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구 flypaper@yes24.com
「다스한 공기가 당신에게 말하네요. 기운을 차리라고. 꽃들도 기운을 차리라 하고, 새들, 별들, 온갖 생명의 변함없는 약동, 모두들 기운을 차리라 하네요. 그래도 난 당신에게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라고 하겠어요.」(본문 중에서)
상페의 데생 70여 편이 담긴 삽화집 『사치와 평온과 쾌락』. 보들레르의 시에서 따온 말, 마티스의 동명 회화에 차용된 제목의 이 책은 단조로운 일상 뒤에 숨어 있는 탈주와 일탈의 움직임을 엿보게 한다. 그레이톤의 삽화에 흐릿한 조명을 채색 삼아 느껴 보는 상페의 지긋한 시선은 한순간 이나마 지긋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기쁨임에 틀림없다. 나의 포부야말로 '사치와 평온과 쾌락'. 늘 꿈꾸지만 미처 다가서지 못하는 일상의 여백임에 틀림없다.
야자수가 놓여 있는 새하얀 타일에 둘러 쌓인 지중해 풍의 대저택 수영장에서 빨간 수영복 팬츠를 입고 팔랑팔랑 물장구치는 중년 남자의 모습은 분명히 사치스럽지만 여지없이 평온하다. 홍콩 영화에서나 봄직한 원색의 거대한 잉어 조각으로 치장된 다이빙대에서 코를 막고 으쌰, 하고 뛰어 내리는 사내 또한 익살스러울 만큼 평온하다. 창문 틈새로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음 지으며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연인의 모습에 미소를 띄우지 않는다는 것은 못된 심보다. 사소한 의견 다툼 후에 친구의 저녁 한나절을 방해하기 위해 석양을 등지고 광대춤을 추는 노인의 모습은 아닌 것 같지만, 여유가 있기에 평온함이라 이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상페가 그리는 일상이 매번 꿈꾸는 듯한 아득한 평온만을 소재로 삼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사고 없이 평온하기만한 일상이라면 이른바 불안한 쾌락에 가까울 터, 순간을 터치하는 붓이지만 일상의 언저리에 놓여 있는 우수와 고독이 늘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게 상페의 간결한 데생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네 일상의 소소한 리얼리즘이기도 하다.
20년만에 찾아간 추억이 어린 프로포즈 장소에서 싸움만 하게 되는 중년 부부, 소담스러운 상추 한 다발에 얽힌 완벽한 에피소드를 뒤로하고 까닭 모를 설움이 복받쳐 울음을 터뜨리는 우리 일상의 주인공, 상대 수비수를 날렵하게 제치고 들어 온 펠레의 패스를 이어 받은 플라티니의 기가 막힌 어시스트, 절묘한 슛 찬스, 하지만 싱거운 발길질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 손으로 볼을 막는 골키퍼는 어이쿠! 내 마누라. 한껏 멋과 사치를 동원해 갖은 폼을 잡아 보지만 느닷없는 화재에 우왕좌왕하게 되는 고급 오페라 극장의 수많은 소시민들, 비오는 날 정든 스웨터를 입고 안락한 회상에 빠져들지만 시종일관 현실의 터울을 벗어나려는 안쓰러운 몸짓들, 차마 회사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심드렁하게 베이스 드럼을 톡톡 건드려 보는 중년 간부 회사원의 심기…….
이 모든 삽화에서 드러나는 일상의 모습은 평온함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고즈넉한 쓸쓸함이 배어 있다. 사치와 평온과 쾌락을 꿈꾸지만 결코 쉽게 원하는 것에 다가서지 못하는 우리네 삶의 현실이자 비극인 것이다.
상페는 이러한 삶의 결락감을 한없이 맑고 투명하게,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혹하고 빠져 버릴 듯한 풍부한 질감으로 그려낸다. 또한 유머러스하고 간소한 구성, 여유 있는 태도와 천성적인 낙관을 품은 넉넉함으로 상처받은 일상의 그네들을 위로한다. 수채화풍의 정교한 그림으로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속 깊은 이성친구』, 『얼굴 빨개지는 아이』, 『랑베르 씨』, 등에서도 보여지듯, 어쩌면 상페의 데생은 일상의 역설을 이해하는 소리이고 몸짓이라 할 수 있다. 인간 내면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보듬어 안는 여유로운 중저음의 미덕으로 자리하는 정겨움이라 할 수 있다. 상처를 받을수록 왜소해지는 우리들은 큰 목소리에 위축되며, 칼진 비성에 또 다시 상처를 받는다. 가라앉을수록 좋은 소리, 중저음이 강한 이유는 상페의 데생이 주는 미덕 마냥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우리네 일상을 지키자 하는 자그마한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혼란스럽기만 하고 매번 속고 사는 일상에 불과하지만, 위로 받으며 따사롭고 정겹게 어울리고픈 그만그만한 바램이 늘상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