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
나는 친구와 연서 님 만나러 가면서 내가 가장 아끼는 옷을 설레면서 꺼내 입는다. 내 옷 중에서 제일로 아름다운 그 원피스 입고 남편에게 보여 드려야지 하고, 기다린다. 남편도 외출이라 그런지 세면실에서 좀체 안 나온다.나오자, 기다리고 섰던 내가 말한다.
“내 옷 좀 봐줘요. 어때요?” 남편은 대답 대신 갑자기 큰 소리로 “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
나는 그 의미를 알기에, 그만 자지러지게 웃는다. 내가 자지러지게 웃는 걸 설명하려면 얘기를 좀 해야 한다. 오래 전에 들었던 얘기라고, 남편이 얼마 전에 내게 들려주었다.
나이 많은 어느 할머니가 외출했다 돌아오는데, 동네 트럭에서 생선(갈치) 파는 아저씨가 이렇게 외친다. “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 그 소리를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로 잘못 알아듣고 흐뭇하게 집에 들어온 할머니. 그는 거울 앞에 서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 보면서 포즈를 취해 본다. ‘내 몸매가 아직도 처녀 같나?’ 들어오자마자 한동안 거울 앞에 서 있는 시어머니가 이상한 며느리가 왜 그러시냐고 묻자 할머니가 대답한다. “…아직도 내가 처녀 몸매 같으냐? 아까 오는데 생선 파는 아저씨가 나보고 ‘처녀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하더라…?”
그날 저녁 아내로부터 이 말을 전해 들은 남편, 할머니 아들이 다음날 퇴근해서 귀가하는데, 동네 어귀에서 트럭을 대놓고 생선 파는 아저씨가 있다. 아저씨는 ‘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 외치면서 손님을 부르고 있다. 아들은 아, 어머니가 이 ‘갈치가 천 원!’을 ‘같이 가 처녀!’ 로 잘못 알아들었구나. 아들과 며느리의 의문이 풀린다.
남편은 내 옷차림이 어떠냐는 물음에 처녀 같다는 말을, 갑자기 ‘갈치가 천 원!…’ 하면서 나를 웃긴다. 그런데 남편의 말을 더 새겨들으면 ‘당신 모습이 처녀 같다’는 말도 될 수 있고, ‘여보 착각하지 마! 당신 나이 82세야’ 경고도 은근히 들어 있는 것 아닐까?… 어쨌든 나는 그날 외출하면서 지하철 안에서 남편이 한 말, ‘갈치가 천 원!’을 생각하면서 혼자 얼굴을 감싸고 오래 웃었다.내 옷 좀 봐 달라는 철없는 아내 말에 대한, 남편의 명 대답이 아닌가.
흰 싸락눈 내린 것 같이 환상적인
그날, 수지 친구는 주말농장에서 남편이 농사지은 감자를 쪄서 내놓는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감자가 아니다. 무슨 눈의 나라에서 온 하얀 요정들, 커다랗게 흰 꽃송이다. 찐 감자 속살이 하얗게 터져서 마치 흰 감자 살 위에 하얀 싸락눈이 내려 쌓인 듯. 내가 처음엔 바라만 보다가… 허기가 졌는지 그 감자를 두 개나 먹었다. 참으로 무자비한 식탐가가 아닌가.
내 앞에 싸락눈 꽃송이같이 똑 같은 크기의 탁구공만한 감자가 10개쯤 놓여 있으니 그지없이 눈부시다. 친구가 갑자기 예술가처럼 보여서 이걸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으니 대답한다.
“이것… 감자를 껍질 벗겨 쪄서, 다시 설탕과 소금을 넣고 막 굴려, 굴려! 감자가 막 부딪히면서 이렇게 돼.”
“아아 감자끼리 서로 아프게 부딪히면서, 이렇게 살이 터지면서 뽀얗게 되는구나… 감자도 아픈 관계에서 아름다워지는구나, 사람같이…”
골짜기의 모난 돌도 물길 따라 굴러 흐르면서 그 모가 깎여 부드러워지듯이. 감자도 그렇구나… 그렇게 살이 터지게 부딪히고 굴러야, 싸락눈 내린 것처럼 뽀얀 살을 드러내면서 보암직하게 아름다워지는구나… 친구는 재주도 많다. 사물의 원리나 이치를 잘 아는 친구.
그는 사물의 원리나 이치뿐만 아니라, 인간성의 원리도 잘 알고 있다. 상대의 인성을 꿰뚫어보는 영성! 그가 몇 십 년 만에 내게 전화할 때, ‘너는 어떻게 그렇게 사니?…’ 하면서 한참 동안 쏟아내던 울음을 나는 간직하고 있다. 그 ‘신령하고 진정스런 울음’ 가끔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그 울음 앞에 내 교만한 무릎이 꿇어지면서, 그를 존경한다.
오늘 아침, 구름의 향연을 보셨나요?
아침에 하늘을 본다. 온 하늘에 꽉 찬 구름이다. 은보라색 자개구름이 이리도 꽉 찬 하늘은 처음 본다. 내겐 처음이 많다. 내 마음이 날마다 새로워지니까, 똑같은 사물도 새롭게 느껴져서 그럴까? 구름의 향연은 한 5분간 계속되더니 점점 아침 해가 솟아 오름에 따라 흩어진다. 나중엔 자잘한 흰 구름 덩이가 식혜에 밥알이 동동 떠 있는 듯, 하다가 사라진다. 이런 날은 외출 안 할 수가 없다. 오늘 새벽에 연서 님 독후감도 보았다. 아직도 어떤 독후감은 나를 끓어오르게 한다. 내 책에 대한 독후감은 독자가 내 영혼에게 하는 말이라 내가 뜨거워지나 보다. 하늘에 꽉 찬 은보라색 자개구름처럼, 나도 오늘은 잔치하고 싶다. ‘그 친구’를 만나고 싶다. 그 사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은옥색 맑은 하늘… 내 환상과 신비를 알아주는 그 친구 만나러 간다. 나만 너무 행복한 것 같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마음 인사하면서.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