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성 노인의 생애사는 ‘口述史’라기보다 ‘口述辭’다. ‘史’를 둘러싸고 사실 관계와 객관성을 시비할 수 있지만, ‘辭’는 주관성이 재료이자 힘이며, 인지와 기억이 왜곡될 가능성도 전제한다. 부분성과 주관성은 기록되지 않은 서사敍事, narrative들의 진실이자 실재다.--- p.15
그때 여자들 스무 살까지 시집을 안가면 ‘덴시따이’라구, 그래 그 정신대. 그거에 뽑혀나가니까 허겁지겁 시집들을 보낸 거야. 나도 곧 그 나이가 되는 거지. 그래서 덴시따이 뽑혀갈까봐 겁이 나 가지고, 허겁지겁 시집을 보낸 거야. 열여덟 때야. 아무리 급해도 혼인이니까 골라서 간다고 간 게, 시골로 갔어. 평양서 오십 리 정도 들어가는 시골이야. 외아들에 시어미만 있는 간단한 집으로, 골라 골라 보낸 거지. 내가 성격이 좀 쎄고 안 차분하니깐, 시집살이 안 할 거 같은 편한 집으로 고른 거지.--- pp.40-41
댄스홀 나가면서랑 미군들이랑 살면서, 애를 수도 없이 떼었어. 낳은 적은 없어. 생긴 거 같으면 병원 가서 진찰해서 떼구, 떼구 그랬지. 하나 있는 아들 키우기도 그렇게 힘든데, 아닌 말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애를 또 낳냐구? 더구나 혼혈아를. 살림하는 미군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가서 뗐어. 하긴 결혼할 작정한 그 싸진하고는 애를 낳을 생각을 했어. 근데 그 사람이 원래 자식이 둘 있어서 그런가, 좀 피하더라구. 같이 산 게 길지 않아서 그런가, 안 생겼어. 뱃속에서 죽은 것들한테야 그것도 생명인데 생각하면 불쌍하다 싶지만, 길게 보면 안 낳는 게 훨씬 나은 거지. 난 좀, 거기 여자들로는 나이가 든 축이었거든.--- p.78
지들 생각에 내 회개가 뭐겠어? 뻔~하지. 언젠가 아들이 나 붙들고 조용히 말도 하더라구. 미군 부대 근처에서 몸 함부로 굴린 거랑 낙태 많이 한 거랑 그런 거를 회개를 하래는 거야. 지랄을 하고 자빠졌어. 다른 회개래면 할 거 많아두, 난 그 회개는 안 나와. 나도 예수 믿지만, 난 그런 게 별루 죄라고 생각이 안 돼. 여자 혼자 벌어먹고 사느라 한 일인데, 내가 도둑질을 했어 살인을 했어? 그리고 그렇게 임신된 거를 다 낳았어 봐. 그걸 누가 책임지고 키울 거야? 거기서도 미군이랑 살림하던 여자들은 많이들 낳았어. 남자 붙잡아놓을래니까, 남자가 낳자 그러면 낳는 거지. 그러다가 백이믄 아흔 다섯은 남자 혼자 미국 들어가든가, 안 나타나든가 하구, 그 새끼는 여자 혼자 책임이 되는 거야. 그렇게 혼혈아 낳아서 많이들 결국에는 미국으로 입양 보내고 하는 거지. 붙들고 키운 사람들 보면, 어린 것들이 손가락질당해서 학교도 못 가고 직장도 못 다니고, 그러드라고. 나 하나로 끝나면 될 걸 왜 애까지 낳아서 그 설움을 또 만드냐구? 그걸 회개하라니 말이 돼?--- p.101
근데 약이 하도 독해서 뱃속 아그가 지워진다고들 하잖여. 그래서 아그를 죽일 수는 없응게, 그 약을 사다만 놓고 먹지를 않은겨. 아그 낳고 두 살이나 돼서 아직 친정 살 때 그 구전단을 썼어. 먹기도 하지만 태워서 연기를 쬐기도 하거든. 방에 들어가 문이란 문은 다 꽉꽉 막고는, 구전단을 화로에 넣고 불을 피워서, 그 연기를 코랑 목구멍으로 들이마시는데, 얼마나 독한지 입과 목이 나무통처럼 부어서 물도 못 넘기겠더랑게. 구전단이 얼마나 독하냐면 그게 살에 닿으면 살이 패여. 그려서 그걸 먹으려면, 구전단을 으깬 다음 밥에 싸서 씹지를 않고 삼키기도 했다니께. 그렇게 먹어도 몸서리치게 쓴 약이야. 그런데 그렇게 해도 부스럼이 낫지 않자 묘량서 순경질하던 큰오빠가 손가락만 한 페니실린 한 병을 가져와서 그걸 주사로 맞고는 입이랑 코 근방 곪은 살들이 쑥쑥 빠지고 떨어지면서 코 둔덕이 없어지더랑게. 당시 페니실린 한 병 값이 통보리 한 말 정도라고 그러드먼. 그때부터 콧구멍 하나만 이렇게 얼굴 가운데 흉터가 돼서 남고, 목젖도 없어진 거고 이도 빠지기 시작한 거여.--- p.133
