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제 팽창하고 있는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봅시다. 은하들은 팽창이 아니라 서로 점점 가까워질 것입니다. 시간을 계속 거꾸로 돌린다면 결국 모든 은하가 한 점에 모이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요? 은하 자체도 수축하기 때문에 은하의 모든 별이 한 점에 모이는 순간, 별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입자가 한 점에 모이는 순간, 입자도 붕괴해서 물질이 사라지는 그 순간이 오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런 시점이 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태초太初, 우주 탄생의 순간, 바로 빅뱅이 일어나는 순간일 것입니다.우주의 모든 것이 한 점에 모인 순간은 매우 특이한 순간입니다. 이 점은 물질만 한 점에 모인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도 한 점에 모인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물질도 시간도 공간도 없이 모두 한 점이 되는 순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간, 공간, 물질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모든 것의 탄생, 바로 태초입니다.
--- p.22
과거는 지나갔으니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없고,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고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재일까요? 작년은 분명 과거입니다. 어제도 과거입니다. 1시간 전은? 물론 과거입니다. 1초 전은? 그것도 과거입니다. 0.000001초 전은? 너무 짧지만 역시 과거입니다. 0.000001초 후는? 그것은 미래입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현재’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시간으로 보면 현재의 시간 간격이란 0입니다. 없다는 말입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과거는 존재하나요?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니 사라진 것이어서 존재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미래는 아직 생기지도 않았으니 더욱 존재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과거나 미래는 물론 현재도 존재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요? 과거, 미래, 현재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니! 우리가 보고 만지는, 이 짜릿짜릿하게 느껴지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시간과 함께 휘발되어버리는 이 황당함을 어떻게 할까요?
--- pp.46~47
급팽창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급팽창은 끝없이 진행한다고 합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팽창이 급팽창입니다. 그렇다면 우주공간에서 우리의 빅뱅이 유일한 빅뱅일 수는 없습니다. 급팽창은 암흑 에너지라고 하는 급팽창 물질 때문입니다. 이 물질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물질도 결국은 붕괴할 것입니다. 방사능 붕괴에서 보듯이 모든 물질은 붕괴합니다. 즉 죽는다는 말입니다. 급팽창 물질이 붕괴하면 보통 물질이 생겨납니다. 빅뱅은 바로 이 급팽창 물질이 붕괴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급팽창 물질의 붕괴는 한 번만 일어날까요? 공간이 팽창하면서 급팽창 물질은 계속 생겨나지만 붕괴도 일어날 것입니다. 다만 붕괴하는 반감기(반으로 줄어드는 시간)보다 급팽창으로 생겨나는 배증기(두 배가 되는 시간)가 더 짧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급팽창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붕괴가 일어나는 곳에서 빅뱅이 시작된다면 이 우주에는 수없이 많은 빅뱅이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빅뱅은 계속될 것입니다.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한 공상과학 소설가가 소설을 쓴다고 해도 급팽창 우주와 같은 우주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현실 우주는 어떤 몽상가가 몽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공간입니다. 상상보다 관찰(물론 다중우주는 관찰의 결과가 아니라 계산의 결과이기는 하지만)의 결과가 더 신기한 것입니다. 이 우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세상입니다.
--- pp.154~156
창조론은 어떤가요? 창조론은 진화론과는 달리 틀릴 수가 없습니다. 틀려서는 안 되는 이론입니다. 창조론은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과정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론은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자는 어떤 고정관념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창조론은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과학이 아닙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신god’을 도입하는 순간, 그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신은 모든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한 만병통치약입니다. 신이 했다고 하면 어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전지전능한 존재가 신인데 신이 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을까요? 신이라는 존재를 가정하고, 그 존재가 전지전능하다고 정의하면 과학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신을 믿는 과학자일지라도 현상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자기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과 마주치더라도 그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과학자입니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해서 이 지구에 현재와 같은 다양한 생명체들이 생겨났을까에 관한 의문을 가지고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과학자들의 작업에 진화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론자들은 창조되었다는 불변의 가설에 맞는 여러 가지 증거들을 찾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창조론이 과학의 교과에 들어가 있을 방은 없는 것입니다. 말장난 같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창조론은 옳을지 모르지만 과학이 아니고, 진화론은 틀릴지 모르지만 과학이다.”라고 말입니다.
--- pp.267~268
소행성의 위협으로부터 지구 문명이 살아남는 것도 기술 발달에 달려 있습니다. 아직 인류에게는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소행성을 폭파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기술이 없습니다. 일부 시도하고는 있지만 초보적인 수준입니다.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은 2022년 9월 29일 110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소행성 디디모스의 위성인 디모르포스에 우주선을 충돌하는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지구로 오는 소행성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기술은 확보하고 있지 못합니다. 대형 소행성이 지구를 강타할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이런 기술을 개발한다면 인류는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우주로부터 오는 위협이 소행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우주 공간은 고작 태양계, 태양계 내에서도 지구 근처의 공간뿐입니다. 태양계를 벗어난 공간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태양에서 얼마나 가까운 별이 언제 폭발할지 알지 못합니다. 별이 폭발할 경우, 그 근처의 우주 공간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지구 정도는 녹아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는 않다고 해도 초신성 폭발로 날아오는 감마선 폭풍이라도 맞는 날에는 지구라는 행성에 또 다른 대멸종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위협에 대처하는 것도 버거운 일인데 이런 모르는 위협까지 신경을 쓰려면 끝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의 기杞나라 사람이 걱정했다는 바로 그 ‘기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나라 사람의 그 걱정이 막연한 걱정이었다면 우리가 하는 이 걱정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합리적인 걱정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 pp.380~381
이 우주가 팽창을 계속할지, 가속 팽창을 할지, 팽창하다가 멈출지, 멈춘 후에 다시 수축하게 될지 모릅니다. 우주의 운명은 물질,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의 밀도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이들 밀도의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의 물리학이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좀 더 잘 알 수 있겠지요. 열역학 법칙에 따르면 별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이 소진되면 별들도 차츰 붕괴하고 결국 블랙홀만 남게 되겠지만 이 블랙홀도 결국 증발해버릴 것이고, 우주는 소위 열 죽음heat death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천, 몇만 년 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백억, 수천억 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이 우주도 결국 죽음을 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우주가 사라져도 다중우주가 있습니다. 그 다중우주도 결국에는 사라지겠지요. 하지만 급팽창 이론에 따르면 다중우주는 사라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주가 사라지는 날이 오게 될까요? 별까지는 고사하고 지구를 벗어나지도 못하는 존재, 100년도 살지 못하는 존재가 무한한 우주와 영원한 시간을 생각합니다. 위대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애처롭다고 해야 할까요?
--- pp.177~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