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3년 1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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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0쪽 | 370g | 133*200*30mm |
ISBN13 | 9788954622905 |
ISBN10 | 8954622909 |
발행일 | 2013년 1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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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0쪽 | 370g | 133*200*30mm |
ISBN13 | 9788954622905 |
ISBN10 | 8954622909 |
벚꽃 새해 ‥‥‥창작과비평, 2013 여름 깊은 밤, 기린의 말 ‥‥‥문학의문학, 2010 가을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자음과모음, 2010 겨울 일기예보의 기법 ‥‥‥문학동네, 2010 겨울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세계의문학, 2012 봄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문학과사회, 2012 여름 동욱 ‥‥‥실천문학, 2013 봄 우는 시늉을 하네 ‥‥‥문예중앙 2013 봄 파주로 ‥‥‥21세기문학, 2013 여름 인구가 나다 ‥‥‥현대문학, 2011 2월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자음과모음, 2008 가을 _제33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
분명 우리에게는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다. 반면 비루하기 짝이 없는 고행의 시절도 겪어본다. 그러나 모든 시절이 지나고 나면 세월의 더께를 한 겹 두 겹 덧입는 것처럼 추억의 시절로 남기 마련이다. 김연수가 그런 소설을 쓴다. 아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시절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말(이야기)'을 통해 누구나 기억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는 열쇠공 같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 시절'로 회귀한다. 1988, 1993, 1999... 등등. 오래돼 기억 부스러기만 희미하게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떠올리다 보면 기억나는 게 신기하다. 아니 사실 나는 기억력이 좋다. 특히 유년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연하다. 흑백의 무채색 화면이 아니라 형형색색으로 차려입은 컬러텔레비전을 보고있는 것처럼 역동적으로 눈 앞에 펼쳐진다. 반면 20살 그즈음의 기억은 운무가 끼인 것처럼 흐릿하다. 삶이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은 그런 게 당연히 없었다. 삶이 그저 신기하고 세상은 다채롭고 다층적인 변주로 가득한 보물 상자 같았을 때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인생이란 아니 삶이란, 비슷비슷해 보여도 저마다의 색을 빛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수 작가가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는 흔하지 않았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유부남 감독과의 제주도로의 도피 행각을 벌였던 이모의 사랑 이야기, 깊은 밤 터널에서 울려오는 엄마의 노랫소리를 찾아가는 남매 이야기, UFO의 출현이라 믿어의심치 않았던 세 개의 빛을 통해 찬란했던, 그러나 보지 못한 내 시절을 회상하는 이들과 각자에게는 각자의 상실과 삶의 길이 정립돼있다는 걸 읊조리는 이야기들 속에서 유유자적 헤엄치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언젠가 하게 될 이야기, 꼭 해야만 하는 나와 너 우리의 이야기, 가 있는 11편의 삶의 색채가 돋보이는 단편집이었다. 특히 중반쯤 읽어갔을 때는 또 어떤 사람이 누구의 이야기를 들려줄까, 같은 기다림이 잊고 있었던 '설렘'을 한입 베어 물은 것처럼 기분 좋았다. 김연수의 글은 김연수만의 서정미와 잔잔함이 있다. 나는 매번 착각한다. 곱상한 중년 남자 작가가 아닌 나와 같은 여자의 감성을 지닌 여자 작가의 글을 읽고 있다는 착각.
저자의 팬은 아니지만, 그의 글이 참 예쁘다, 라는 건 공감한다. 내 착각은 그것에서 기인하는 것일 테고. 그래서 저자의 글을 읽을 때면 감성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겨울의 스산함에 잠식돼있는 상태를 녹여주는 글의 힘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까. 대중 소설이 대개 그러하듯 밝은 주제나 소재보다 반대인 경우가 많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담겨있는 11편의 단편도 결코 밝은 분위기의 글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김연수라는 사람은 말의 세기, 그러니까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 같다. 아프고 슬프고 남루하며 애처롭지만 그것을 감싸줄 탈출구 하나쯤은 만들어두는 인정이 있다고 해야 하나. 결말이 해피냐 새드냐를 논하는 건 아니다. 분명 새드엔딩임에도 심하게 슬프거나 아프지 않은, 아름답다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앞서 말한 '탈출구'라는 것 덕분이다. 그가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우리'가 탈출구라는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어쩌면 그래서 그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기운을 발산해내는 힘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구나. 마치 모래로 쌓은 성처럼-284쪽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라는 사실, 그것.
