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 위주였던 한 공기업 강의 때의 일이다. 50대의 김모 씨가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우리 어머니와 열 살 때 헤어졌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우리 3남매를 기르며 어렵게 사셨다. 어느 날, 어머니는 우리를 이모한테 맡기고 집에서 일하던 박씨 아저씨를 따라갔다…. 사람들은 ‘머슴 따라 도망갔다’고 했다. 우리는 부모 없는 셈 치고 자랐다. 13년 전에, 어머니를 만났다. 30년 만에 만난 것이다. 어머니는 그새 박씨 아저씨 자식 셋을 더 낳으셨다.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명절 때 오가기도 하면서 우리는 지금 형제처럼 지낸다. 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그의 동료들이 놀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모 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의 글을 다 읽고 나서는 오히려 “속 시원하다”고 했다.
도대체 왜 우리는 가로 210밀리미터, 세로 297밀리미터의 흰 종이의 마력에 그렇게 쉽게 항복하고 마는 것일까? 왜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은폐했던 속내를 그렇게 가볍게 뱉어내고야 마는 것일까? 왜 우리는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지난 시간을 한꺼번에 분출하고는 또 그토록 통쾌해하는 것일까?
글쓰기는 그런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숨겨왔던 과거를 한순간에 털어놓게 만든다. 진정성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 일대일로 만나는 행위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자신은 속일 수 없다. 속일 필요도 없고 속여서도 안 된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람은 사기꾼이지만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유령이거나 신이다. 인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마누라는 속여도 글은 못 속인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0년 서울에 사는 30세에서 45세 사이 남녀 중 대학(2년제 포함)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67퍼센트였다. 40대 중년 남성의 평균 학력 역시 대학 중퇴 이상이다. 학력이 부족해서 글을 쓰지 못하는 시대가 아니란 말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우리가 배운 교육의 대부분은 뭔가를 쓰는 것이었다.
국어, 영어, 논문 같은 글쓰기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고 나면 독후감을 써야 하고 방학 때는 일기를 써야 하며 잘못을 하면 반성문을 썼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상사가 “어서 잘못했다 말해”라고 하지 않는다. “시말서 써”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기술하고 ‘추후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등등의 글로 끝낸다. 뭔가를 잘했을 때도 윗사람들은 “아주 잘했어. 잘한 것에 대해 이야기해봐”라고 하지 않는다. “훌륭해. 그럼 보고서 작성해서 올려”라고 말한다.
물론 내가 여기서 말하는 글쓰기는 시말서나 반성문 혹은 보고서를 뜻하는 게 아니다. 실용적인 목적을 갖지 않는 순수한 글쓰기를 말하는 거다. 뭐가 ‘순수한’ 글쓰기냐고?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당당한 글쓰기, 아랫사람의 험담을 들을 필요 없는 고유한 글쓰기, 마누라나 남편한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비밀스런 글쓰기, 자식이나 부모 걱정 따위는 포함되지 않는 나만의 글쓰기…. 이런 게 순수한 글쓰기다. 세상의 이익이나 타인의 시선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기에 순수하며 순수하기에 자유롭고 자유롭기에 독특한, 그런 글쓰기 말이다. ---「나 같은 사람이 글은 무슨」
좋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의 차이는 기본적인 것에서 나온다. 생각해보라. 글을 쓰면서 문장 부호 따위(!)에 신경을 써본 적이 있는지. 윌리엄 스트렁크 교수가 제시한 영어 글쓰기의 기본 규칙 열여덟 개 중 다섯 개는 콤마 사용에 대한 것이다. 나머지 규칙 중 한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 문장의 생명은 간결함이다. 불필요한 단어는 생략하라.
* 작문의 단위는 단락이다. 한 단락에 하나의 화제만을 다뤄라.
* 수동태보다는 능동태를 이용하라.
만약 여러분이 문장 부호를 제대로 쓰고, 위에 쓴 세 가지 법칙만 지킬 수 있다면 글쓰기는 완성된다. 저 중에 단 하나의 황금률을 고르라면 난 당연히 ‘간결하게 써라’를 택하겠다. 가장 아름다운 패션 중 하나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얼굴 중 하나는 민낯이다. 가장 진실한 사랑 중 하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 좋은 건 사랑하는 사람끼리 민낯인 채 아무것도 입지 않고 만나는 것이다. 잘 나가다 왜 이러지?)
