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신비주의 비이성, 낭만주의 비이성, 경험-직관주의 비이성은 종법농민의 비이성 사유의 세 가지 주요 형식이다.
--- p.369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바로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바로 거기서 ‘주의’가 생겼다.
5·4운동 이래 중국 지식인은 ‘주의’와 ‘문제’의 두 방면에서 열심히 길을 찾고 있다. 5·4운동은 본래, 크기는 하지만 합당하지 않고 그 함의도 불분명한 개념인 ‘문화’운동이라기보다는 중국인(지식인을 대표로 하는)이 솔직하게 주의를 말하고 문제와 직접 맞부딪치는 운동이라고 해야 옳다. 당시 후스(胡適)와 리다자오(李大釗)가 ‘문제인가 주의인가’라는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두 사람을 비롯한 5·4엘리트들은 대부분 주의를 말하고 동시에 문제도 말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주의가 달라서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답이 달랐다는 것뿐이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나 세기가 바뀌고 새 천년이 열리는 오늘의 중국은 여전히 대변혁의 시대에 놓여 있으니, 솔직하게 주의를 말하고 문제와 직접 맞부딪치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분명 문제를 회피하는 주의의 설교는 공소할 뿐이고, 주의가 결여된 문제의 연구는 사실나열의 학문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학문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공소화와 사실나열에서 벗어나려는 ‘문제와 주의’의 토론은 분명히 중국 사상계의 희망이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1.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여기저기서 금세기의 역사적 대사건들을 꼽아 회고했다. 그 사건들 중에 중국혁명은 늘 끼여 있었다. 이제 중국혁명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지났고, 그것과 상반되는 듯한 ‘또 하나의 혁명’ 또는 ‘제2혁명’으로도 일컬어지는 개혁·개방을 추진한 지도 20년이 되었다. 농민을 주력으로 한 항일전쟁과 신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로 새로운 중국이 수립되고 농민은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그런데 생산력 증대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제2혁명에서는 농민이 어떤 주된 역할도 담당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이 자리잡으면서 역사상의 농민과 농민운동에 대한 해석도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다. 가령 역대 모든 농민반란은 생산력을 파괴하여 중국사의 정체(停滯)를 가져온 주범이라 하거나 당대 중국사회 봉건주의의 근원으로 농민 소생산자의 이데올로기와 심리구조를 지목하는 견해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그 예이다.
현실의 필요에 따라 역사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흔한 일인데 중국인이 농민을 어떻게 보든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고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현대 중국 50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중국을 포함하여 농민을 주력으로 노농동맹에 의해 진행된 20세기의 여러 혁명과 사회주의의 문제로 직결된다. 그래서 이것은 이 모델을 따른 북한 사회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형식상 이와는 정반대의 모델을 따라 자본주의를 추진하긴 했지만 우리로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과거는 물론 지금도 우리는 중국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처럼 농민과 농업을 기초로 한 국가에서 제기되는 농민문제라면 그것은 더 이상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만약 중국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중국학’이라고 한다면, 중국학의 핵심은 사실상 ‘농민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체와 봉건주의의 책임을 농민반란이나 농민 소생산자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농업사회와 이에 기초한 사회정치체제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전원시와 광시곡』은 이런 문제의식에 충실한 중국인 자신의 연구서인 秦暉·蘇文, 『田園詩與狂想曲―關中模式與前近代社會的再認識』(北京: 中央編譯出版社, 1996)을 완역한 것이다.
2.
