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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독

도시탐독

: 유혹하는 홍콩, 낭만적인 마카오의 내밀한 풍경 읽기

리뷰 총점9.2 리뷰 34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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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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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1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600g | 142*200*30mm
ISBN13 9788925551715
ISBN10 892555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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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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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군이 이교를 자전거에 태우고 첨밀밀 노래를 부르며 달리던 캔턴 로드도 이 근처에 있다. 영어학원 수업을 마치고 여소군은 차가 있다며 이교를 데리고 나온다. 자전거를 본 이교는 “홍콩에서는 이런 걸 차라고 하지 않고 자전거라고 해”라며 황당해했지만, 캔턴 로드를 달리며 둘은 행복했다. 이 거리에는 지금 홍콩 최대의 쇼핑몰 하버 시티가 있는데, 종종 허름한 옷을 걸친 사내들이 자전거를 타고 그 앞을 달려간다. 노인도 있고, 중년도 있고, 젊은이도 있다. 그중에는 아마 첨밀밀의 여명처럼 대륙에서 돈 벌러 온 이도 있을 것이다. 화려한 거리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서 어울리지 않는 그런 풍경을 보노라니 가슴이 짠해졌다. 영화 속 풍경은 지금 현실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비단 그들만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에 도시로 와서 고생하던 사람들, 멀리 서독까지 돈 벌러 갔던 광부들과 간호사들, 또 지금 한국에 와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한때 훨훨 날아다녔지만 어떻게든 현실에 뿌리내리고 살아보려 돈, 돈, 돈 하면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다. 나도 영화 속 주인공 여소군과 다를 바 없다. 그는 닭 배달을 하고 나는 글 배달을 하며 살아간다. 다들 비슷하지 않은가. 초라한 자전거를 타고, 뒤에 아내를 태우고, 아이들을 태우고 이 현란한 세상을 비틀거리며 달리고 있다. --- p.39

홍콩 자체가 광고 천지다. 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밑에도, 버스에도, 트램에도, 지하철 역사 안에도, 에스컬레이터 통로에도 화려한 광고들이 붙어 있다. 지하철 안에도 우리나라처럼 짐 놓는 칸이 없고 대신 그 자리에 광고가 붙어 있다. 여기서는 모든 공간이 돈으로 환산된다. 광고도 멋지고 싱싱해서 마치 현실처럼 우리의 의식을 치고 들어온다. 눈이 쉴 틈이 없다.
홍콩에서는 버스도 광고 논리에 움직인다. 홍콩 작가 제이슨에 의하면, 홍콩 버스들은 평일 낮에는 거의 텅텅 비어서 다니지만, 수익이 승객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버스에 수없이 붙인 광고에서 오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한다. 즉 달리는 버스는 ‘달리는 광고판’인 셈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교묘한 광고 논리가 곳곳을 파고들고, 공산주의 세상에서는 정치적 구호가 사람들을 세뇌한다. 결국 우리의 생각, 이미지조차 외부에서 입력된 것들의 조합이다. 어차피 그런 세상에서 그 모든 것을 분석하기 시작하면 뇌가 피곤하다.
일단은 마음을 내려놓고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즐기고 싶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야경과 빛을 즐기는 시간이 나쁠 리 있나. 어딜 가나 광고 이미지가 우리를 협공하는 홍콩에서, 그것을 피해 나가는 방법은 차라리 무심하게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 p.71

할아버지는 밤늦게 들르는 사람들에게 종종 시달렸다. 한번은 새벽 1시쯤에 필리핀 여자들이 와서 영어로 내일 묵을 방이 있냐고 물었다.
“노 베이컨시[빈방 없어].”
영어를 전혀 못하는 할아버지가 외워서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필리핀 여자들이 그걸 못 알아듣는다.
“노 룸[방 없어]?”
필리핀 여자들이 쉬운 단어로 되물었다.
“노 베이컨시.”
할아버지는 ‘룸’이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아니 질문 자체를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답을 되풀이한다. 질문과 대답이 표류한다. 마치 ‘무시기가 뭐꼬, 뭐꼬가 무시기’ 식의 얘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아, 답답해. 내가 가서 통역을 해줄까? 이건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눈치의 문제고, 경우의 문제다. 새벽에 와서 내일 묵을 곳을 알아보러 다니니 이게 무슨 경우냐. 옆방에서 한참 떠들던 중국 여인들도 한숨을 내쉰다. 자기들 떠들 때는 몰라도 남 떠드는 것 들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번엔 필리핀 여인이 “양거런[두 사람]” 뭐라뭐라 그러자 할아버지가 “싼거런[세 사람]” 뭐라 한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지? 두 명은 안 되고 세 명은 된다는 얘기인가? 할아버지가 초지일관 “노 베이컨시”란 말을 하면 어쨌든 ‘노’란 말 때문에 없는 것을 알아들을 텐데, 그렇게 말하니 말이 빙빙 도는 것이다.
한참을 그러다가 필리핀 여인들은 결국 “뚜이부티” 하고는 가버렸다. ‘미안하다’는 말인 ‘뚜이부치’를 ‘뚜이부티’라고 발음했으니 할아버지가 알아들었을까? 아이고, 이 상황이 마치 개그의 한 장면 같아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 p.321

카지노를 뒤로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멀리 타이파 시내의 아파트촌 위에 잔뜩 낀 먹구름을 보는 순간, 낙원에서 추방된 느낌이 들었다. 황금 불빛으로 휩싸인 저 카지노는 세속의 고통이 모두 증발된 즐거운 낙원처럼 보이는데 나는 이제 땀에 전 채 한 푼의 돈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허연 물통을 든 중국인 사내, 비닐봉지를 든 필리핀 여자도 피곤한 기색이었다. 아마도 이런 카지노에서 일하다가 퇴근하는 사람 같았다. 26A 버스는 잘 오지 않았다. 20여 분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지쳐 있었다.
시내로 돌아와 세나도 광장의 웡치케이에서 새우완탕면을 먹었다. 국물이 뱃속으로 들어가니 잠시 카지노 불빛에 들떴던 무게중심이 가라앉는다. 배가 부르고 편안해지자 광장에서 출렁거리는 속세의 물결에 즐거워진다. 거리를 거닐다 신문 가판대에서 라디오를 켜놓고 하루를 정리하는 사내들을 보면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래, 내 고향은 이곳이다. 저 화려한 카지노의 성채는 나를 허전하고 쓸쓸하게 만들지만, 이렇게 땀 흘리며 사는 사람들은 나를 얼마나 따스하게 해주는가. 나는 몇 백 원, 몇 천 원을 벌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이 좋고, 몇 천 원의 소비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좋다. 그리고 속의 세계를 빠져나와 가끔 추억과 상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좋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과 노후를 위해서 잉여를 추구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잉여를 저축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겠지. 그러나 욕망은 끝이 없는 법. 그 잉여가 우리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늘 마음을 낮추고, 비우고, 타인과 나누면서 소박하게 살아가야지. 마카오의 세나도 광장 구석에서 나는 이런 다짐을 했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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