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들어가며
1장 1926년 8월 4일, 새벽 2장 목포 3장 1923년, 여름 4장 독창회 5장 평양, 그리고 6장 하얼빈 7장 재회 8장 첫사랑 9장 유작 |
저서자영
관심작가 알림신청서자영의 다른 상품
저강헌
관심작가 알림신청강헌의 다른 상품
“넌 조선에서 단독 공연을 할 수 있는 가수가 나 말고 누가 또 있을 거 같으니? 단독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이렇게 번듯한 공연장을 빌릴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이미 절반의 성공이야. 너 나중에 단독 공연 한다고 해봐. 단 한 칸이라도 널 위해 내주는 공연장이 있나.”
“뭐야?” “이미 공연장을 빌려서 단독 공연을 한다고 한 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위치인지 난 증명했어. 그런데 심지어 그 티켓이 팔렸어. 오로지 내 이름밖에 안 적힌 그 티켓을 사람들이 샀단 말이 다! 이런 가수가 조선에 나 말고 또 있니?” “다른 사람은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이지. 실패할 게 뻔하니까. 이런 미친 짓을 굳이 한 언니 니가 멍청하지. 그딴 식으로 자위하지 말라. 더 구차하니까.” “실패할 게 뻔하다고 아무도 시도하지 못하는 일을 해서 티켓을 반이나 팔지 않았어? 클래식 공연 티켓이 반이나 팔렸다는 건 대단한 성공이야. 인정하기 싫으니?” 대단한 자기변명이었으나 또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기서 더 따지고 들면 이제 더 구차해질 쪽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챈 성덕이 분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 「4장, 독창회」 중에서 시작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던 심덕이 크게 심호흡한 뒤 용문을 곧게 쳐다봤다. 흔들림 없는 시선이 단정했다. 툭 털어놓고 말을 하기로 결심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 선생님은 독창회 문제로 지난번에 제가 찾아왔을 때, 목적을 뻔히 아시면서 절 놀리셨어요. 아니라고 하지 마세요. 분명 절 놀리셨어요. 그래서 제가 말을 꺼내지 못하게 만드셨어요. 아마 제 입에서 선생님이 원하는 말이 안 나왔기 때문이라고, 저는 짐작했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오늘 저는 거래를 하기 위해 왔어요. 선생님께 원하는 말씀을 들려드리고 제가 원하는 걸 받으려구요. 그런데 선생님은 이번엔 아무 조건 없이 돈을 융통해 주시네요. 지난번엔 안 됐던 게 왜 이번엔 되는 건지 납득이 안 가요. 제게 원하는 게 있지 않으신가요?” 용문이 웃음을 터뜨렸다. 꽤 즐거워 보이는 얼굴을 숨기지 않은 채 용문이 심덕을 비스듬히 바라봤다. “내가 뭘 원한다고 생각하죠?” “저랑 자고 싶으시잖아요.” --- 「4장, 독창회」 중에서 |
곡해되어온 역사의 단면과 윤심덕의 삶
오랜 믿음을 전복하는 치밀하고 섬세한 기록 ‘사의 찬미’는 한국 대중가요 역사의 첫 페이지에 새겨진 화려한 이름이자, 암울한 오명이다.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정사(情死)로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매된 ‘사의 찬미’는 전례 없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한국의 대중가요가 본격적으로 태동한 것이다. 이 극적인 사건은 일시에 사람들을 오해의 늪으로 빠뜨렸다. 사람들은 ‘사의 찬미’의 비극적인 가사와 윤심덕을 바라보던 자신들의 편견을 근거로 각종 가십과 가짜뉴스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자유연애주의자’임을 선언한 당대 여성의 서사는 왜곡된 시선에 둘러싸여 끝없이 소비됐다. 이것이 우리가 ‘사의 찬미’에 얽힌 이야기를 비극적인 로맨스로만 기억하는 이유다. 로맨스에 초점을 맞출수록 역사의 근간은 부실해졌고 윤심덕의 삶은 흐릿해졌으며 진실은 새카만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먼저 명징한 ‘사실’만을 직시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사의 찬미’는 축음기의 대대적인 보급을 이끌었고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음반 시장을 형성했다. 이때, 이 현상들로부터 이득을 취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윤심덕의 죽음과 ‘사의 찬미’의 대히트를 관망하며 미소를 짓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암울한 1920년대의 시대적 맥락으로 미루어 본다면, 이 소설이 기록한 진실의 조각으로 비추어 본다면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죽음의 노래 ‘사의 찬미’는 찬란한 삶의 노래 ‘생의 찬미’로 변주된다 윤심덕이 죽기 직전 녹음한 곡 ‘사의 찬미’는 죽음의 노래다. 당대에는 ‘찬미’란 말이 ‘음악’ 또는 ‘노래’와 같은 뜻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죽음을 찬미한 것과 죽음에 관한 노래를 부른 것은 다르므로, 우리는 이 곡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 ‘사의 찬미’의 이면에 가려진 윤심덕의 진짜 삶을 읽어내야 한다. 한 세기 전에 발매된 곡에 얽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드라마 작가와 음악평론가가 만났다. 서울에서 일본까지, 5년여에 걸친 취재 끝에 이 곡을 둘러싼 무수한 맥락을 재정립했다. 그리고 죽음의 노래에 삶의 흔적을 새기고자 상상의 힘을 빌려 미스터리를 가미한 소설로 엮어냈다. 윤심덕은 이른 시기에 죽음을 똑똑히 직면한 사람이지만 죽음 그 자체를 찬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끝없이 삶을 찬미했다. 누구보다 삶을 열망하고 애착했기에 죽음을 충만하게 사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어쩌면 영원일 수도 있었다”(1권 398쪽)라고, “지금 이 순간도 내일이 오늘보다 나으리라, 꿈꾸며 바란다”(2권 458쪽)라고. 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건너 우리 앞에 다시 찾아온 윤심덕의 삶과 ‘사의 찬미’의 진짜 이야기는 그 어떤 죽음도 삶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자명한 비밀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사의 찬미’는 모두의 마음속에서 찬란한 삶의 노래 ‘생의 찬미’로 변주되어 울려 퍼질 것이다. 흥미진진한 과거로의 시간여행 케이팩션, 한국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열다! 역사는 여전히 무궁무진한 이야기로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지만, 역사 소재를 다룬 역사소설은 시들어버린 꽃나무처럼 힘을 잃었다. 역사소설은 한때 큰 붐을 이루기도 했으나 그동안 정형화되면서 식상해졌고, 독자들에게 신선한 독서의 맛을 느끼게 해주지 못했다. 케이팩션은 새로운 소재를 찾는 데 급급한 게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소재를 다루어야만 다시금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분석 끝에 탄생한 고즈넉이엔티의 역사소설 브랜드다. 케이팩션은 단순히 역사를 스토리로 펼치는 방식이 아니라 스릴러와 추리, 호러, 판타지와 같은 장르가 복합되고, 현대적인 관점과 감각이 결합되어 이전과 차별화된 역사소설을 선보일 것이다. 시신을 검시하는 검험산파, 채집한 것이 아니라 창작한 기담들, 식용이 가능한 소나무를 개발하는 꼽추 정원사……. 역사소설의 부흥이라는 기치를 걸고 케이팩션이 최전선에 내세운 우리 역사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