운명의 공동체로 맺어진 '우리'사이에 인연도 존재하는 거라 믿는다. 김연수 그가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가 토로하면서도 변함없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것. 맞다. 무자비하고 잔인한 세상이든, 얼마나 힘겹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삶의 면면은 그렇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니 중요하지 않은 거라고 믿어버리자. 반대가 되어버리면 정말 삶이 힘겨워지니까. 소설이라는 게 삶에 있어 아무 효용이 없다, 라고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모든 진실을 잊었을 때마다 시시때때로 상기시킬 힘!, 그것이 소설이 가진 미덕이 아닐까. 힘들 때 의지하고 일어설 수 있는 건 거창한 것으로부터가 아니다. 한 단어, 한 줄의 문장으로라도 어떤 이는 삶의 전환점을, 순간의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기에, 그런 사람들을 위해,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나는 책(소설)을 읽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진실은 보이지 않는 법이라 해도 드러나는 것과 꼭꼭 숨겨두는 건 엄연히 차이가 있다. 진심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로 끝날 게 아니라 '말'해야 확실히 아는 법이다. 말보다 침묵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적재적소,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 말이 필요한 때, 침묵이 필요한 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합한 소설이 필요한 때-삶의 허기를 채워줄, 고단함을 상쇄할 의미 있는 활자의 나열들,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함께라는 사실, 그것으로부터 잉태되는 삶의 견고한 진실이 아닌가 한다. 미와 솔의 음계, 높낮이 사이의 어딘가, 미세하고도 명징한 소리의 차이점을 분명 인지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 사월과 칠월의 빗소리에 좀 더 귀 기울여야겠다 생각한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 같다. 추운 겨울이 싫어서가 아니라 빨리 그 계절, 그달의 빗소리가 듣고 싶어서 어서 4월이 왔으면 싶다. 1년이 가는 건 싫지만, 흩어지는 나날들 속에서 새롭게 응집될 날들도 있을 테니까, 함석지붕 대신 땅의 표피를 건드리고 튕겨 올라오는 빗방울의 역동과 빗소리를 어서 보고, 듣고 싶다. 김연수라는 작가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가 김연수의 소설을 굉장히 좋아했다. 책을 많이 읽는 분이시라 그 분이 읽은 책을 눈여겨 보고 있다가 그 분이 소개하신 책을 자주 골라 읽곤 했는데, 처음 김연수 작가를 알게 된것도 그 작가님의 영향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글을 처음 만난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었다. 굉장한 호기심으로 만난 김연수 작가의 그 책은 사실 아주 재미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작품 보다는 재미를 따지는 내 독서습관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읽은 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과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었다. 이 모두 작가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나 스스로 '김연수 작가 알기' 일환으로 읽은 책들이다.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아주 감동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인가 이렇게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책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만났다. 예판이 떴을때부터 제목과 함께 표지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리고 친필사인본에 눈이 멀어 구입하게 된 책이다. 책을 받았을때 소설집이라는 문구에 아,, 장편 소설이 아니구나 했었다. 평소에 장편소설을 선호하는 내게, 읽을 책 목록에서 한 권쯤 아래로 내려간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왜 한 권 아래로 미뤄놓았었나 후회가 된 책이었다. 굉장히 아름다운 언어로 쓰여진 책으로 작가가 말하는 모든 글들이 마음속에 들어왔다. 그의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마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마음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소설은 총 11편의 단편으로 되어 있었고, 나는 이 11편의 단편 중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을 먼저 읽었었고, 이번에 다시 읽는데, 처음에 읽었던 느낌과는 아주 달랐다. 불면의 밤을 보내는게 너무 힘들어 Y씨가 했던 대로 산책을 하며 즐거움을 찾게 된다는 내용인데, 우울증이나 불면증이 있는 사람에게 산책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나도 경험한 바이고, 어느 영화에서도 나왔던 이야기이다. 혼자 하는 산책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산책이 마음속 이야기를 하게 되고, 걷는 기쁨이 커 저절로 불면증이 사라질 수도 있다. 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내게 일주일에 세 번의 요가가 숙면을 취하게 해주듯 말이다.
책 속에서 내가 읽었던 책을 발견하는 느낌 또한 굉장한 즐거움이다.
