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1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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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3쪽 | 234g | 120*188*12mm |
ISBN13 | 9788932039251 |
ISBN10 | 8932039259 |
발행일 | 2021년 1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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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3쪽 | 234g | 120*188*12mm |
ISBN13 | 9788932039251 |
ISBN10 | 8932039259 |
MD 한마디
[경계를 지우고 세계를 그리는 문장들] 구병모 장편소설. 꿈과 현실, 너와 나의 구분을 지우는 문장들, 그 사이에서 불현듯 나타나고 사라지는 의미와 생각들이 경계 지을 수 없는 이 세계와 우리의 매 순간을 색다르게 그린다.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읽는 이 문장 뿐, 어떤 해석도 예측도 없이 여기에 사로잡힌 채 그저 한걸음 딛는다. -소설MD 박형욱
상아의 문으로 미주 . 참고 문헌 추천의 말 |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가능하면 구입해 읽는다. 이번에 구병모 작가의 신작이 나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입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두껍지 않아 빨리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고, 나는 뜨~~~~아 했다. 이게 뭔가, 나는 책을 읽는 것인가 아니면 글자를 읽는 것인가, 글을 읽기는 했는데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읽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문장은 간결하고 짧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 책은 문장이 밀가루처럼 늘어진다. 문장 안에서 눈이 빙글빙글 돌아갈 것 같고, 책을 읽지만 뭘 읽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소개하는 예스 사이트에는 책 제목에 대해 언급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등장하는 상아로 만든 문 그리고 뿔로 만든 문. 여기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고 한다. 상아의 문으로 들어간 꿈은 거짓된 꿈, 뿔로 만든 문으로 들어간 꿈은 진실. 두 개의 문 중 책은 상아의 문으로 향해 간다고 했으니 이 책의 내용은 결국 거짓이라는 걸까? 내가 존재하는 것, 그리고 내가 꿈을 꾸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의 줄거리를 알 수 없었고, 문장을 읽었지만 문장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만약 문장을,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이 책의 의도라면 의도대로 된 거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어서 나오자 마자 구매했고 읽었는데... 이 난해함을 어떻게 할까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더 다양한 책을 읽고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 ‘이야기가 아니다. 요약할 수 없는 글. 쓸 수도 없고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허공에 떠올라’ 라고 책 뒤편에 평론가가 말했다. 맞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글자들이 허공에 떠올라 뭘 읽었는지 알 수 없는 책.
꿈이 지속된다는 것은 잠이 이어진다는 것이고 잠이 이어진다는 것은 죽음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죽음이라니. 죽음은 종말인데, 종말에 종말이 오지 않는 아이러니. (181)
우선 당신이 누구도 아니며 아무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그걸 넘어서 누구라든지 아무라든지 그 자체에 의미를 두지 마세요. (190)
구병모 작가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책으로 고른 게 하필 상아의 문으로, 라니. 여러 의미에서 낭패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누워 잠자고 있고 그러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꿈으로 꾸고 있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 우리가 깨어나 있으면서 생시에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지를 어떤 이가 물어올 경우, 어느 쪽인지를 입증할 증거가 뭐가 있겠느냐는 말일세.'
책의 서문에 인용된 플라톤의 말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책의 주인공인 진여(그런데 과연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는 꿈과 현실의 모호해지는 경계 사이에 서 있다. 지금 겪고 있는 일이 현실의 일인지 꿈 속의 일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 그 속에서 진여 자신의 정체성 또한 모호해지는데,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학생이 되어 학교에 가고, 그 학교에서는 체육 선생이 되기도 한다. 진여는 꿈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 다방으로 노력하지만 늘 허사다.
이 혼돈 속에서 진여는 매일 이렇게 생각하며 눈 뜨지 않았을까.
나는 누굴까. 내가 나를 나라고 지칭해도 되는 건가.
무기를 통해 알게 된, 자신은 한낱 꿈 속 바이러스에 불과하고 실재하지 않고 자신이 누군지를 말할 수조차 없다는, 그러니까 결국 어디에서든 '아무'도 되지 못한다는 거대한 진실을 마주했을 때 진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고 우선 부정하려 들지만 사실은 바로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은 '아무' 존재도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자신을 둘러싼 모든 피로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역설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
구병모 작가의 상아의 문으로는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선 굉장히 불친절한 책이다. 한 문장의 호흡이 굉장히 길고 그런 문장들이 쉴 틈 없이 밀려든다. 그것을 느리게 읽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문장을 끝맺는 온점에 도착하면 그때까지 읽어내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그 문장의 첫 머리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 이 얇은 책을 그런 식으로 아주 느리고 불편하게 읽었다. 그런데 문장뿐 아니라 문단 또한 길어서 책은 전반적으로 여백이랄 게 거의 없다. 책을 넘길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숨 막히는 문장과 문단...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읽는 나까지 덩달아 헤맬 때가 많았다. 어쩌면 작가가 이런 부분을 노리고 구성을 이렇게 꽉꽉(이라는 표현이 정말 알맞음) 채운 게 아닐지?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간 정갈한 서사와 캐릭터에 입맛을 들여왔던 나는,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마지막 한 페이지를 넘겼을 때 느꼈던 "유레카!"의 감각을 쉽게 잊을 순 없을 듯하다. 이 작가의 또다른 책을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