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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2

하마노 지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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濱野ちひろ

작가. 1977년 히로시마 현에서 태어나 2000년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를 졸업하고 잡지 등에 인터뷰, 에세이, 영화평, 여행과 예술 등에 관한 기사를 집필, 기고했다. 2018년 교토대학 대학원 인간 · 환경학연구과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현재 박사과정에 재적하고 있다. 전공은 문화인류학(섹슈얼리티 연구)이다.
출판사 연립서가에서 책을 만들며 예술서 및 인문서 번역 작업을 한다. 도쿄예술대학에서 동아시아 근대 미술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아트 도쿄』,『서경식 다시 읽기』, 『비평으로 보는 현대 한국미술』,『영감의 공간』등이 있고, 서경식의 저서『나의 조선미술 순례』,『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나의 영국 인문 기행』,『나의 미국 인문 기행』,『나의 일본미술 순례1』을 옮겼다. 그 밖의 번역서로『성스러운 동물성애자』,『이중섭, 그 사람』,『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인류학 에세이』,『재일의 연인』,『무서운 그림
출판사 연립서가에서 책을 만들며 예술서 및 인문서 번역 작업을 한다. 도쿄예술대학에서 동아시아 근대 미술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아트 도쿄』,『서경식 다시 읽기』, 『비평으로 보는 현대 한국미술』,『영감의 공간』등이 있고, 서경식의 저서『나의 조선미술 순례』,『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나의 영국 인문 기행』,『나의 미국 인문 기행』,『나의 일본미술 순례1』을 옮겼다. 그 밖의 번역서로『성스러운 동물성애자』,『이중섭, 그 사람』,『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인류학 에세이』,『재일의 연인』,『무서운 그림 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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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76g | 130*208*18mm
ISBN13
9791197758645

책 속으로

설마 독일에서 휴대폰 신호가 끊기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내가 야무지지 못했구나, 하고 즉시 깨달았다. 차 안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지만, 몸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미하엘이 그런 내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그를 믿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신용했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보다 힘이 세고 몸집이 큰 남성인 미하엘과 그의 ‘아내’ 케시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참이었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내 몸을 지킬 수단을 잃은 채, 이젠 어쩔 도리가 없다는 심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차에서 내리는 선택지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보다 훨씬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p.47~48

동물해방론으로 잘 알려진 철학자 피터 싱어PeterSinger는 2001년에 미국 웹 매거진 〈너브닷컴Nerve.com〉에 ‘진한 애무Heavy Petting’라는 제목으로 논고를 발표했다. 싱어는 잔학한 행위를 동반한 동물과의 섹스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하지만 동물과의 섹스가 항상 잔혹함을 동반할 리는 없다. (중략) 때로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 만족하는 성행위로 발전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라고 썼다. 폭력 행위를 동반하지 않는 한 동물과의 성적인 접촉이 용인될 수 있다고 해석될 만한 싱어의 주장은, 그 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비판적인 의견이 제기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pp.52~53

“태어나면서부터 주파일”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12명이고 전부 남성이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내가 만난 사람들 중 60퍼센트가 태어나면서부터 주파일이었다고 느낀 셈이다. 남성만 계산하면 17명 중 12명으로 비율은 70퍼센트까지 높아진다. 참고로 지금까지 만났던 여성 주파일 가운데 “태어나면서부터 주파일”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타고난 주파일이라고 느끼는 남성들은 “섹스의 의미나 방법 등 성과 관련된 지식이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게 강한 애착이 있었다.”라거나, “유소년기부터 사춘기에 걸쳐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이구동성으로 “동물을 향한 애착이나 성적 욕구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미리 갖춰진 감각”이라고 했다.
--- p.55