더군다나 읽은 책이 좋아, 주변 사람에게 소개하는 책일 경우에는 그 느낌이 배가 된다. 김연수 작가는 「우는 시늉을 하네」에서 보면, 내가 2012년에 읽었던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을 말한다. 만약에 읽지 않았다면 찾아 읽을 정도로 책 속에서 『늦여름』은 그들을 이어주는 커다란 매개체이다. 아버지가 친어머니와 다시 화해하고자 했을때, 어머니가 묵었던 방에서 밤새워 읽었던 책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열차에서 읽었던 책이다. 오래전에 아버지가 읽었던 책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아들이 다시 읽으며 그때의 감정들,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보이지 않는 길, 잡히지 않는 손 ..... 우주는 한없이 넓다고 했으니 어딘가에는 그런 것들로만 이뤄진 세계도 분명히 존재하리라. 그런 곳에서는 보이는 길은 우리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못하리니, 그런 곳에서는 모두들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망하는 곳에 이르리라. 심지어 우리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만약 우리가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잡히지 않는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55페이지, 「깊은 밤, 기린의 말」 중에서)
위 인용글에서처럼 김연수 작가의 문장이 좋아졌다.
내가 작가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인지, 이제 어느 정도 작가의 글에 적응이 되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느껴졌던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글이 조금은 달라졌든지, 그건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그의 단편들이 너무 좋다는 사실이다. 새삼 그의 단편을 즐겁게 읽는 나의 모습을 즐기고도 있었다.
이 글의 표제작이기도 한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보면, 제목이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빗소리를 음계로 표현한 이 문장 말이다. 처음엔 애인이었고 현재는 아내인 진경과 함께 들렀던 미국의 이모, 한때 배우이기도 했던 차정신이자 파멜라 차인 이모를 만나러 갔던 곳에서, 오래전에 영화를 찍은 감독과 함께 제주 서귀포시 정방동 함석지붕에서 3개월 남짓 살았던 이야기를 들었다. 함석지붕을 때린 빗소리가 사월엔 미 정도 였다가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갔던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시詩적이다. 어쩌면 빗소리를 음계로 표현했을까. 나도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하고 빗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차암 아름다운 문장이다.
김연수 작가가 이번에 건네는 열한 편의 말들은 저마다의 음색을 지니고 있다.
때로는 엄마의 말로, 누나의 말로, 오빠의 말로, 혹은 나의 말로 이야기를 조곤조곤 건넨다. 강아지 이름을 '기린'이라고 지어주었던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많은 모습들을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프랑스 말로 된 노래,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밤중 열두시가 넘은 시각에 안산으로 가는 터널을 몇 바퀴나 돌았던 일들, 전 담임 교사가 학생 동욱을 바라보는 일들까지. 책 속의 '나'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언제부턴가는 제대로 구분하지도 않게 되었다.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떤가. '나'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뿐.
책을 읽는 방법이 바뀌고 있다.
전엔 재미 위주의 책을 읽었다면 요즘엔 문장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깊은 내면을 알아내고자 한다. 새삼 그런 책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단편만이 가지는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도 되었다. 김연수의 이 책 또한 그렇다. 단편이 이렇게도 마음에 들어오는 일임을 깨달았다.
비가 내리고 있다. 4월의 봄비가 촉촉히...
창밖 베란다의 홈통을 통해 내려가는 빗소리를 들으면 아.. 비가 많이 내리고 있구나,,, 아니면 조금 오다가 그칠 비구나.. 등등을 예상할수 있다. 오늘같은 봄밤 제법 소리 굵게 많이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벌써 그쳐가고 있는 듯한.. 그런 비오는 밤이다.
예전에는 비가 오면 웬지 눅눅하고 개운치 못해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고 눈이 오면 그저 좋아라..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비내리는 모습을..그 소리를..그리고 그 분위기를.. 즐기게 되고 눈이 오면 그 이후의 지저분함 같은 것들때문에 꺼리게 되는 나를 보게 된다.
비에는 항상 소리가 동반한다. 눈은 고요함의 대명사인 듯 하다.. 어느새 수북히 쌓이는..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는 소리. 창문을 때리는 소리. 지붕위에 내리는 소리.. 그리고 베란다 홈통을 흘러내리는 소리등등등... 그러나 제일 좋은 건 정말 함석지붕을 때리는 경쾌한 그 빗소리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비 얘기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책의 제목때문이다.
