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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190g | 130*224*8mm
ISBN13 9788954681636
ISBN10 895468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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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자리를 뒤적이면
가끔 다 타지 않은 편지가 나왔다

아이들은 글씨를 주머니 깊이 넣어두었다가 먼저 잠든 사람의 머리맡에 몰래 뿌리곤 했다 미처 하지 못한 말 닿지 않은 글이 귓속으로 들어가면 꿈자리가 사나웠다 귀신과 공모한 아이들은 쾌활했으나 비극이란 애초에 모두 즐거움이었다

어떤 불행은 등잔불도 켜두지 않았으니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까마귀처럼 웅크리고 꿈을 꾸었다 흰 나무의 미간에 푸득거리며 떨어지는 꿈, 저승은 봄이었다 귀신들이 꽃잎으로 나무의 말을 헤아리는 밤이었다
--- 「가끔 타지 않은 편지가」 중에서

별은 철사 하나 지상에 꽂아 딱 한 줄 쓰고
수억 년 빛난다
--- 「천직」 중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 밖으로 발을 내민 그리움
뼈만 남은 글자들이 꽃상여에 실려 거처를 떠난다,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흉터는 눈뜨고 죽은 글자들
모든 꽃은 죽어서 눈뜬 글자들이다
--- 「꽃무늬 흉터」 중에서

또 당신은 별에서부터 얼마나 외딴 일인지
당신의 아름다운 천체에 넣었던 팔은 돌려받지 못하고 아득히 까마득히 꿈에서 남해로 걸어 내려왔는데
그리운 것과 그리운 것 사이에서 나는 태어났고 살았고 밥을 떴고 또
가장 따스하고 쓸쓸하였을 꿈속도 한 목숨으로 다녀왔으니 이제 한 줌도 그립지 않겠다
--- 「국자별 창고」 중에서

사랑스러운 말들을 잔뜩 뭉쳐놓으면
종잇조각이 되기 십상이라 했지요

당신이 종이로 만든 꾸깃꾸깃한 눈물이나 방울새 하나 손바닥에 올려주면 안주머니에 받아 넣었지요

종이 속에서 가늠할 수 없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올 때마다 지그시 쥐었다가
볕 좋은 창가에 올려두었지요
(그래도 날아가진 않아요)

우리가 사랑한 모든 거짓말들은
붉고 아득한 저녁과 함께 종이 관에 넣었지요
--- 「우리가 사랑한 모든 거짓말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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