불현듯 질문이 떠올라 나는 물었다.
“저기, 미하엘, 이 소들을 섹시하다고 느껴요?”
“아니요.” 그러고는 미하엘은 조금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혹시 관계가 가까워진다면, 한 마리 한 마리의 ‘퍼스낼러티personality’가 느껴진다면, 달라질지도 모르지요.”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미하엘은 말을 이었다.
“동물에게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퍼스낼러티가 있어요. 퍼스낼러티는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아요. 나와 그 동물이 느긋이 함께 지내다 보면 퍼스낼러티를 알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나에 대한 동물의 반응 방식이랄까, 그런 것들로부터 보이는 거죠.”
미하엘뿐만 아니라 많은 주파일이 “동물에게는 퍼스낼러티가 있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좀처럼 그 의미가 다가오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아무리 동물을 사랑한다고 해도, 어떤 동물이든 좋다는 의미일 리가 있겠냐고 말한다.
--- p.72

“섹스를 화제로 삼아야 센세이셔널하니까, 대부분 주파일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성행위에만 한정해서 다루곤 해요.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동물이나 세계와 맺는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예요. 무척 어려운 문제지요. 세계나 동물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가에 관한 논의니까요. 주파일을 비판한다는 것은 다른 종을 향한 공감이라는 중요한 감각을 비판하는 셈이죠. 누구를 사랑하는가, 무엇을 사랑하는가, 그런 것을 두고 타인에게 간섭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샤가 열변을 토하는 사이에도 쥐들은 감자를 담은 그릇에서 뛰놀았다. --- pp.85~86

일본에서는 개를 기르는 많은 사람이 중성화 수술을 당연하게 여기는데, 주인의 의무라는 사고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중성화는 동물의 성을 컨트롤하는 것으로, 그 생명이 가진 존재 양상에 인간이 손을 대는 것이다. 중성화의 찬반에 대해서는 더 논의할 필요가 있겠지만, 개의 성을 무시하고 거세하는 일이 일반적이게 된 배경에는 ‘개를 아이로 보는 시각’도 자리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는 어른의 지배 아래 있으므로 어른이 권한을 내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아이는 어른과 같은 성욕을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되므로, 중성화 자체가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중성화하면 개의 ‘아동화’는 한층 더 진행된다. 아이가 성욕을 드러낸다는 공포에서 ‘어른’ 주인은 해방된다.
--- pp.105~106

“주파일이라는 존재를 알지 못했다면 내 삶은 훨씬 지루했을 거야.”
쿠르트는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주변의 가까운 사회부터 바꾸려는 듯하다. 그 생각의 근저에는 그가 강하게 믿고 있는 ‘섹슈얼리티의 자유’가 있다. 주파일이 ‘되어가는’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주파일이었던 사람과는 다른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다. 어떤 이에게 주파일이라는 존재는 가까운 동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며, 어떤 이에게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연인이나 개를 수용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또 어떤 이에게는 정치적 활동이기도 하다. 주파일은 섹스와 결부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동물, 인간, 사회, 이 모두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던져진 질문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쉽사리 끝날 수 없다.
--- p.233

미하엘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동물은 내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줬지만,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때에 맞는 역할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할 것. 거짓말을 하지 말 것.” 미하엘은 말을 사용하지 않고 동물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바람을 이루고자 애쓰며 살아간다. 미하엘은 동물 앞에서 주인이라는 역할을 연기조차 할 마음이 없다. (중략)
어쩌면 주파일은 시적 감각이 풍부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언어로 전해지지 않는 동물의 부름에 응하면서, 자신의 감각을 세련되게 다듬어간다. 그리고 파트너 동물과의 사이에서만 보이는 특별한 표식을 실마리 삼아 서로의 관계를 풀어나가고 있다.
--- p.244

상대방을 객관적으로만 보는 투명인간은 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친구’였던 것이다. 수없이 흔들리면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머리를 파묻은 채, 오로지 자신을 위해 연구하려 했던 나라는 존재가 부끄럽고 미안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객관적이고자 했던 불손한 생각 때문에도 울었다. ‘섹스를 말할 자유’를 위해서 힘을 보태주었던 그들을 통해 나는 앞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을 다 쓴 지금도 망설임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나와 주파일 한 명, 한 명과의 사이에 각각의 퍼스낼러티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그 사실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한다. 내 눈앞에 ‘특별한’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 퍼스낼러티를 발견하려는 실천 자체가 형태가 있는 ‘사랑’이 아닐까? 그런 기대를 품는다.

