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처럼 거침없이 질주하는 세계는 이미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앞으로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되는 시점에 그들 모두가 OECD 국가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풍요로움에 도달한다고 가정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28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제 규모가 2050년까지 지금보다 15배 이상(1950년의 75배 이상)이 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금세기말에 가서는 현재의 경제 규모보다 40배 이상(1950년의 200배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29 대체 그러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단 말인가? 진정 그것이 지속가능한 공동의 번영을 이루는 데 신뢰할 만한 전망을 제공하는가?--- p.30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경제성장을 통해 안정성을 유지한다. 경제가 비틀거리자(2008년 후반에 그 모습이 극적으로 나타났다) 정치인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기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직장은 물론 집을 잃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침체의 악순환에 빠져든 것이다. 그럼에도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기라도 하면 정신이상자나 몽상가, 혁명주의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는 성장에 의문을 던져야만 한다. 경제학자에게 성장 없는 경제라는 개념은 저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생태주의자에게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저주이다. 제한된 시스템 안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하위 시스템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유한한 생태계 안에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제 시스템이 놓일 수 있는지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답해야만 한다.--- pp.30-31
기존의 경제체제는 번영을 이루기 위해 경제성장에 매달려왔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높은 수입은 행복을 증진시키고 모든 사람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 도전장을 내민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전 세계에 걸쳐 소득과 복지에 엄청난 격차가 지속되고 있고 세계 경제가 생태 한계의 제한을 받는 상황에서도, 부유한 나라들이 경제성장을 목표로 삼는 것이 정당한가? 이 책에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한 혜택이 그로 말미암은 손실보다 더 큰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면서, 성장이 번영을 이루는 데 필수요소라는 가정이 옳은지 꼼꼼히 따져볼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성장 없는 번영은 과연 가능한가?--- p.34
성장이 자원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이 책이 가장 중요하게 삼고 있는 주제다. 경제위기가 이와 관계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무책임의 시대는 우리가 오랜 기간 물질계의 한계를 눈여겨보지 못했음을 증명해준다. 이런 무책임함은 우리에게 천연자원을 보호하고 생태계 파괴를 줄일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무능력 때문에 금융시장을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생태부채는 금융부채만큼이나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 두 가지 부채는 끊임없는 소비성장 추구에서 온전히 고려되지 않았다. 우리는 경제성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대처하기 어려운 금융부채와 생태부채를 암묵적으로 방기하고 나아가 추구해왔으며, 그러면서 그 것이 안전을 확보하고 붕괴를 막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전혀 지속적이지 않았다. 금융위기는 그것이 단기적으로도 지속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pp.54-55
효율성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기후를 안정화시키거나 자원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가정은 망상이나 다를 바 없다. 성장의 딜레마에서 탈출하는 길로서 디커플링을 장려하는 사람들은 역사적인 근거와 성장의 기본 셈법을 더욱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 자원효율성 제고, 재생가능 에너지의 활용과 자원처리량의 감소는 모두 경제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장에서 분석한 결과는 탄소 배출의 ‘대폭적인’ 감축과 자원절감이 시장경제 구조에 맞서지 않고도 달성될 수 있다는 가정은 공상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p.116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토대로 우리는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도전이 필요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전에 직면하여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경제구조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7장과 8장 참조)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또한 실패하고 있는 시스템에 우리를 옭아매려는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 특히 유해한 소비 지상주의의 논리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변화(가치, 생활양식, 사회구조의 변화)의 기회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기존의 성장 시스템에서 우리 스스로를 ‘탈출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고, 자원처리량의 증대를 부추기는 신상품의 끊임없는 흐름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리하면 분명 생태와 사회의 한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번영할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136
새로운 경제를 어떤 모습으로 생각하든지 간에, 인간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고용이 이루어지고, 저탄소 경제활동이 그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 점만은 분명하다. 사실 그러한 경제를 위한 씨앗은 지역 또는 공동체 기반의 사회적 기업에 이미 심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지역사회 에너지 계획, 가까운 농촌과 연계한 직거래 장터, 슬로푸드 협동조합, 스포츠클럽, 도서관, 지역사회 건강 · 운동 센터, 지역 수리 및 정비 서비스, 마을공방, 창작교실, 수상 스포츠, 지역 문화센터, 지역 기능훈련소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요가(또는 무술이나 명상)나 미용, 정원 가꾸기 관련 일도 그에 포함될 수 있다.--- p.170
이 장의 목적은 새로운 생태거시경제학이 반드시 필요할 뿐 아니라 실현 가능함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 출발점은 영구적인 소비증가가 경제안정화의 유일한 토대가 된다는 가설을 버리고, 지속가능한 경제의 기본 조건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 조건 역시 경제안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요구를 담아야 한다. 이 요구란 아마도 ‘회복력’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경제는 침체기 동안 혼란을 초래하는 내적인 모순을 극복하고 외부 충격에도 저항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회복력은 사람들의 생활에 안정성을 보장하고, 공평한 분배를 확실히 실행하며, 자원처리량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을 보존하는 것을 전제로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p.183
