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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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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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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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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년 11월 10일
이용안내 ?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21.33MB ?
ISBN13 9788965964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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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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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을 최대한 널리 탐사할 작정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서쪽으로는 구백예순째 홀, 북쪽으로는 팔백아흔째 홀, 남쪽으로는 칠백예순여덟째 홀까지 가 보았다. 홀이든 현관이든 계단이든 통로든, 조각상이 없는 곳은 없다. 나는 특정 홀 안에서는 조각상들 크기가 대체로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홀들끼리는 조각상들 크기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홀에 있는 조각상은 인간 크기의 두세 배는 되는데 어떤 홀에서는 인간 크기와 비슷하고, 또 어떤 홀에서는 내 어깨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에 잠긴 홀들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그러니까 십오에서 이십 미터는 되는 조각상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예외다. 집 바깥에는 천체들만 있다. 해와 달과 별들.
집은 헤아릴 수 없이 아름답고, 무한히 자애롭다
--- 1부 「피라네시」 중에서

“잘 듣게. 내게 한 가지 약속해 줬으면 좋겠네.”
“물론이죠.”
“미궁에서 누군가를 혹시라도 본다면―자네가 모르는 사람 말이네―그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주게. 반드시 숨어야 하네. 그 사람에게서 물러나게.”
“아, 하지만 그러면 얼마나 큰 기회를 날려 버리게 될지 생각해 보세요! 열여섯째 사람은 분명 우리한테는 없는 지식이 있을 거예요. 세상의 더 먼 곳들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을 거라고요.”
“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열여섯째 사람이라니?”
“저도 ‘열여섯째 사람’이라는 호칭이 좀 성가시다고는 생각해요. 원한다면 짧게 ‘16’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요지는 세상에 관해 우리가 모르는 정보가 16에게 있다는 거고, 따라서….”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자네는 몰라. 우리는 이 사람한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단 말이네.”
“정말 세상에 열여섯째 사람이 있는 거군요? 왜 한 번도 그 얘기를 안 하신 거죠? 굉장하군요! 축하할 일이에요!”
“아니네.”
그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피라네시. 이게 자네한테 중요한 일이라는 거 나도 알고, 이런 얘기를 털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유감스럽네. 하지만 이건 축하할 일이 아니야. 정반대지. 이 사람, 16은 나를 해치려고 하네. 16은 내 적이야. 그러니까 자네의 적이기도 하지.”
“아!”
외마디를 내뱉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 2부 「나머지 사람」 중에서

모든 것이 전환되었다.
어찌된 노릇인지 세상이 멈춰 버린 듯했다. 베를리오즈는 합창 중에 뚝 끊겼다. 내 눈꺼풀은 아직 덮여 있었지만 어둠의 질이 달라졌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더 회색빛이고 더 차가웠다. 공기도 더 차갑고 습하게 느껴지는 것이 꼭 안개 속으로 떨어진 듯했다. 나는 혹시 어딘가에 문이 활짝 열려 버리지는 않았나 생각했지만, 그와 동시에 거리의 소음도 멈췄으니 이런 생각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광대한 빈 공간 같은 소리가 났고, 사방에서 물결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벽을 때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떴다. 어떤 광대한 방에 벽이 사방에 솟아 있었다. 미노타우로스 조각상들이 나를 굽어보았는데, 커다란 몸집으로 주변을 어둡게 만들었고 거대한 뿔은 허공으로 치솟았으며 동물 같은 얼굴은 근엄하면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눈을 돌렸다. 그는 웃고 있었다.
“되돌려 놔!”
내가 그에게 비명을 질렀다. 그는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그는 웃고, 웃고, 또 웃었다
--- 5부 「밸런타인 케털리」 중에서

나는 래피얼이 미궁에 자주 돌아간다는 사실을 안다. 가끔은 나와 같이 가고, 가끔은 그녀 혼자서 간다. 그곳의 고요함과 홀로 있음에 강하게 끌리는 것이다. 그 안에서 래피얼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고 싶어 한다. 그것이 걱정스럽다.
“사라지지 마세요. 사라지지 마시라고요.”
내가 엄하게 말한다.
래피얼은 슬픈 듯,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안 그래요.”
그녀는 말한다.
“우리 둘이 상대방을 계속 구해 줄 수는 없어요. 웃기는 일이라고요.”
그녀는 웃음 짓는다. 그것은 슬픔이 조금 묻어나는 웃음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같은 향수를―내가 그녀에 관해 가장 먼저 알았던 것―뿌리고 그 향을 맡으면 나는 아직도 햇빛과 행복을 떠올리게 된다.
--- 7부 「매슈 로즈 소런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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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경이롭도록 아름답다. 오랜만에 현실을 온전히 떠나 다른 세계에 다녀왔다. 실체를 가진 환상의 공간. 생명력이 넘치는 인공의 건축. 그러기에 홀로 고립되어 있어도 충만하고, 세상이 나와 함께 하니 그것으로 다 좋다는 감각. 나는 책을 덮은 뒤에도 며칠이나 시각적인 환영에 빠져 있었다.
수재나 클라크는 고대의 장인처럼 웅장한 전당을 설계하여 당신을 던져 넣는다. 이 세계는 전체가 건축이며 미궁이다. 당신은 책을 펼치자마자 과거도 미래도 다른 삶도 없는 신화의 주인공처럼 미로를 탐사할 것이다. 곧 작가가 세계의 비밀을 알려주겠지, 하는 기대가 한껏 커질 무렵, 해답 대신 미스터리가 해일처럼 덮쳐든다. 그때마다 당신은 놀라 기록을 뒤지고 날짜를 세고, 지나온 곳을 반추하며 미스터리를 풀려 애쓸 것이다. 진실이 연이어 뒤집히고 자신과 모두를 의심하는 아픔 속에서도, 오직 세계의 아름다움만이 그대를 위로하리니.
- 김보영 (소설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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