--- p.261

출판사 리뷰

2019년 제17회 〈가이코 다케시 논픽션상〉 수상작!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 먼저 무섭고도 역겹다는 생각에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그런 반응이야말로 ‘다양성’의 정반대편에 있는 ‘편견’과 ‘차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다나카 유코(일문학자, 호세대 전 총장)

“독일의 주파일과 만나, 놀라고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차차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충격적인 논픽션은 한편으로 금기를 파괴하는 하나의 ‘문학’이기도 하다.”
-후지사와 슈(소설가,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금단의 영역이라고 말할 법한 동물과의 성교를 통해, 폭력 없는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저자의 진지한 열정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강상중(정치학자, 도쿄대 명예교수)

2020년 일본 주요 도서상 논픽션 부문 노미네이트!
2020 야후재팬 뉴스 서점대상 논픽션 부문
신초(新潮) 도큐멘트상
고단샤(講談社) 혼다 야스하루 논픽션상
문예춘추(文藝春秋)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나는 ‘사랑’을, ‘섹스’를 잘 모르겠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10년 동안 파트너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보려고 반대 집회에도 참가해 봤지만, 상처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절실했던 질문, “사랑과 섹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20년이나 지속되어 온 마음속 응어리를 풀기 위해 39세에 교토대학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 진학한다. 연구 분과는 섹슈얼리티였지만 논문의 테마를 자신에게 직접적인 문제였던 ‘가정 성폭력’ 이 아니라 ‘동물성애’로 좁히고 제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사람과 동물이 종을 뛰어넘어 섹스한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사랑과 섹스에 관한 의미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것인지도 모른다.”라는 아주 작은 희망과 무모한 결의를 가지고서. “예외는 상태의 본질을 비춰낸다.”(카를 슈미트)라는 경구처럼, ‘동물성애자’라는 예외적 존재를 지렛대로 삼으면 산처럼 굳건한 ‘관습’이나 ‘도덕’ 같은 기준을 넘어 인간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였다. 그렇게 저자는 총 4개월 동안 제타 회원들의 집에 머물며 남녀 22명과 일상을 공유한다.

개를 아내로 둔 남자, 일곱 마리 쥐와 함께 사는 남자

개를 아내로 둔 남자, 미하엘과의 첫 만남부터 저자의 당혹스러움은 시작된다. 한때 그는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여기고 극복하기 위해 (‘인간’ 여성과) 결혼을 택하고 우울증을 앓기도 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성적 지향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후 제1호 커밍아웃 주파일이 되어 제타의 설립을 주도했다. 그는 지금의 아내 ‘케시’와 아직 섹스한 적이 없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녀가 바라지 않으니까요.” 동물이 원하며 다가왔을 때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는 관계가 과연 가능한지 말문이 막히면서도 미하엘의 집에서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존재감이 동등한 공간’ 속에 있다고 느낀다. “빈번히 눈을 맞추며 종종 서로를 지긋이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을 실로 이어보면, 몇십 분 만에 촘촘한 그물코를 지닌 망이 방 한가운데 펼쳐질 듯한. 그 그물망 안에 있는 자신까지 개나 고양이와 서로 뒤얽혀 있는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생쥐 일곱 마리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며 각자의 퍼스낼러티를 파악하며 동거하는 남자 자샤 역시 동물과 ‘관계’를 맺은 적이 없지만 스스로를 주파일로 규정한다. “섹스를 화제로 삼아야 센세이셔널하니까 모두들 주파일의 이야기는 성행위에 한정해서 다루곤 해요.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렇지 않아요. 동물이나 세계와 맺는 관계성에 관한 이야기인 거죠.” “동물은 나에게 있어 ‘퍼슨(person)’이에요.”

