이 떠남과 포기는 전혀 생물학적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 p. 20
노년의 지혜란, 그가 살면서 훌륭한 일을 해 왔다거나, 어떤 업적을 쌓았다 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일생의 잘잘못을 평가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평생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엮어 온 ‘삶의 가장 귀한 진실’을 대하는 자유로움에서 생겨난다. 그 진실과 의미를 나는 어떻게 얻고 발견하는가? 따라서, 인생의 백미러를 통해 지난날을 바라보는 이 진실한 ‘관상의 시선’이야말로 노년기에 주어진 특권이요 선물이다. 돈이나 땅, 아파트보다 더 값진 이 인생의 결실을 어찌 주위에, 특히 젊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을 수 있으랴?
--- p. 25
지나온 삶을 나이가 든 후에 기쁜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남은 삶이 더욱 밝아질 것이다. 종종 우리는 노년의 얼굴에서 밝은 미소가 번져 나오는 것을 목격하는데, 이는 주위 젊은이들의 삶까지도 격려해 주기에, 노년의 미소는 더없이 진실하고 소중하다.
--- p. 28
생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 우리의 최종 목적인 ‘하느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주위에서 만나는 이 마지막 시기의 여행자들에게도 그들이 살아온 의미와 목표를 잃지 않도록 신앙적·영적으로 동반하는 것은 의학적·심리적 도움 못지않게 소중하다.
--- p. 33
곰곰이 생각하면, 은퇴는 ‘일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은퇴자는 ‘일의 기능이나 역할’에서 물러나는 것일 뿐, 자기 인격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했던 직장에서 은퇴하지만, 자식과의 관계에서 은퇴가 있겠는가. 자녀들이 성장하여 어머니가 더 이상 식탁을 차리거나 집안 살림을 돕지 않더라도, 어머니로서 은퇴가 있겠는가.
--- p. 37
삶은 끝까지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들로 가득하다고 일러 준 이가 더 있다. 관절염에도 ‘양말로 인형 만드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 배워, 갖가지 동물 인형을 만들어 어린이, 젊은이에게 선사하는 70대 비르짓다 수녀, 털실로 부활 장식이나 성탄 구유를 꾸며 주위를 행복하게 하는 82세 필 수녀, 잡지나 달력의 꽃 그림을 오려 붙여 만든 카드를 영명 축일 축하에 쓰라고 주던 90대 나의 아버지까지….
--- p. 41
세월은 흐르고 우리는 늙는다. 하지만 젊고 늙음은 숫자상의 시간뿐 아니라 우리가 매일 새로움과 낡음을 어떻게 경험하는가에도 달린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현실을 새롭게 경험하는 제자들처럼(“그들의 눈이 열려” 루카 24,31) 어느 날 내 일상이 주님 때문에 새롭게 보인다면, 그리스도의 영원한 젊음이 내 삶에 들어와 사는 것이 아닐까.
--- p. 48
노년은 깊어진 눈과 마음으로 자신의 정신적·영적 생명력을 내면에 잉태하여, 이를 젊은 세대의 성장을 위해 활짝 내어 줌으로써, 주위에 자신의 생명력을 널리 퍼뜨리는 알찬 시기가 된다. 이를 위해서 자기 내면과 더욱 친밀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p. 94-95
옛일을 이야기하는 로레트 수녀의 미소가 너무 고와 “미소가 참 아름답네요.”라고 말했더니, 로레트 수녀는 조금도 주저 없이 “미소는 나의 소명이지요.”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100세가 되어도 소명을 생각할 뿐 아니라 미소까지도 ‘소명’으로 여기다니….
--- p. 108
결국, 노년의 우리는 살아온 경험과 함께 지난 일을 더 넓고 풍요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과거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실도 이제 더 편히 수용하게 된다. 이를테면, 가난한 시절 어머니가 꽁보리밥과 김치만 싸 준 도시락이 부끄러워 학교 점심시간에 뚜껑을 열지 못했던 소녀의 기억, 어머니가 일터에 나간 뒤 동생들을 돌보던 큰언니에게 야단맞았던 아이의 기억,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아버지의 술주정이 싫어서 도망치다 동생을 생각하며 집에 돌아왔던 소년의 기억 등…. 이제는 그 고통스러운 기억조차 그립게 떠오르면서 새로운 해석으로 정화되기를 기다린다. “그때 우리는 이러저러했지. 고생하던 어머니, 아버지 마음을 이제 알겠네.”
--- p. 146-147
때로는 ‘홀로 있다’는 것이 최악의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남의 도움이 꼭 필요한 경우, 생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 노인의 경우 등이다. 그래서 “제가 곁에 함께 있어요.”,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는 마음을 전달한다면 최고의 값진 사랑이 될 것이다. 일상에서 ‘누군가 나와 함께 있구나’ 하고 느끼는 노인은 홀로 있어도 삶이 만족스러우며 늘 충만감에 차 있다.
--- p. 166-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