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해 의자에 앉는 너에게 야구부 애 하나가 시비를 건다. 못 들은 척하고 책상 고리에 가방을 건다. 3학년 2반 애들은 너를 취두부라고 부른다. 썩은 고등어, 홀아비, 낫토, 취두부는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듣던 별명이다. 너는 어디서 냄새가 나는지 무슨 냄새인지 맡지 못한다. 샤워할 때 아무리 몸을 박박 닦아도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 / 영우 짝꿍은 가위바위보 진 놈이 가라. / 2학년 때 담임 선생이 학급 자리를 정하면서 말했다. 다들 주변에 앉기 싫어해서 너는 왼쪽 맨 뒷자리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3학년으로 진급한 후에도 뒷자리를 고집했다. 아무도 뒷자리에 앉은 너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 p.11 최범석, 「버디 무비」 중에서
나를 무능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를 끌고 운동장으로 데려갔다. 그러고서 나를 자신들의 이능력 실험 대상으로 사용한다. 말이 실험이지, 자신의 이능력으로 나를 공격하는 것뿐이다. 한때는 내 양팔을 두 사람이 붙잡아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내가 점점 무기력하게 맞아주기만 하면서 더는 날 붙잡지도 않았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저 녀석들의 불꽃에, 얼음에, 번개에 고통스러워하다가 다시 일어나는 거다.
--- p.42 공준원, 「발가락」 중에서
묘는 나를 붙잡고 보폭을 크게 해서 걸었다. 묘와 함께 걷는 게 너무 오랜만의 일이었다. 성채에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늘 일을 해야 했고 관광객들의 지갑을 훔칠만한 빈틈을 찾기 위해 나는 언제나 그늘에 숨어 있어야 했다. 그게 묘가 나와 함께 사는 이유였다. 서로의 관심사와 좋아하는 것들을 묻고 이야기하기에 나는 늘 지쳐 있었다. 묘만이 항상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혼자 주절거릴 뿐이었다. 나는 지갑을 훔치기 전, 이따금 묘가 그들과 걷는 것을 보곤 했다. 관광객들은 묘를 보면 안타까운 표정을 짓다가도 결국엔 웃어주었다. 나는 그럴수록 더더욱 골목 안쪽으로 숨었다.
--- p.76 유희주, 「살라만더」 중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아이가 봄꽃이 난분분한 국립공원 걸으며 / 사진에 찍히려고가 아니라 그냥 이쪽을 보라고 해서 보는 내 아이가 / 먼 미래에 어떤 피사체 하나를 보고 / 이게 뭐냐고 물어올 것이다
--- p.95 강동욱,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에서
내가 자퇴를 하고 느낀 점은 모든 학교 밖 청소년들이 비행 청소년이 아니고, 모두가 배달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남들이 그렇게 이미 보고 있지만, 사실 센터를 가보면 연령대는 정말 다양하다. 그리고 개개인의 사정과 이야기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지 않았다. 다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내가 본 사람들은 배우려는 의지가 있었고, 마냥 우울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한 번 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정말 죽을 것 같으면 해도 괜찮다는 거다. 꼭 그렇게 3년을 힘들게 다니지만은 않아도 된다는 거다.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인생 자체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니까.
--- p.130 박지희, 「자퇴 계획서를 제출합니다」 중에서
영화의 방식에 동의했든 아니든, 한 가지 정도는 자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창석이 죽거나 쓰는 것, 둘 중 어떤 결말을 더 믿고 싶을지. 만약 선택한 결말이 반대편 결말이 남겨둔 의문들을 말끔히 걷어냈다면,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있어서 믿은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서 믿은 것일 테다. 도심에서 토끼를 발견했다는 창석의 말을 “좋네요. 해피엔딩이고.”라며 믿어준 주은처럼,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가 아닌가는 이야기가 어떤 순간에 어떻게 나에게 당도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 p.226 배해웅,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은 이야기 - 김종관, 《아무도 없는 곳》(2021)」 중에서
현대인은 목표 없이 방황하고 있다. 미래는 불안하고 실존은 의심스럽다. 삶의 의미를 찾느라 지쳐버린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 없이 다가가 즐거운 리듬으로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아기상어’는 불안 속에 이어지는 삶 속에도 작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만족감을 준다. 영상 클립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궁극적인 만족과 거창한 의미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 무가치하게 이어지는 연속성의 여정을 계속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살고만 있어도 즐거운 일은 있다고, ‘아기상어’는 삶에 지친 어른들의 등을 토닥여준다.
--- p.235~236 김정현, 「아동용의 반란 - 영상 동요 ‘아기상어’로 바라본 키즈 콘텐츠의 전망」 중에서
드라마와 영화 같은 시각 콘텐츠도 대중 서사를 담고 있지만, 청각 콘텐츠인 대중가요도 대중 서사를 담고 있다. 여러 아이돌이 가사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시각과 표현, 독자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여기, 대중 서사의 전개를 자신만의 화법으로 소화하고 서사를 구축한 아이돌 그룹이 있다. 바로 세븐틴(Seventeen)이다. 이들은 한 편의 드라마 같고 소년 만화 같은 가사로 자아와 세상을 노래할 뿐 아니라, 하염없이 개인으로 쪼개어지는 오늘날, 이러한 흐름에 유효한 메시지도 전한다.
--- p.242 정주연, 「가장 작고 가장 큰 나의 노래 - 세븐틴의 미시 서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