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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파묻힌 거인

[ 양장,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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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24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92쪽 | 710g | 135*195*34mm
ISBN13 9788937442896
ISBN10 8937442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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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그날 가시나무 옆에서 나랑 이야기를 나눈, 우중충한 누더기 걸친 외지 여자 기억나요? 겉으로는 실성한 떠돌이처럼 보였지만 그이가 한 이야기가 조금 전 노파가 한 이야기와 아주 비슷했어요. 그이도 남편을 뱃사공이 데려가 버리고 물가에 혼자 남았대요. 그 만을 떠나 쓸쓸히 울면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산골짜기를 건너가는데, 앞쪽으로 한참 멀리, 뒤쪽으로도 한참 멀리까지 길이 훤히 보이는데 그 길에 자기처럼 우는 사람들이 죽 늘어서 있더라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막 들었을 때는 우리와 관계 없는 일이지 싶어서 크게 겁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이가 또 이러는 거예요, 이 땅에 망각의 안개라는 저주가 내렸다고. 우리도 많이 했던 이야기잖아요. 그러고는 나한테 묻는 거예요. ‘부인과 남편분은 함께했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서로의 사랑을 증명하시겠어요?’ 그 후로 계속 그 생각을 했어요. 때로는 생각해 보면 너무 두려워요.”
--- p.72

“그렇지만 부인, 이 안개에서 벗어나고 싶으신 것이 정말 확실한가요? 어떤 일들은 기억에서 잊힌 채로 두는 것이 낫지 않은가요?”
“그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희는 아니에요. 남편과 저는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요. 그런 기억을 빼앗긴다는 건 밤에 도둑이 들어 가장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과 다르지 않아요.”
--- p.242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소. 오늘 우리가 색슨인들을 전사와 아기를 가리지 않고 무수히 학살하더라도, 이 땅 방방곡곡에 색슨인은 여전히 많소. 동쪽에서 건너와 해안에 배로 상륙하고, 매일같이 새 마을을 짓는단 말이오. 증오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소. 오늘 행해진 일로 말미암아 오히려 강철같이 다져질 뿐이오. 나는 이제 귀공의 삼촌에게 가서 내 눈으로 본 것을 보고하겠소. 하느님께서 이런 행위를 보시고 미소 지어 주시리라 정녕 믿는지, 그의 얼굴에서 확인해 보리다.”
--- p.329

“만약 내가 죽고 네가 산다면, 꼭 약속해다오, 네 가슴속에 브리턴인에 대한 증오를 품고 살겠다고.”
“무슨 말씀이세요, 전사님? 브리턴인 누구 말인가요?”
“브리턴인 전부 말이다. 네게 온정을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 이해가 안 돼요, 전사님. 자기 빵을 제게 나눠 주는 브리턴인도 증오해야 해요? 가웨인 경처럼 저를 적에게서 구해 주는 사람도요?”
--- p.372

늙은 남자가 갑자기 뭐라고 외쳤다. 브리턴 말이어서 에드윈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경고하는 걸까? 부탁하는 걸까? 그때 비어트리스 부인의 목소리가 바람을 뚫고 들려왔다.
“에드윈! 우리 두 사람이 네게 부탁할 게 있단다. 앞으로 세월이 흘러도, 우리를 기억해 다오. 우리를 잊지 말고, 어릴 적 우리와 나눈 우정을 잊지 말아 다오.”
그 말을 듣자 에드윈은 무언가 다른 것이 생각났다. 전사에게 했던 약속, 즉 모든 브리턴인을 증오할 의무였다. 하지만 위스턴이 이 인자한 부부까지 포함해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액슬 선생이 한 손을 주저하듯 들고 있다. 작별 인사일까, 소년을 못 가게 잡아 두려는 몸짓일까?
---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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