소비주의의 사회논리를 바꾸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구조 변화를 중심 전략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첫째는 지속 불가능한(그리고 비생산적인) 지위 경쟁으로 사람들을 내모는, 뒤틀린 자극을 바로잡는 것이다. 둘째는 사람들에게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새로운 구조, 특히 덜 물질적인 방식으로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p.198
지속가능한 번영을 이루는 일은 특정한 한계 안에서 사람들에게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 한계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지구 생태계와 자원의 유한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적 자원에 대한 우리의 끝없는 욕구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번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당위이다. 변화를 위한 두 가지 핵심요소는 이미 밝힌 바 있다. 그 첫 번째는 경제학을 재정립해 새로운 생태거시경제학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p.203
정부의 주요 역할은 장기적으로 중요한 공공재가 단기적인 사적 이익에 의해 침식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역설적인데다 심지어는 비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전 세계의 정부 특히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정부들은 고삐 풀린 소비의 자유를 옹호하고, 소비자 주권을 사회적 목표보다 더 높이 떠받치고, 다양한 삶의 영역까지 시장이 팽창하도록 하는 데 너무나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p.214
이 점 하나는 분명하다. 지금이 바로 선진국 정부들이 이런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더욱 광범위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 말이다. 또한 경제적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 행동을 전개시키기에도 매우 좋은 기회다. 이러한 과정의 시작은 자국의 재정과 생태적 건강성을 향상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한 우리를 비생산적인 지위 경쟁에 몰아넣는 뒤틀린 동기부여와 사회논리를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결국 더 이상 끊임없는 소비성장에 기초를 두지 않는, 탄력 있고 지속가능한 거시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전해준 가장 분명한 교훈은 현재의 경제성장 모델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성장 없는 번영은 더는 불가능한 유토피아의 꿈이 아니다. 그것은 재정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필연인 것이다.--- pp.236-237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은 미래의 문제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열대우림의 소실 역시 ‘아직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극심한 빈곤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문제로만 비쳐질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서 미래를(그리고 우리보다 운이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것이 저 멀리 떨어져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번영에 대한 전망은 침식되고 만다. 더욱 직접적인 위기에 직면한 우리의 과제는 개인을 변화시키고 사회와 제도를 재편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번영을 새롭게 구축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굼뜨거나 주춤하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겠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이미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p.245
번영은 음식과 주거의 충족을 넘어서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능력, 삶의 의미와 목적을 공유하는 능력, 이상을 추구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물질적 수단을 통해 이런 목표를 추구하는 데 익숙해져 왔다. 그러한 속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이 변화를 위한 기초다.--- p.245
진보는 결정적으로 믿음직스러운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 달려 있다. 이 대안은 덜 물질적인 방법으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사회 차원에서 이것은 물질적, 재정적, 심리적 능력을 키우기 위한 재투자를 뜻한다. 특히 공공재 개념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공공장소, 공공기관, 공동의 목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되살려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목표와 자산, 사회 기반시설에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그다지 실속 없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녹지 공간, 공원, 여가활용시설, 운동시설, 도서관, 박물관, 대중교통, 지역시장, 명상센터, 축제 등은 새로운 사회참여의 기대와 가능성을 높이는 구성요소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대다수가 공공서비스는 이런 필요들을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한정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p.246
성장이 물질적 유토피아를 꽃피게 할 것이라는 희망을 지닌 사람들은 결국엔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생태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번 세기 말에 이르면, 우리의 아이들과 또 그 아이들은 기후악화, 자원고갈, 거주지 파괴, 종의 멸종, 식량 부족, 대규모 이주와 전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하고 현실적인 선택은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사회를 형성하는 구조와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해 더욱 신뢰할 만한 전망을 세워야 한다.--- p.259
이 과업은 개인 차원의 것이기도 하고 사회 차원의 것이기도 하다. 개인이나 공동체에 기반을 둔 활동의 잠재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변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 우리가 여행하는 방식, 우리가 돈을 투자하는 곳, 우리가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식 등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 변화는 우리의 일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지도자들에게 가하는 민주적인 압력과 투표를 통해서도 이룰 수 있다. 또한 변화는 풀뿌리 자치운동과 공동체 참여를 통해서도 이룰 수 있다. 개인의 자발적인 간소함 추구 역시 중요하다.--- p.259
사회 차원에서 구조의 변화는 필수다. 이 책은 그 과제를 이루기 위한 세 가지 구체적인 차원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째, 우리는 인간 활동에 대해 생태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성장 지상주의의 경제학을 바로잡아야 한다. 마지막 셋째, 우리는 파괴적인 소비주의 사회논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 p.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