맨 땅에 다 큰 여자 키 하나나 되게 땅을 파고, 위에다는 나무판하구 각목들을 얼기설기 얹고, 비닐을 씌우고 그 위에 까만 먹지 같은 걸 얹어. 그게 루핑이래는 거야. 그리고는 방이 어두우니까, 손바닥만 한 유리를 천장에 냈지. 밤에 잘 때 그 유리 천장으로 하늘을 보면 별이 다 보였어. 동상은 낮에는 한양공고에 수위로 나가고, 퇴근하고 와서는 나랑 동상댁이 낮에 주워다 놓은 나무토막이나 못대가리들로 밤새 그 땅굴집을 짓는 거여. 쉬는 날이면 하루 종일 거그 붙어 일을 혀서 집을 지은 거지. 그 화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쓰레기장이 있었어. 온갖 쓰레기는 다 버리는 곳인데, 그래도 그땐 비닐봉투 같은 게 별라 없어서 태워도 그리 독하진 않드만. 그 쓰레기장을 뒤져 쓸 만한 나무뿌시레기를 주워오고, 그 나무에서 못을 빼서 펴 갖고 다시 쓰고, 그렇게 해서 동상네 집 한 칸 우리 집 한 칸이 생긴 거지. 비록 땅굴집이지만 너무나 좋았어. 우리 집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pp.193-194
나 어려서부터 내 몸종이 따로 하나 있어서 늘 나를 챙겨주고 세수도 씻겨주고 그랬지. 세수하러 마당으로도 안 나가. 몸종이 놋쇠 대야에 세숫물 떠다 방으로 갖다 주고, 세수하는 동안 수건 받쳐 들고 있다가 건네주고 그랬어. ‘판동이’라는 머슴 이름도 기억나네. 아버지가 일 미터가 넘는 담뱃대를 길게 늘여 놋재떨이에 땅땅 재를 떨면서 “판동아~” 하고 크게 부르던 기억도 나. 아침에 “판동아~” 하고 부르는 그 소리가 어떻게 들리냐가 그날의 아버지 기분이었고, 또 그날의 집안 분위기였지. 그 소리가 고함 소리면 그날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하루가 지나갔어. 그래도 나는 막내딸이라서 그런 분위기랑 상관이 별로 없었지.--- p.245
인공 때랑 전쟁 때 우리는 한 집안에 우익 대장급하고 좌익 대장급이 한데 있는 거잖아. 속으로는 어쩐가 몰라도, 어쨌든 형제 간 우애는 좋았어. 아무래도 춘섭 오빠가 많이 서글펐겠지만, 그걸 마음에만 담지 밖으로 앙갚음을 할 사람은 아니니께. 그러니까 인민군 오면 춘섭 오빠가 나서서 막아주고, 국방군 오면 이번에는 균섭 오빠가 나서서 막아주고 해서, 우리는 어느 쪽으로도 별 피해가 없었어. 동네 사람들도 우리 아버지 덕 안 본 사람이 없응게, 지주 집이라고 해코지하는 사람도 없었지.--- p.272
그 약국 앞에 약국집 테레비를 내놓고 동네 사람들이 의자에 돗자리들까지 펴고 둘러앉고, 서고 해서 그걸 봤지. 그때는 세계 최초의 달나라 우주선이라고 난리들이 나서 테레비 장사가 아주 잘 됐지. 그 직전에 나는 내내 있던 테레비를 도둑을 맞았던 거야. 노량진 살 때부터 우리는 테레비가 있었어. 아마 서울 와서 얼마 안 되고부터 있었을 거다. 내가 보고 싶어서 일찍부터 산 거지. 테레비 도둑도 대여섯 번은 맞았을 거 같아. 생각해보면 어떤 거는 누가 가져갔는지 뻔한데, 내가 잡을 사람이 아니어서 안 잡은 거야. 그때 연속극들하고 노래들, 쑈프로들이 생각나네. 〈눈은 나리는데 산에도 들에도 나리는데〉, 〈사화산〉, 〈너도 사나이 나도 사나이 우리는 사나이다〉, 〈태양은 늙지 않는다〉, 〈아씨〉, 〈조선노동당〉……. 한번은 뭔 특집방송을 보는 중에 자막으로 “오늘 노동당은 쉽니다”라고 나왔는데 애들이랑 그 자막을 보고는 한바탕 웃었지.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사회 보는 〈쇼쇼쇼〉를 하는 토요일 두 시면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모여 와서 그걸 보고 가기도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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