‘주파일과 보낸 나날’이 던지는 여러 겹의 문제들

저자는 제타의 다양한 동물성애자와 만났지만 대부분은 “동물에게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퍼스낼러티가 있어요.”라고 입 모아 말한다. ‘퍼스낼러티’는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 생겨나거나 발견되는 개념, 즉 상대 개체만의 특별한 성격을 뜻하며, 그 전제 조건은 둘 사이의 ‘대등성’이다. 하지만 그러한 논리 뒤에는 여전히 생각해봐야 할 까다로운 논점과 복잡한 문제 제기가 도사리고 있다.
예컨대, 동물과 대등성을 추구한다면서 이 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는 ‘훈육’ 역시 필요한 배치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삶을 함께 누리는 파트너로서 그들(동물)의 성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개에게 마스터베이션을 해주며 그의 성욕을 ‘케어’하는 에드바르트는 인간의 필요와 편의에 따라 ‘거세’(중성화)로 동물의 성을 컨트롤하는 데 반대한다. 이 논의는 ‘동물의 아동화’ 즉 반려동물을 가족, 그중에서도 언제까지나 보호해야 할 ‘막내 아이’로 바라보는 우리 선입관의 문제에 직면한다. 이는 ‘동물성애’와 ‘소아성애’가 오버랩되며 이야기되는 상황과도 연결된다.

또 다른 격론은 ‘강제성’과 ‘폭력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저자가 만났던 ‘성스러운 주파일’ 가운데는 ‘패시브 파트’(동물의 성기를 받아들이는 수동적 입장)보다 액티브 파트(동물에게 성기를 삽입하는 입장)들이 자신의 섹스가 학대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으로 “주눅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한국어판 해제에서도 밝혔듯, 우리에게 만연한 가부장제 성문화(페니스 중심주의), 혹은 페니스의 폭력성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파일의 연대, 저자의 치유

이 책에는 조금 다른 입장의 주파일도 등장한다. 바로 주파일이 ‘되어가는’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성적 경험과는 별개로 지인의 커밍아웃을 접한 후 공감하여 섹스라는 행위의 유무가 아니라 태도로서 그 가치관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커밍아웃이란 자신의 궁극적인 문제를 주위에게 알리는 행위다. 이 행위에 의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서로 나눠야만 하는 일이 된다. 이렇게 ‘되어가는’ 사람들은 “주파일이라는 존재가 동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이며 그것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렇듯 다양한 ‘주파일’들이 연대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저자 역시 변화했다.

“내가 간직해온 섹스의 상처가 그들과 보낸 나날로 치유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한 단계를 끝냈다고 생각한다. 분노와 괴로움에서 눈을 돌리고 감아버리는 나는 더 이상 없다. 나는 지금 성폭력의 경험자로서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여 현재에서 미래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상처는 상처로서 여전히 남아 있음으로써 타자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기에.”

“머릿속에서 회오리바람이 부네요.”
함께 번역 초고를 읽으며 책의 꼴을 고민하던 북 디자이너 이기준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책을 디자인하는 첫 단계는 서체를 고르는 일입니다. 물건으로서의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글자니까요. 동물과 인간이 함께하는 공간이라면 어디에나 털이 널브러져 있듯 인간의 문자 사이사이에 털처럼 생긴 문장부호를 뿌렸습니다. 조금은 에로틱한 분위기의 로마자 서체를 섞었고요.

동물 털을 연상시키는 서체를 고르다가 괴상한 형태를 발견했습니다. 뾰족하고 둥근 선이 마구잡이로 뒤엉킨 모양이 털 뭉치 같아서 동물처럼 보이더군요. 언뜻 보면 글자인 줄도 모르게 생긴 실험적인 형태의 글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전혀 모르던 세계를 향해 나선 저자의 행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각 장의 시작 페이지에 이 폰트의 숫자(커다란 문양은 숫자 1, 2, 3, ...입니다)를 크게 강조해 넣으니 그래픽적 효과도 무척 좋았고요. 혼란한 형상, 여간 열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형태라고 할까요?“

표지와 뒷날개, 앞쪽 도입부에 사용한 혼란스러운 형상은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털뭉치 폰트’라고 불렀던 서체다. Saint Zoo를 반복해서 겹쳐 쓴 결과물이다. 흥미롭게도 강상중 교수가 추천사에서 언급한 “인간의 끝없는 ‘심연’ 혹은 ‘신비’라고 할 수 있는 예상 못한 깊은 ‘광맥’”, “저자와 함께 헤치고 들어가는 인간의 ‘성’과 관련된 ‘비밀의 동굴’”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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