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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바그너의 방은 아름답다.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아름답다. 이 건축가는 자기 자신을 위한 장식가였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이 방은 제대로 된 방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방은 다른 사람의 개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방은 불완전하고, 따라서 아름다움을 논할 수도 없다. 이것은 모순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이란 최고의 완벽함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비실용적인 것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는 아예 생각도 못 한다. 어떤 사물에 대해 ‘아름답다’는 표현을 쓰려면, 우선 이 사물이 합목적성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 그 전제다. 그저 실용적이기만 한 사물은 아직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움에는 더 많은 것이 속해 있다. 옛날 칭퀘첸토 사람들이 가장 적확하게 표현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어떤 사물이 너무나 완벽해서, 그것에 손해를 끼치지 않고는 어떤 것을 빼지도 더할 수도 없을 때 그 사물은 아름답다. 이는 최고로 완벽하며 완결된 조화다. 그러나 로스의 “장식과 범죄”는 일체의 디자인과 심미적 욕망을 거두라는 말이 아니다. 모두가 좋아할 법한 장식은 과하다. 실용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름다움은 우리 가족이 머물 만한 가족의 공간을, 내가 집중할 만한 나의 업무 공간을 스스로 꾸밀 때 스며 나온다. 공예가와 예술가, 생활자가 동일선상에 놓일 때 우리는 우리 환경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의도한 적 없고, 요구한 적 없는 장식에게서 쫓겨나는 대신, 우리의 절실한 필요로 꾸민 방에서 우리는 자리를 잡고 꿈꿀 수 있게 된다. 건축을, 거주를 내 생활에서 끌어내 보는 구체적인 사고만으로, 죄주지도 벌받지도 않는 심미적 삶이 가능해진다고 『장식과 범죄』는 말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것에 질렸다. 우리는 다시 우리 소유의 네 벽 안에서 주인이 되려 한다. 우리가 미적 감각이 없다고, 좋다, 그럼 우리는 그렇게 미적 감각 없이 집 안을 꾸밀 것이다. 우리가 미적 감각이 있다면 더 좋다. 우리는 이제 더는 우리 방이 우리에게 폭군처럼 굴지 못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구입할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필요한 대로, 마음에 드는 대로. 우리 마음에 드는 대로! 그렇다, 그때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구석구석 뒤지며 찾았던 그 양식, 우리가 언제나 집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그 양식을 얻을 것이다. 똑같은 사자 머리에 좌우되지 않으며, 미적 감각에 따라, 내 입장에서 본다면 한 인간, 한 가족의 몰취미에 좌우되며, 그에 따라 형상화된 양식을 말이다. 똑같은 공통의 끈, 공간 속의 모든 가구를 서로 엮는 그 끈은 가구 소유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그 소유자가 특히 색상 선택에 있어 뭔가 급격하게 앞서 간다고 해도, 여전히 나쁠 것은 없다. 가족과 함께 성장한 집은 뭔가를 견뎌 낼 수 있다. ‘우아한’ 방에는 그것에 속하지 않는 단 하나의 장식품만을 넣어도 방 전체가 망가진다. 그러나 가족의 공간에서 그 장식품은 곧바로 완벽하게 조화될 것이다. 그런 방은 바이 올린과 같지 않은가. 바이올린은 연주가 가능하고, 그런 방은 거주가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