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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혼자 함께_김대식 TENDENCY 떠나지 않고 여행자가 될 수는 없다_김원영 여행이 멈춰버린 시대, 일상에서 여행의 끈을 놓지 않는 방법_전명윤 여행하는 마음_임희선 두 도시 이야기_정하진 SURROUNDINGS 관광을 즐기지 않는다_기시 마사히코 고고학자의 ‘짠내투어’_강인욱 여행은 무엇을 하는가?_박세진 당신은 모르는 여행_안진국 INSPIRING 타인의 풍경_김선오 사진이 도달한 곳_이민지 투자자 민영하 씨의 사례_심너울 [스트레인저 싱스] 기묘한 나와 더 기묘한 사회의 심리학 1 - 뭉치거나 떠나거나_박한선 MECHANISM 왜 우리는 떠나고 싶어 할까_김대식 역동적 균형 속의 이동 : 해방을 향한 이동인가, 몰락을 향한 이동인가_전현우 달로 가는 여행_황정아 예민한 여행자들_전홍진 그때 그곳의 맛 : 여행이 추억되는 방식_정연주 X 편집부 INNER SIDE 이번 생 나의 여행_한자경 폐사지로 떠나는 시간 여행_윤광준 여행은 황혼을 모른다_임준수 에필로그 컨트리뷰터 별지 [요즘것들의 의식주호好락樂]_강혜빈, 서이제, 서장원, 우다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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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고 여행자가 될 방법은 없다. 익숙한 장소, 익숙한 감각, 익숙한 질서로부터 이동하지 않아도 훌륭한 기술과 콘텐츠에 힘입는다면 즐거운 관광객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여행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시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공간을 향해 이동하지 않을 수 없는 이동, 모르는 것을 신나게 만져보는 마음, 이런 것들이 우리를 여행자로 만든다.
--- p. 19 전쟁이 끝나고 오키나와는 미군의 주둔지가 되었다. ‘류큐 정부’라는 자치 정부가 만들어졌지만, 그 정책의 최종 결정권은 미군정에 있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귀될 때까지 미군 점령기는 27년간 계속되었다. 그동안 오키나와 본섬을 중심으로 광대한 미군기지가 건설되었다. 그 기지는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귀된 후에도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현재 일본 정부는 헤노코라는 변방 마을의 바다를 매립해 매우 거대한 군사기지를 새롭게 건설하려 계획 중이다. 이러한 역사와 구조 속에서 한 명의 ‘일본인’(물론 여기서 말하는 ‘일본인’은 오키나와인과 구별하는 의미에서 사용했다)으로서 ‘오키나와가 좋다’는 말의 의미는, 그 욕망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 p. 45 초기 인류가 17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면서 인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 이래 인간에겐 수많은 여행이 있었다. 그중 하나인 고고학자의 여행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낮술’과도 같다 할 수 있겠다. 낮술이라는 게 본인은 기분 좋을지 모르지만 정작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혀를 차는 안타까운 일이다. 고고학자의 여행도 비슷한 것 같다. 남들 다 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산과 숲속에서 모기에 뜯기며 조사를 하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팔자다. 그렇게 고고학자들은 일생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낸다. 황금 같은 보물은 거의 볼일 없고 흙구덩이 속에서 캐낸 토기편을 만지작거리면서 평생을 보낸다. 하지만 그 혼자만의 즐거움이 없었다면 박물관의 수많은 유물도 없었을 것이다. --- p. 57 밑 빠진 독의 구조를 체현하고 있는 자기, 향유의 결여와 잉여향유의 순환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는 자기가 오늘날의 여행자다. 여행은 이 자기에게 잉여향유를 약속하되 결코 그의 결여를 채워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레비스트로스가 여행을 싫어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 어쩌면 우리도 여행을 싫어해야 할지 모른다. 여행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시 임금노동을 감내할 수 있는 상태로 갱신해준다. 