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나는 내 관점이 아닌 주님의 관점으로 말씀을 읽고 큐티를 하는 시간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은 무엇일까를 더 깊게 생각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만나를 주워 먹다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몰랐는지, 내가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오해했는지 깨달아지면서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생각지 못했던 회개가 쏟아져 나왔다.
--- p.14
사탄은 우리가 스스로를 더 사랑하도록 유혹한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 자랑하는 것, 교만한 것, 비방하는 것, 부모를 거역하는 것, 감사하지 않는 것, 거룩하지 않는 것, 무정한 것, 원통함을 풀지 않는 것, 모함하는 것, 사나운 것,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배신하는 것, 조급하며 자만한 것, 쾌락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생긴 현상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아침 우리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시는 주님,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한다.
--- p.27
결혼을 앞둔 아이가 암에 걸려 2년 만에 하늘나라에 갔을 때, 나는 정말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많은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모든 일이 내 잘못 같았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팔자가 세서 자식을 앞세웠다고 쑥덕거렸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죽고 싶었다. 주님께 수없이 많은 질문을 드렸다.
“왜 아이가 그런 병에 걸렸나요? 왜 아이를 데려가셨나요? 왜 내 삶에 이런 일이 생겼나요?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그렇게 큐티하기를 1년, 주님은 생각지도 않았던 본문 말씀으로 내 질문에 답해 주셨다. 왜 아이가 병에 걸려야 했는지, 왜 아이를 데려가셨는지, 왜 내 삶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까지 말씀해 주셨다.
--- pp.45~46
사람이 많은 백화점이나 놀이공원 같은 곳에서 자녀를 잃어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찾을까. 찾아도 그만, 안 찾아도 그만일까? 절대 아니다. 아이를 못 찾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찾는다. 큐티도 그렇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아이를 찾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야 한다. 나는 처음 이 말씀을 읽으면서 “간절히”라는 단어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주님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주님은 그냥 무심한 마음으로 찾아서는 만날 수 없는 분이란 것을 알았다. 주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야 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큐티 본문을 읽어야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을 찾을 수 있고,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주님의 사랑을 입을 수 있다.
--- p.73
주님은 뒤늦게 기름을 구해 온 미련한 처녀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하신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주님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늦었지만, 그래도 기름을 구해 왔는데 너무 매몰차게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말씀을 똑똑히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알겠다. 이 미련한 처녀들은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라고 하면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다렸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주님이 모른다고 하신 거다. 성경은 내 마음대로 읽으면 안 된다. 내 생각대로 읽으면 안 된다.
--- p.154
“사실 나도 학교 다닐 때 교회에 나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사는 게 바빠서 교회를 다니지 않았는데, 오늘 손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제는 교회에 안 가면 더 버틸 수는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손님이 하는 말씀이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거든요.” 나는 너무 놀랐다.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새끼손가락을 기사님을 향해 내밀었다. “저와 꼭 교회에 나가겠다고 약속하실래요?” 기사님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새끼손가락을 나에게 내미셨다. 나는 얼른 택시 안에 있는 기사님의 이름을 보고, 앞으로 기사님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 p.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