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시간이 동일한 속도로 흘러간다’고 생각하지만, 때론 시간이 평소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것같이 생각된다. 일이 한가할 때는 평소보다 일하는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혹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회의, 병원에서 진료 순서를 마냥 기다릴 때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다. 시계가 특별히 느리게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느껴질까?
아무래도 시간에는 시계가 제 기능에 충실하게 가리키는 ‘물리적 시간’과, 빠르거나 느리게 느껴지는 ‘심리적 시간’이 있는 듯하다. 심리학에서는 이 심리적인 시간을 별도로 다루는 분야까지 있는데, 그만큼 심리적 시간은 우리에게 보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 p.14-15
기다리는 거라면 ‘컵라면의 3분’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초의 즉석 라면 ‘치킨 라면’이 발매된 건 1958년이다. ‘뜨거운 물을 붓고 3분을 기다리면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세일즈 포인트였다. 당시 치킨 라면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
TV 애니메이션 속 울트라맨은 변신 후 3분밖에 초능력을 쓸 수 없다. 아이들 마음에 이 3분은 무엇보다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한, 그럼에도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만일 울트라맨이 초능력을 5분 정도 쓸 수 있었다면 그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아무래도 3분은 마법의 시간 같은 느낌이다.
--- p.34-35
여러분은 ‘죽기 직전 그동안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는가? 나는 아직 죽음에 직면해본 적이 없어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서양에서는 이 현상을 ‘파노라마 기억’이라 부르며 이미 상당한 연구가 진행됐다.
1871년 하임은 남동생과 친구들을 데리고 등산길에 나섰다. 정상까지 올라간 뒤 하산하려 했을 때 비극이 벌어졌다. 하임이 몸의 균형을 잃고 미끄러져, 산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하임은 생생하게 기록했다. 우선 추락하면서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곧 부딪히게 될 암벽, 그 위에 눈이 쌓여 있다면 떨어지더라도 목숨을 구할지 모른다. 만일 눈이 없다면 직접 암석 위로 떨어져 죽을 것이다. 만일 무사하다면 같이 등반한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5일 앞으로 다가온 대학 강의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죽음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까?’ 이처럼 다양한 생각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떠올랐다. 다음 순간 하임의 눈앞에는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그 기분은 마치 ‘조금 떨어진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 p.41-42
동물은 저마다 몸 크기에 맞게 움직이는데, 쥐는 빠르고 정신없이 움직이는 데 반해 코끼리는 다소 느리지만 당당히 움직인다. 동물생리학자인 모토카와 다쓰오(本川達雄) 교수에 따르면 ‘동물의 체중과 시간 길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즉, 체중이 늘어날수록 뭔가 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이 밖에 심장 박동 간격과 체중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이들도 있다. 그 연구 결과 ‘시간은 체중의 4분의 1 제곱에 비례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말은 ‘체중이 16배가 되면 시간이 두 배가 된다’고 이해하면 된다. 단순하게 체중이 두 배 는다고 시간이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이 연구 결과의 재미난 점이다.
--- p.86-87
제논에 따르면, 날아가는 화살을 잘 관찰해보면 ‘지금’이란 순간은 정지해 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도 화살은 정지해 있다. 그렇게 순간마다 화살이 정지해 있기 때문에 화살은 날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성능 고속 카메라로 날아가는 화살을 연속 촬영했다고 치자. 그러면 아마 여러 장의 ‘정지된 화살’ 사진만 찍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지된 화살 사진을 아무리 모아봐야 날아가는 화살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이렇게 설명하면 ‘그런가’ 싶지만, 또 현실에선 엄연히 화살이 날아갈 수 있다. 이 날아가는 화살의 역설은 단순한 것 같지만 철학적으로는 꽤 어려운 문제다. 제논이 말했듯 매 순간 화살이 정지해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찰나의 순간’이란 무엇일까?
--- p.102-103
그런데 아날로그시계는 왜 하나같이 시곗바늘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도록’ 설정돼 있을까? 간혹 장난삼아 ‘왼쪽으로 돌아가는’ 시계도 있지만 실용성 면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는 시곗바늘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시계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시곗바늘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꽤나 불가사의하다. 세상에는 왼쪽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분명 많기 때문이다. 야구에서는 주자가 왼쪽으로 베이스를 돈다. 즉, 반시계 방향이다. 관객 입장에서도 그것이 더 자연스럽다. 실제로 달려보면 알겠지만, 어째서인지 대부분의 사람은 시계 방향으로 달리기 어렵다. 사람은 대개 왼쪽으로 도는 게, 그러니까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게 더 자연스럽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시곗바늘이 오른쪽으로 돌게 됐을까? 통설로 알려진 건 ‘먼 옛날 사용된 해시계가 오른쪽으로 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p.132
공상과학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시간 역설(시간 여행의 모순)’을 말한다. 만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여러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자주 소개되는 예가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죽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다. 아버지가 죽으면 당연히 내가 태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죽게 한 나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없으면 아버지도 죽게 할 수 없다. 결국 내가 태어나게 되고 과거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 p.141
다세계 해석이란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의 사고 가운데 하나’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이 세상에 무수한 세계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이 사고 개념에 따르면 어떤 세계에선 당신이 엄청난 자산을 가진 대부호가 되고, 다른 어떤 세계에서는 파산해 사회의 맨 밑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 몇 가지의 다른 세계가 병존한다는 주장이다. 시간 역설의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태어나기 전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죽게 하는’ 경우다. 그러면 자신이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를 죽게 할 수 없게 된다. 아버지가 살아 있어야 자신이 태어날 수 있기에 시간 여행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다세계 해석에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시간 여행자가 아버지를 죽게 했다 치자. 그러자 아버지가 죽고 당신이 태어나지 않은 세계가 돼버린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세계도 존재한다. 아버지가 죽지 않고도 당신이 태어나는 세계 말이다. 즉, 당신이 죽게 한 아버지는 다른 세계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다세계 해석에서 시간 역설은 이렇게 해결된다.
--- p.158-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