여행은 임금노동과 소비의 순환, 향유의 결여와 잉여향유의 순환을 통해 정의되는 자기를 재생산한다. 더 멀리 떠났다 올수록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더 확고하게 긍정된다. ‘일 년에 한 번쯤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은 것 아닌가?’ --- p. 61 나는 이러한 오지랖을 이제 관두고 싶다. 외부의 것들을 자아에 복무하게 하는 방식으로 치환하는 글쓰기라면 조금 지겹다. ‘쓰고 보니 꽤 괜찮아 보이는 것들’이 이제는 예전처럼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면 이제 무엇을 써야 하며, 또 쓸 수 있을 것인가. 튀니지에 다녀온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온 고민이다. 철저히 관찰자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타지에서는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으로서의 반성이 나날이 짙어졌다. 여행으로부터 받는 영감이 클수록 그랬다. --- p. 82 이동은 ‘여행의 즐거움’이나 ‘성장의 과실’과 같은 이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다. 이동은 개인과 사회 그리고 생태 시스템에 일정한 비용을 강요한다. 비용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아예 중단될 수도 있다. ‘이익과 비용 사이의 균형’,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 두 요소 사이에서 빚어지는 ‘균형 변화’는 이동과 여행의 어제와 오늘을 성찰하고 내일을 구상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틀이라고 할만하다. 독특한 시공간 속에서 실현되며 꽤 강건해 보이지만 실은 작은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는 그 역동적 균형점을 찾지 못하면, 어떠한 이동도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다. --- p. 123 맛이 열어젖히는 기억에는 단순히 요리 한 그릇과 식탁을 넘어 함께한 사람에 대한 감정, 식당의 공기와 흘러나오던 음악, 당시 그곳에 그 시간에 있게 되었던 이유와 인생이 그리 흘러가게 만들었던 삶의 궤적이 모두 담겨 있다. 적재적소에서 그 맛을 다시 접하면 잊은 줄 알았던 장소와 시간, 때로는 겪어본 적도 없는 타인의 사정까지 기억나고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이 굳이 헤밍웨이가 다이키리를 마셨던 엘플로리디타(El Floridita)를 찾아가고 짜장라면에 채끝살을 곁들이는 영화 속 메뉴를 재현하는 이유다. --- p. 152 전국의 뻔한 여행지와 관광명소에서 얻어낼 감흥이란 대개 비슷하다. 박제화된 정보와 규격화된 접근 방식 때문에 벌어진다. 역사에서 발췌한 이야기나 복원된 건축물들을 통해 어렴풋한 상상으로 시간의 틈을 메워나가는 일이 고작이다. 폐사지를 찾는 일은 조금 다르다. 한때 번성했을 절의 흔적만이 빈터에 남아 있다. 군데군데 건물의 주춧돌로 쓰였던 돌이 땅거죽을 뚫고 나왔으며 몇 개의 유구가 널려 있긴 하다. 여기에 조금 주의를 기울이면 일대에서 수습한 세월의 더께를 뒤집어쓴 석물들이 보존되어 있을 뿐이다. 사람도 없는 거대한 빈터를 어슬렁거리며 혼자만의 상상력으로 과거의 모습을 채워나가는 게 묘미다. 텅 비어 있어 찾아낼 것이 많고 상상과 유추의 행간을 마음대로 채워 넣을 내용이 생긴다. 형용모순의 공간에서 외려 쾌감을 느끼게 된다고나 할까. --- p. 177 |
“여행은 황혼을 모른다”
이동이 멈추고 만남이 끊긴 시대 여행의 의미를 확장하는 Good and General Questions 불과 몇 년 전까지 우리 중 절반가량은 매년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휴가철마다 여행 직전의 기대감을 나누기 바빴고, 돌아온 후에는 이국의 풍경과 먹거리 사진을 SNS에 공유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연간 해외여행 인구 2,000만 명 시대의 일이다. 이런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조차 조심스러워졌고, 떨어져 지내는 가족이나 지인과의 만남마저 줄이는 추세다. 다시 여행할 날을 고대하며, 다들 ‘무해한 고립’을 감수하며 지내는 요즘이다. 자유롭게 떠날 수 없는 날이 이어지면서 선명해진 점이 하나 있다. 이곳 아닌 그곳, 익숙한 곳 아닌 낯선 곳, 가본 적 없거나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그리고 꿈꾸는 것이 인간 본연의 마음이라는 것. 모두가 긴 숨고르기에 들어간 이 휴식기에 [매거진 G]는 여행의 의미를 차분하게 묻는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여행길에 나서게 할까.