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호에는 다음 호에 ‘창작 탐정소설’을 싣기로 했다는, 다음과 같은 예고가 실렸다.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이 처음 활자화되었다. 여기에는 「2전짜리 동전」이라는 제목이 당당하게 실려 있다.
‘일본에도 외국 작품 못지않은 탐정소설이 나와야 한다고 우리는 늘 말해왔다. 그런데 드디어 그런 훌륭한 작품이 나타났다. 정말로 외국 명작에 뒤지지 않는,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외국 작가의 작품보다 뛰어난 장점을 가진 온전한 창작물이 탄생했다. 이번 호에 발표하는 에도가와 씨의 작품이 그것이다. 해외 작품만 소개해온 본지가 이번 호를 특별히 창작 탐정소설호라고 내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걸작을 널리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감히 독자 여러분께서 읽고 비판해주시기 바란다.’
--- p.82, 「등장」 중에서
‘대중문학’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사람은 시라이 교지였다. 시라이는 1889년 출생이니 란포보다 다섯 살 많다. 하쿠분칸이 내던 《고단잣시》를 통해 작가로 데뷔했고, 이 무렵에는 《호치신문》에 대하소설이 될 「후지산에 선 그림자」를 연재 중이었다. 1925년에 하세가와 신, 구니에다 지로, 에도가와 란포, 고사카이 후보쿠, 나오키 산주산(나중에 ‘나오키 산주고’로 개명) 같은 작가들과 함께 대중작가 친목 단체인 ‘21일회’를 만들어 이듬해 이 모임의 기관지 《다이슈분게이》를 창간했다. 문예지에 실리는 순문학과는 다른, 많은 부수를 발행하는 잡지나 신문에 실리는 소설은 오락소설, 통속소설, 요미모노분게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시라이는 ‘일반 민중에게 넓게 열린 문학’이라고 해서 ‘대중문학’이란 이름을 주장했다.
--- p.156~157, 「맹우」 중에서
1935년 12월에 발매된 《쇼넨클럽》 1936년 신년 특대호부터 「괴인 이십면상」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괴도 뤼팽’을 본떠 「괴도 이십면상」이라고 했지만, 소년 잡지의 윤리 규정상 ‘도둑 도盜’라는 글자를 제목에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괴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쪽이 뤼팽과 차별화할 수 있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그 무렵 도쿄의 동네마다 집집마다 둘 이상이 얼굴을 마주하기만 하면 마치 날씨로 안부를 묻기라도 하듯 「괴인 이십면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총 스물여섯 편의 장편이 나와 일본 어린이 도서 역사상 최대 히트작이 될 거대한 시리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p.242~243, 「위기」 중에서
요코미조 세이시는 소개지인 오카야마현에서 일왕의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마흔세 살이 되던 해였다.
후쿠시마에 있던 란포와 마찬가지로 오카야마의 요코미조도 전파 상태가 좋지 않아 일왕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거기 모인 농민들도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요코미조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도 대답해줄 수 없었다. 그래도 요코미조는 “또한 교전을 계속할 수 없어……”라는 부분을 알아들었고, 일본이 항복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속으로 절규했다. “자! 이제부터다!”’
‘요 몇 년 동안 이어지던 군과 정보국의 압박을 받던 시대가 이제 무너질 거라는 사실에 대해 깊은 만족과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서 ‘자, 이제부터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요코미조에게 ‘적’은 미군이 아니라 일본군과 정부의 정보국이었다.
--- p.279~280, 「재기」 중에서
요코미조 세이시는 세이주샤에서 『혼진 살인사건』을 낸 1947년으로부터 3년 후 고단샤, 슌요도 같은 대형 출판사가 내는 전집에 낄 만큼 인기 작가가 되었다. 그 뒤로도 매년 여러 출판사가 내는 많은 시리즈에 『혼진 살인사건』이 들어갔다.
란포가 상상한 대로 일본 패전 뒤에는 전에 없던 탐정소설 붐이 일어나고 잡지 창간이 이어졌을 뿐 아니라 단행본도 계속 나왔다. 그 덕분에 란포와 요코미조의 작품 복간이 줄을 이었다.
--- p.374~375, 「기적」 중에서
「이누가미 일족」은 1950년 1월호부터 연재되었으니 1949년 10월과 11월 사이에 집필하기 시작했으리라.
요코미조는 《킹》 1949년 12월호에 실린 예고에서 ‘이 소설에서 피도 얼어붙는 공포의 세계와 반짝거리는 아름다움, 그리고 동시에 추리의 전개가 가져다주는 재미를 그려내고 싶다’라고 선언했다. 《호세키》 같은 탐정소설 전문지에 쓸 때는 독자가 마니아뿐이기 때문에 어설픈 이야기를 써서는 안 된다는 긴장감이 있다. 한편 대중잡지에 쓸 때는 독자를 따분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매회 클라이맥스를 설정해 가슴 두근거리게 만들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추리의 전개가 지닌 재미’를 놓치게 된다. 란포의 통속 장편소설이 그 좋은 본보기다. 요코미조는 통속소설이면서도 본격 탐정소설인 작품을 쓰고 싶었다.
--- p.433~434, 「부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