사월의 미. 시월의 솔.. 처음에는 이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몰랐다. 그저 어감이 좋았고 계절을 음계와 연관시켰다는 신선함이 눈을 끌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그것이 바로 빗소리.. 그것도 함석지붕위에 떨어지는 빗소리임을 알게 되었다..
함석지붕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p81)
좋아하는 빗소리를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함석지붕을 때리는 빗방울처럼 그의 이야기들이 내 맘을 때리는.. 그런 책읽기를 할 수 있었다.
김연수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집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란 단편이었다. 처음에 읽으면서 화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잘 모르겠고 현실과 인용하는 이야기의 구분도 잘 모르겠고.. 참 힘들다.. 라는 생각을 했지만 웬지 한 번 읽고 그냥 넘겨버릴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에 두번 세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았던 작가와 작품이었는데 얼마후 <달로 간 코메디언>이라는 작품으로 수상을 했기에 얼른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그렇게 그의 단편에 매료(?)가 되었다고나 할가.. 그래서 그의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 >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순서대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의 장편도 읽었지만 웬지 처음 그 단편의 강렬함때문이었는지 지금까지도 김연수의 장편보다는 단편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그 후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되도록이면 꼭 읽어보았는데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좀 난해하고 이전의 책만큼 잘 읽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읽게 된 장편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통해 그의 장편의 새로운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랫만에 다시 읽게 된 그의 단편집 <사월의 미. 시월의 솔>
나는 웬지 이 책을 읽으면서 어깨에 힘을 쫙 빼고 그렇게 편안하게 글들을 대할 수가 있었다.
아마 작가도 이전보다 힘을 빼고 편안한 글쓰기를 하지 않았을까 ..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이 책에 실려있는 11편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나 책을 배경으로 했던 이전의 글들보다는 좀더 인간적이고 더 친밀하다는 생각을 했다.
각각 이야기들의 에피소드들을 정말 기발하고 재미가 있다.
헤어진 여친으로부터 선물 받은 테그호이어 시계를 돌려달라는 문자를 받는 남자 이미 처분해 버린 그 시계를 찾기 위해 전여친이 되어버린 그녀와 황학동 골동품거리를 거니는 연인들..
기린이라는 눈이 보이지 않는 강아지와 자폐를 앓고 있는 내 동생 태호와의 교감
장래희망이 미국인 마누라였던 이모를 만나고 그 후 이모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조카
대보름날이 생신인 어머니와 해마다 온 식구가 보름달을 보러 산으로 올라는 가족
주쌩뚜디피니.. 라고 노래를 부르시던 엄마의 음성을 듣기 위해 안산의 터널을 4번이나 왕복하는 남매
암병동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도중에 만난 노작가와의 인연 그리고 그가 남겨준 마지막 원고..
연쇄방화범이라는 죄명으로 구속된 제자 동욱, 그리고 그들의 순진과 동심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를 끝까지 생각해주고 싶었던 교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혼한 어머니를 찾아가 예전 아버지와 함께 엄마를 찾아왔었던.. 그리고 그때 아버지가 엄마를 기다리며 읽으셨던 책 <늦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자..
바이얼린을 팔기 위해 가져온 천재 소년 바이얼리니스트와 그 바이얼린에 대한 옛사랑의 흔적을 생각하는 남자..
이런 에피소드와 인물들을 통해 엄마의 사랑을. 아빠의 존재감을, 따뜻함을.. 위로를 ..희망을.. 그리고 애뜻함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이러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느끼게 되는 것들은 생소하거나 의외인 것들이 아니다. 공감했던 것 그렇지만 뭐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이렇게 대신 이야기로 해주는 것이 바로 소설인 듯 하다.
점점 봄이 짧아지고 있어서 이러다가 바로 여름으로 넘어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아쉬움이 단편을 읽는 여운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 이야기가 끝나고 그들의 이야기들이 남긴 여운을 잠깐 생각해보고 그 다음 이야기를 펼치면
또 다른 이들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몇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 새 한 권의 책이 마무리가 된다. 각자 다른 이야기였지만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평범한.. 그렇기에 맘에 와 닿는 공통분모가 있는 듯한 이야기들이 작가 특유의 문장들과 표현기법과 어우러져 읽는 내내 사월의 빗소리를 생각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자신이 쓰는 소설은 아름다워야만 했다.. 고 생각했던 작가.. 그의 생각대로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다웠고
앞으로도 함께 먼나먼 지평선의 반짝임을 보며 천천히 나아가는 그 시간들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