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여정에 오르고,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 또 이곳으로 돌아오고 나서 무엇을 얻게 될까. 여행자가 누리는 특권, 미지의 세계로 향해 걷는 자가 얻는 통찰을 앞당겨 담아 전한다. 고고학 노트와 달 탐사선, 미술관과 폐사지, 이동권과 소비문화 능숙한 여행자들이 들려주는 여행의 스무 가지 의미 여행은 익숙한 곳이 아닌 낯선 곳, 미지로 향하는 이동이다. “규칙적으로 잘 돌아가던 일상 속에서 잠시 빠져나와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데려다 놓고 싶은 순간”이 되면 우리는 짐을 꾸린다(임희선, 그림에세이, 29쪽). 낯선 장소로 가 활력과 영감을 보충하는 일이 절실해질 때가 있는데, 이러한 환경 변화의 필요성을 독일에선 “벽지 교체가 필요하다”라고 표현한다(정하진, 그래픽노블, 36쪽). 여행자가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은 단지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전환인 셈이다. 물론 여행에 늘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인디아나 존스] 같은 상황을 상상하지만, 고고학자 강인욱에게 여행은 “한정된 시간에 유라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꽁꽁 숨어 있는 유물과 (때로는 현지 공안과) 숨바꼭질하는” 고된 과정에 가깝다(51쪽).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전홍진에 따르면 평소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예민한 사람들에겐 낯설고 붐비는 여행지는 영감은커녕 피로만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남다른 주의가 필요하다(141쪽). 인류의 유산을 발굴한다는 보람, 일상의 지친 마음을 달래줄 추억이 이를 각각 벌충해주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여행이 늘 자유롭고 무해한 것만도 아니다. 여행이 점점 더 ‘소비 순례’로 전락해온 세태를 지적하는 인류학자 박세진(58쪽)과, 여행 시 발생하는 탄소 배출 문제를 짚는 교통 연구자 전현우(122쪽)의 글은 우리가 그간 간과해온 여행의 이면을 재고하게 한다. 오키나와를 떠받치는 빈곤과 착취의 구조를 알게 되면서 ‘관광지로서 오키나와를 좋아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됐다는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의 고백(40쪽)은, 개인 차원을 넘어서는 여행의 사회적 차원을 고민하게 한다. 단지 주어진 풍경을 보고 즐기는 데 그친다면 더 넓고 깊은 여행의 의미를 길어 올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떠나지 않고 여행자가 될 방법은 없다.”(19쪽) SNS와 최신 가상공간 기술이 물리적 여행을 대체하는 상황을 두고 변호사 김원영이 한 말이다. 여행의 의미는 여행자의 수만큼 다종다양하지만 한 가지 점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떠나기 전까진 그 의미를 알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달라지길 원한다면 우리는 일단 떠나야 한다. 관성을 거부하며 자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앞으로도 우리에겐 ‘새로운 여행’이 필요하다. 디지털 랜선여행 대신 아날로그 활자여행 여행을 이야기하는 여행책으로 여행하기 [매거진 G] 3호는 이동이 중단된 지금 세계를 배경으로 여행자 스무 명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발이 멈춘 여행작가의 일상부터 장애인 이동권 문제까지, 눈앞으로 다가온 우주여행의 미래 비전부터 오랜 아픔을 간직한 오키나와의 일상 풍경까지, 예민한 이들을 위한 여행법부터 동서양을 오가는 사유의 여행기까지. 익숙한 것을 다시 보고, 새로운 것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여행자들의 시선을 담았다. 여기에 더해 주제를 다양한 감각으로 변주한 그림, 사진, 그래픽노블, SF소설을 망라했고, 별지 [요즘것들의 의식주호好락樂]은 특별히 여행 엽서 형식으로 구성하여 만남이 끊긴 시대에 네 명의 작가가 건네는 안부의 글을 담았다. 이동과 만남 모두 제한된 요즘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특별한 경험과 따듯한 연결을 원한다. 다시 여행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도 이런 바람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여행자의 남다른 통찰과 감상이 듬뿍 담긴 스무 편의 글을 읽고 여러분 또한 지난 여행을 추억하며 다음 여행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