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병원 중환자실 대기석에 서도경 총경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최우철 경위는 목발을 짚고 절뚝이며 서 총경 앞으로 걸어왔다.
“과장님, 저 왔습니다.”
“어, 최 형사. 그 몸으로 온 거야? 경과 지켜보고 연락할 테니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냥 기다릴 수가 있어야 말이죠. 어찌 된 겁니까?”
“일단 여기 앉게.”
서 총경은 일어나 최 경위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뭐가 괜찮아? 어서 앉아.”
“감사합니다. 팀장님은 어떻게 된 겁니까?”
“인천항 근처 목재 창고에서 화재 사고가 있었네. 그 화재로 김승철 경감과 민우직이…… 전신 화상을 입었어. 그런데…….”
서 총경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위중한 상태입니까?”
“……김승철 경감은 이송 중에 사망했네.”
그 말을 들은 최 경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죽었단 말입니까? 팀장님은 괜찮은 건가요?”
“중환자실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중이네.”
“화재라고 하셨는데, 방화였습니까? 살해할 목적으로 불을 지른 게 아닐까요?”
“현장 검증 중이니 그건 곧 알 수 있겠지.”
“김승철 경감 시신은 부검하실 거죠?”
“그래야 하는데 유족들이 부검을 반대하고 있어.”
“왜요? 사인을 명확히 밝혀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전신 화상으로 고통받다 사망한 거잖아. 유족들이 또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고 해서 말이야. 의사 소견으 로는 연기 흡입으로 인한 질식사라고 하니 굳이 부검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해.”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팀장님은 아직 의식이 없는 겁니까?”
서 총경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대기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남 순경이 잔뜩 인상을 쓴 채 헐레벌떡 뛰어왔다.
“최 형사님! 어, 충성!”
남 순경은 뒤늦게 서 총경을 보고 깜짝 놀라 곧바로 경례했다.
“왔어, 남 순경.”
“팀장님은 지금 어떠세요? 괜찮으신 거죠?”
“잠깐 나가서 나랑 얘기 좀 해.”
최 경위는 목발을 짚고 일어나 남 순경을 데리고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혼자 온 거야?”
“아니요. 검사님도 주차하고 곧 오실 거예요.”
“그럼 검사님 오시면 그때 얘기하지. 우선 진정 좀 하고. 팀장 님은 아직 의식이 없으신 것 같아.”
“위독하다고 하셨잖아요. 지금도 그런 건가요?”
“그래. 아직 위중한 상태이셔. 아, 저기 검사님 오시네.”
최 경위는 한 검사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한 검사는 최 경위를 발견하고 서둘러 달려왔다.
“최 경위님, 팀장님은요?”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저기, 검사님. 그리고 김승철 경감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뭐라고요? 설마 살해당한 건가요?”
“아직 현장 검증 중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남 순경이 끼어들어 최 경위에게 물었다.
“팀장님은 지금 어떤 상태이신 거예요?”
“화재 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으셨다고 하네.”
“화상이요?”
“그래. 과장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인천항 부근 목재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대. 거기서 화상을 크게 입으신 것 같아.”
---「제2화. 위태로운 고스트 수사팀」중에서
주명근의 소재 파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다크킹덤 수사도 진전이 없었고, 김승철 경감을 납치한 차량도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화재 사고는 방화라는 심증만 있을 뿐 증거를 찾아내지 못해 일반 화재 사고로 종결될 판이었다.
서민주 의원은 임시 국회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 의사당으로 향했다. 그 곁을 안 경위와 최 경위가 경호하며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뒷좌석에 서 의원과 함께 앉아 있던 최 경위가 운전하고 있는 안 경위에게 물었다.
“팀장님이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서 의원은 최 경위의 팔을 살며시 잡았다.
“그래도 남시보 순경이 다음 살인사건 범행 장소를 알아냈다니 다행이잖아. 안 그래?”
안 경위가 룸미러를 힐끗 보며 이어 말했다.
“그렇죠? 한 검사님도 밤낮으로 열심히 뛰어다니십니다. 현장에도 직접 나가시고 말이죠.”
“검사님만 그런 게 아니잖아. 모두 다 힘든 건 마찬가지지.”
“우철, 얼굴 좀 펴. 그렇게 인상 쓴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 아.”
“알아. 하지만 너무 화나고 답답해서 그래. 팀장님이 그들에게 당했는데 알아낸 게 아무것도 없잖아. 고작 현장 검증으로 증거나 찾고 있고……. 이런 식으로 가다간 우리 모두 위험할수 있다고. 민주도 언제까지 이렇게 안전 가옥에만 있을 순 없잖아.”
“그래. 그래도 차근차근 하나씩 다크킹덤의 정체를 밝혀 가야 지. 당장은 그 방법밖에 없잖아.”
“차근차근? 언제까지? 알아낸 게 뭐가 있는데? 그들은 우리 심장을 찔렀다고. 팀장님을 죽이려 했어. 지금 며칠째 중환자실에 계신다고. 이쯤에서 중단해야 해. 이러다 팀원들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어.”
최 경위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그의 말에 안 경위는 깜짝 놀라 룸미러로 뒤를 보며 말했다.
“최 형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단이라니요?”
“알아, 둘 다 무슨 생각인지. 하지만 우리 힘으로 지금 뭘 할 수있겠어? 지금은 물러나 있을 때야. 분명 다시 기회는 올 거야. 그때…….”
“그게 정말 팀을 위한 최선의 선택입니까? 힘을 합쳐 다크킹덤 그놈들을 잡아 정의를 바로 세우자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랬지.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을 봐. 맨몸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이러다 우리 모두 총 한 발 제대로 쏴 보지도 못하고 전멸할 수 있어. 그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
“최 형사님,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 안 형사…… 어! 뭐야?”
정지 신호에 멈춰 선 앞차가 갑자기 후진해, 이들이 타고 있는 차를 그대로 들이박았다. 그리고 뒤차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와 차 후미와 충돌했다.
“차 문 잠가! 안 형사, 빨리!”
“네!”
안 경위는 황급히 차 문을 모두 잠갔다. 앞뒤 차량에서 가면쓴 사람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재빠르게 내렸다. 그들은 안 경위의 차를 둘러싸더니, 망설임 없이 쇠파이프로 사방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최 경위는 서 의원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민주야! 고개 숙여!”
안 경위는 다급히 총을 꺼내 들었지만 그들이 내리치는 쇠파 이프 충격에 제대로 총을 겨누지 못했다. 최 경위가 뒤늦게 총을 꺼내 겨누려는 순간, 그들은 재빠르게 자기네 차로 돌아갔다.
“안 형사, 빨리 내려서 한 놈이라도 잡아. 어서!”
“네! 어, 문이…….”
안 경위는 차에서 내리려 했지만 차 문이 열리지 않았다.
“왜 그래? 안 열려?”
“네. 고장 난 것 같습니다.”
최 경위는 서둘러 뒷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그때는 이미 차들이 멀리 사라진 뒤였다. 그 모습을 최 경위는 망연자실 쳐다만 봤다.
---「제4화. 경고 메시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