이 책은 15세의 중학생이 문화대혁명 때 농촌에 하방되어 9년간 농민이 되었던 체험을 바탕으로 문화혁명과 중국혁명의 사회역사적 원인을 중국사회 내면으로부터 찾아보려는 치열한 자기성찰적 연구라 할 수 있다. 나는 난징 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를 하던 1997년 가을 어느 서점에서 이 책을 구입해 읽었는데, 처음에는 부제에 보이듯 ‘전근대 사회’(사실상 농민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점차 이 책이 중국 현실사회의 운행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한 연구임을 깨달았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문제의식을 이처럼 냉정하게 이론적 실증적 연구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혁명을 일으켜 자신의 청춘을 앗아간 권력자들에게 분석의 칼을 겨누기는커녕 손톱만큼의 반감도 드러내지 않는 냉정함 속에, 중국의 농민학 이론체계를 세우려는 지은이의 학문적 열정이 뚜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문화혁명을 정책결정자의 좌경 탓으로 돌리지 않고 전근대사회의 운행 메커니즘이 극복되지 않은 결과로 이해한다. 그의 이런 견해는 고도의 이론적 추상분석과 역사적 실증분석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그의 이론 도구는 사회주의 원전에서부터 차야노프 등 인민주의 문헌은 물론 마르크 블로크의 아날역사학, 레비 브륄의 문화인류학, 테오도르 샤닌 등의 농민학을 비롯한 20세기 서양 사회과학이론을 아우르며, 그의 역사자료는 경전, 각 시기의 토지대장, 지방지, 비문, 구전 민요, 민간속어, 소설, 토지혁명 당안 등 외국인이 충분히 구사하기 어려운 것들을 두루 포괄한다. 분석시야도 매우 넓어서 시간적으로 고대부터 근현대를 거쳐 당대의 개혁·개방 시기를 아우르고, 공간적으로 중국의 농민문제에 중심을 두되 각 시기의 서양사회(러시아와 구소련, 동·서 유럽, 미국 등)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넘나든다. ‘농민학’(peasantology)이란 공학적 관점에서 농민을 연구하는 농학과 달리 인문학적 관점에서 농민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책은 흔히 전문분야 별로 진행된 기존의 혁명사나 경제사·문화사 연구와 달리 각종 인접 학문을 가능한 한 폭넓게 종합한 농민사회의 전체사를 추구한다. 분석에 동원된 이론과 자료가 광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먼저 ‘농민’의 어원과 그 의미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농민의 생존배경으로 거론되는 봉건사회의 개념과 사회관계를 재검토한다. 그리하여 봉건사회의 본질은 토지소유관계나 군사적 충성관계가 아니라 인신의존관계이며 이것을 체현한 사회형태가 ‘종법공동체’(여기서 ‘종법’은 ‘가부장적’을 뜻한다)라고 주장한다. 또 개인에 대한 공동체의 속박-보호 유대가 봉건사회 인신예속의 근원임을 밝힌 다음, 중국 봉건사회를 실증분석하여 자작농 위주의 ‘관중 모델’과 소작농 위주의 ‘타이후 모델’로 나누고 어느 모델이든 종법공동체의 인신의존 관계를 본질로 했음을 실증한다. 이를 바탕으로 종법사회의 구조와 유형, 경제운용, 가치관념, 윤리원칙, 사유방식 등이 서로 어떻게 유기적인 체계를 형성하고 전원시처럼 화목하고 엄숙한 선율 속에 운행되었는지를 깊이 있고 흥미롭게 보여준다.
전근대사에 대한 이런 이해를 바탕을 전제로 했을 때 20세기 사회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우선 러시아혁명이든 중국혁명이든 모두 지주소작제를 봉건제로 보고 지주 타도, 곧 공동체 수장의 교체에 그쳤을 뿐 종법공동체 자체를 타파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당시 대중은 공동체 수장들의 사욕 추구로 인해 약화된 공동체 성원에 대한 보호기능을 회복·강화하려는 목적에서 혁명에 참가했고, 상품경제가 미숙한 조건에서 혁명 지도부도 종법공동체의 엘리트 문화를 체현했기 때문에 그 대중문화를 체현한 농민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넘어설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에트식 전체주의나 인민공사식 평균주의는 모두 정책결정자의 교조주의 탓이라기보다는 종법공동체의 산물로 이해된다.
결국 지은이가 볼 때 ‘20세기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농민사회주의(인민주의)이며 그 본질은 봉건주의이다. 러시아도 중국도 종법공동체 봉건주의를 타파하는 사회주의 민주혁명의 1단계에 머물렀으므로 당면한 중국의 과제는 이 혁명의 2단계를 완성하는 것, 곧 이런 토양과 문화를 철저하게 혁명하는 것이며 중국의 고난과 희망이 여기에 달려 있다고 결론짓는다. 이를 문학적으로 응축한 표현이 ‘전원시와 광시곡’인데, ‘전원시’는 종법공동체 성원의 목가적 분위기를 상징하며 ‘광시곡’은 그 속박-보호 관계를 타파하고 독립된 자유인의 활력 넘치는 생활을 상징한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