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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창비시선-468이동
심재휘 | 창비 | 2022년 01월 1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2 리뷰 5건 | 판매지수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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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100쪽 | 144g | 125*200*5mm
ISBN13 9788936424688
ISBN10 8936424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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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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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물닭 한마리가 물가에서 몸을 씻는다
빨간 부리로 물을 연신 몸에 끼얹지만
날개깃에 묻는 시늉만 하고 흘러내리는 물
날개를 들어 안쪽의 깃을 고르고
흉한 발은 물에 감추고
참 열심인 저것
이내 천천히 헤엄쳐서 간다
돌아서 있는 쇠물닭 한마리에게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한가운데로
--- 「사랑」 중에서

신호등 앞에 버스가 선 시간은 짧고 꽃이 지는 마당은 넓고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그다음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서 휘날리지도 못하고 목련이 진다 빈 마당에 지는 목숨을 뭐라 부를 만한 말이 내게는 없으니 목련은 말없이 지고 나는 누군가에게 줄 수 없도록 높은 봄 버스 하나를 갖게 되었다
--- 「높은 봄 버스」 중에서

버스는 서둘러 온 저물녘을 막 지나고
보조기를 밀며 때가 낀 벽돌의 교회로 들어가는
노인과 그의 늙은 아내를 지나쳐 오면
두부를 넣은 찌개가 식탁에 오릅니다
침대가 너른 제국에도 밤이 옵니다

그리고 이곳은
외로움부 장관이 임명되는 당신의 나라입니다
열두 색 색종이들을 차례로 오리는 듯이
꿈을 꾸는 밤이 옵니다
--- 「런던의 제국의 수도」 중에서

이제 낡고 지저분해진 나의 쓸쓸함은 방랑을 탕진하고 갈 데도 없어졌지만 남대천 모래톱 그 따뜻한 돌집으로 돌아가 함께 살 수는 없을 거예요 가는 비조차 피할 도리가 없는 정처란 그런 거예요 내가 돌볼 수밖에 없는 그저 쓸쓸한 쓸쓸함이 된 거죠 서울은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돌집은 사라졌어도 우리 손잡고 바다를 볼 수는 있잖아요
--- 「쓸쓸함과의 우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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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런던, 그의 고향인 강릉을 잇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때로는 다정하고 때로는 처연한 기억의 발자국만이 아니라, 낯익은 세상의 틈새에서 낯설게 비쳐오는 사람과 마음의 풍경이다. 그 사람과 풍경이 지워진 뒤에, 물이 물길을 따라가듯 흘러가는 말이 사라진 뒤에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잔상, 조용히 오래 스며드는 울림이다.

깊은 밤, 갓전등 불빛 아래에서 쓴 손편지 같은 시편들.
낮은 목소리가 전해주는 진심의 온기들.

그래, 마중이구나. 마중하러 나온 거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지상에는 없는, 가만히 눈을 감아야 열리는 플랫폼에서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이구나. 이 기다림은 떠나온 옛집이 잘 있는지 안부를 묻는 일이고, 빗소리는 비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죽 속에는 죽을 만드는 어떤 손이 있음을 발견하는 일이구나. 옥상에서 비 맞으며 담배 피우는 사람을 눈에 담는 유정한 일이구나. 매번 식어만 가는 차일지라도 당신을 위해 차를 우려 ‘가슴 선반’에 올리는 일,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그런 일이구나.
- 전동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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