글도 마찬가지다. 가장 좋은 글은 최소한만 표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서’나 ‘따라서’, ‘그러므로’, ‘그런데’ 같은 접속 부사 역시 자주 쓰지 않는 게 좋다. 더불어 작은따옴표(‘’)나 큰따옴표(“”) 같은 부호도 과도하게 쓰는 건 좋지 않다. 이런 원칙은 쓰면서 지키고, 수정하면서 되새겨야 한다. ---「무엇이든 연습은 필요하다」
이쯤 되면 여러분은 포기할지도 모른다. ‘글을 재미있게 쓰라고 하더니 글을 쓰려면 연습도 해야 하고, 참고서도 읽어야 하고,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라는 문법적 사항도 알아야 한다고? 아예 태권도 검은 띠를 따는 게 더 쉽겠다’고 생각할 거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모든 의미 있는 향유의 전제는 인내와 훈련이다. 골프든 기타든 등산이든 낚시든 즐기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기본 테크닉은 어느 정도 마스터해야 한다.
내 친구 종태는 캘러웨이와 타이틀리스트를 거쳐 미즈노 골프채에 안착했으나 여전히 100타수 언저리에서 머물고 있다. 프로한테 개인 지도를 받으라고 그렇게 말해도 듣지 않는다. 딱 세 번 강습을 받고는 제멋대로 치고 있다. 폼도 엉망이고(모든 스포츠의 기본은 폼!), 공의 방향이나 세기도 들쑥날쑥하다. 결국 종태는 OB의 늪에서 헤매더니 “아이언이 문제”라면서 새로운 골프채 수집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곧 골프에 흥미를 잃을 게 뻔하다(이 글을 쓰고 나서 책으로 엮기 위해 수정하기까지 3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다. 그 사이 종태가 전화를 했다. “골프를 끊었다”고).
등산은 어떻고? 나는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고 그저 산을 올라가면 그만인 줄 알았다. 1999년, 지인의 소개로 코오롱 등산학교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이런! 등산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배울 게 많았다. 배낭을 꾸리는 법부터 시작해서 응급처치, 독도법讀圖法, 텐트 치는 법, 암벽 등반을 위한 로프 사용법과 하강 기술까지…. 나는 처음에 침낭을 침낭 주머니에 넣는 법도 몰랐다. 아무리 접어도 동계용 침낭이 주머니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30분을 고민하고 있는데 강사 한 분이 내게 시범을 보였다.
“침낭은 마구 쑤셔 넣어야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무자비하게 쑤셔 넣으니 침낭이 침낭 주머니에 들어가더라. 그것도 배우지 않으면 모른다. 이렇게 6주 동안 등산에 대해 배우고 나니, 이전에 하던 등산과는 완전히 달랐다. 산에 대해 더 경외하게 되고 산을 오를 때 더 조심하게 됐다. 무엇보다 등산을 할 때 절대 무리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 때문에 내 생명이 아마도 몇 년은 연장되었으리라고 본다. 이는 배우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글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시간과 돈을 들여 배우는 만큼 글 실력이 는다는 데 무조건 한 표를 던진다. 최근 글쓰기 강좌가 많이 늘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글쓰기’를 치면 다양한 강사의 수많은 강의 정보가 뜬다. 어느 곳이든 찾아가서 배우길 바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럼에도 강의를 듣기에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해 혼자서 연습하는 방법도 알려주겠다. 가장 좋은 건 베껴 쓰기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작품(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다)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써보라. 베껴 쓰기가 글쓰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여기에서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사실 필자는 베껴 쓰기를 신봉해서 《베껴 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이라는 단행본도 낸 적이 있다. 이 책에는 안도현, 신경숙, 이지성을 비롯해 미국의 작가 에든 캐닌, 스티븐 골드베리 등이 “글을 쓰겠다는 사람은 선배 작가들의 글을 베껴 쓰는 과정이 필수”라고 주장하는 대목이 있다. 나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것저것 복잡할 땐 베껴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