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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의 안식처, 에르미타를 찾아서

순례자들의 안식처, 에르미타를 찾아서

: 스페인에서 만난 순결한 고독과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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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525g | 147*195*20mm
ISBN13 9788959137688
ISBN10 8959137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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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는 매해 겨울이 마지막이기를 소망했지만 올해로 벌써 7년째 맞이하는 에르미타의 겨울이었다. 그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려하고 발랄한 파란 하늘은 에르미타를 위한 빛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외롭고 쓸쓸한 작업을 더욱 심화시키기 위해 우울한 회색빛이 감도는 겨울날만을 골라 여행했고, 이 특별한 빛은 주변을 고요히 잠재우고 구름에 반사된 햇살을 받은 에르미타는 영롱하고 섬세하게 반짝거렸다. --- p.22

“우리가 묵을 호텔은 별 하나짜리도, 별 다섯 개짜리 호텔도 아니야. 밤하늘이 가득 채워지는 밀리언 스타 호텔이야.” 바로 에르미타 익스프레스, 그의 노란 르노 승합차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 p.35

벌써 며칠째인지, 계속해서 파란 하늘이 사진사 세바스티안을 당혹스럽게 했다. 햇살 가득 쨍한 하늘이 그를 당분간 실업자로 놓아둘 생각인가보았다. 파란 하늘도 충분히 드라마틱한 풍경을 자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내 말에 세바스티안은 흥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내 사진 속에서 에르미타의 감정을 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야. 세계와 뚝 떨어져 살고자 했던 당시 에르미타 사람들의 감정이 푸른 하늘처럼 화려했을 거라고 생각해? 작고 초라한 에르미타 안에서 느꼈을 그들의 외로움은 밝고 파란 하늘에서는 묻어나지 않아.” --- p.65

“올해에는 꼭 성공을 해야 할 텐데 말이지…….”
잔뜩 상기된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기대감이 마블링처럼 얽혀 있었다. 하늘은 짙은 회색빛이었고 붉은 흙과 풀이 돋은 땅도 눈에 덮여 있어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마을의 좁은 길을 지나 언덕을 돌자 멀리 에르미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에르미타의 모습이 50미터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찍을 수 있을까? --- p.40~41

날이 밝았다. 커튼을 열고 밖을 보니 산속은 온통 하얀색으로 가득했다.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며칠 동안의 밝은 날씨를 보상이라도 하듯 날은 온통 찌푸려 있었다. 세바스티안이 승합차의 문을 열어젖혔다.
“쉿!”
세바스티안이 손을 들어 나를 막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 그만 우뚝 멈추었다. 문 앞에 늑대 한 마리가 우리를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우리는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늑대와 눈을 맞추었다. 늑대는 숲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몇 걸음,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내 늑대는 숲 속으로 사라졌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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