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해에서 출생했다.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로 수년간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공부하고 있다.
편자 : 김소정
서울에서 출생했다. 단국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수년간 사회 선생님으로 근무했다. 현재 우리문화와 역사를 중심으로 한 체험학습 선생님으로 있으면서 어린이를 비롯해 청소년들을 위한 역사책을 집필하고 있다. 공저로 《손에 잡히는 사회 교과서-관혼상제》, 《손에 잡히는 사회 교과서-세시풍속》, 《손에 잡히는 사회 교과서-의식주》가 있다.
감수 : 구학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강릉원주대 인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이야기 세계사 2》가 있으며, 공역으로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독일사의 제국면》, 《바이마르 공화국》, 《인물로 본 문화》 등이 있다.
농경은 인간의 식생활, 먹을 것을 조달하는 방식에 대한 변화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인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농경은 정착 생활을 가능하게 했고, 촌락을 형성시켰으며, 각종 도구를 발전시켰다. 집단생활과 잉여생산물은 계급과 사회를 분화시키고, 사유재산 개념을 생겨나게 했으며, 집단 간의 갈등을 야기하여 전쟁 활동을 불러일으켰다. 고든 차일드는 농경 생활이 인류의 문명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라고 보고 이를 ‘신석기 혁명’이라 일컬었다. 인류가 처음 어떻게 농사를 짓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가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자연발견설이다. 고든 차일드를 비롯한 초기 학자들은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해 인간이 우연한 계기에 자연스럽게 농경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건조해지자 인류는 물을 찾아 사막의 오아시스로 이동했다. 오아시스에 도달한 인류는 물도 풍부하지만 그곳에서 보리와 밀처럼 자생하는 식물에 주목했다. 이처럼 농경은 우연한 기회에 ‘발견’된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인류가 산양과 염소, 소처럼 무리를 지어 사는 짐승을 기르면서 농사를 짓는 데 익숙해졌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인구 증가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인류학자 리처드 리를 비롯한 선택설 지지자들은 초기 인류가 수렵과 채집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한 환경에서 지내다가 기온이 상승하고 먹을거리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했을 것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자연적으로 돋아난 열매를 ‘채집’하는 것만으로는 그 많은 인구가 먹고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원전 8000년경ㆍ농경의 시작 중에서
1859년 《종種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이 세상에 등장했다. 저자는 영국의 박물학자 찰스 다윈. 이 책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간이 원숭이에서부터 진화하여 오늘날의 인류가 되었다는 주장, 즉 진화론이 처음 제기된 것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의 갈등은 지금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사법사상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원숭이 재판’도 진화론과 창조론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었다. 1925년 미국 남부의 테네시 주 의회가 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4세의 생물교사 존 스콥스가 이 법에 도전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진화론을 다룬 교과서를 교실에 들여왔고, 결국 법정에 섰다. 원고와 피고는 모두 거물이었다. 검사는 두 번이나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지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전 국무장관, 변호인은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변호사로 불리는 클라렌스 대로였다. 대로는 신이 세상을 6일 만에 만들었다면 태양이 없었을 때 하루를 어떻게 계산할 수 있었는가, 이브는 정말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는가 같은 질문으로 창조론의 과학적 허점들을 폭로했다. 스콥스는 결국 1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근래 창조론자들은 창조론의 새로운 버전인 ‘지적설계론’을 제기하면서 논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고 있다. 지적설계론은 기독교의 신을 직접 가리키지는 않지만, 복잡하고 신비로운 우주는 고도의 ‘지적 존재’가 창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1859년ㆍ다윈의 종의 기원 중에서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은 더 안전해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미국은 속시원히 ‘그렇다’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슬람의 반미 정서는 9·11 테러 이전보다도 심각해졌다. 일부 강경 세력으로 구성된 무장 단체들에 의해 자행되던 조직적 테러는 이제 평범한 임신부나 어린아이가 폭탄을 둘러메고 목숨을 던지며 벌이는 일상적 테러로 바뀌었다. 미국인들은 언제 어디서 테러가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 전전긍긍하는 ‘테러 노이로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9·11 테러가 벌어졌던 세계무역센터 자리(그라운드 제로)에는 어느새 쌍둥이 빌딩보다 더 크고 위풍당당한 새 빌딩이 세워지고 있다. ‘프리덤 타워’로 불리는 이 건물은 테러에도 굴하지 않는 ‘초강대국 미국’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그라운드 제로에 새 건물이 들어선다고 해서 새 세상이 열리지는 않는다. 미국을 겨냥한 테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가 고스란히 남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민중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불안하다. 그럼에도 미국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또 어떤 전쟁이 어떤 민족에게 닥칠지는 알 수 없다. 두 번의 천 년하고도 다시 십수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여전히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