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나는 왜 하필 돈까스일까?
먼 기억 속의 노스탤지어 · 한아름 돈까스는 한식이야 · 김권태 돈까스 백반 호쾌한 호프 스타일 · 삼보치킨 진정 왕이 될 상이로구나 · 성수돈까스 스케일이 다르다 · 역촌왕돈까스 필레의 끝판왕 · 가쯔야 돈까스와 치즈와 파스타의 이름으로 · 토리돈까스 Column 한 가지 음식 깊게 즐기는 법 나는 경기도 안양의 에버그린이다 · 에버그린 사랑하는 것과 더 사랑하는 것이 만날 때 · 카리카리 새로운 전통이 되다 · 가츠시 전국 최고의 학생식당 · 한국외대 학생식당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 · 망원동즉석우동 돈까스 가게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 돼랑이우랑이 중화일번 · 호호돈까스짬뽕 오직, 돈까스 전문 · The 92 산들바다 Column 내 인생의 돈까스 3선 너희가 튀김을 아느냐? · 오무라안 융합이냐 통섭이냐 · 돈가쓰살롱 운명적 생선까스 · 사가루가스 승리를 예감케 하는 맛 · 카바동 제일로 맛있는 집 · 젤로 맛있는 집 금보다 귀한 접객 · 최강금 돈까스 이것이 장인 정신이다 · 가츠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닙니다 · 옥동식 Interview 연어 전문점 ‘보편적 연어’ 사장님과의 돈까스 대담 파동 숙성육의 진가 · 카와카츠 프라하의 맛 · 더 보헤미아 바다 건너 제주에서 왔습니다 · 오제제 중국집 돈까스 · 향미 혼이 담긴 밥상 · 카츠 바이 콘반 커피와 카츠산도 · 커츠 Special 1 전격 비교! 집에서 즐기는 냉동 돈까스 Special 2 서울·경기 돈까스 지도 Special 3 돈까스 테이스팅노트 |
저이건우
관심작가 알림신청이건우의 다른 상품
야구에서 1번 타자처럼, 『돈까스를 쫓는 모험』의 처음을 장식할 첫 주자는 어디가 좋을까? 수백 곳이 넘는 가게를 다니며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돈까스를 무수히 만나왔지만, 의외로 결정하기는 쉬웠다. 내 마음의 영원한 노스탤지어, ‘한아름’이야말로 모험의 선봉에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1986년부터 명맥을 이어왔다는 한아름은 한성대학교와 인근 한성중고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는 가게다. 처음 개업 당시의 모습을 본 적은 없기에 외관과 내부 모습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요소에서 30년 이상 영업해온 베테랑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묵직한 메뉴판을 받아 들고 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탄성이 터진다. 그래, 바로 이거지!
---「먼 기억 속의 노스탤지어」중에서 얇은 고기를 바삭하게 튀겨내어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리고 치즈를 얹어 녹여낸다. 아주 뻔하고 익숙하지만 맛있을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마치 90년대 NBA 유타재즈의 존 스톡턴과 칼 멀론 콤비가 하던 매번 똑같은 픽앤드롤 플레이(pick and roll play)처럼, 예상 가능하지만 순식간에 나를 지배하는 이 맛에 눈 뜬 채로 오감을 내주고야 만다. 이미 음식이 나오는 순간 시선을 강탈당하며 솔솔 올라오는 향긋한 냄새의 포로가 된 상태에서 돈까스를 한 입 베어 무는 찰나에 절정을 이룬다. 눅진한 치즈가 입술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고, 튀김옷의 바삭한 소리와 촉감을 귀와 혀에서 동시에 느끼면, 비로소 새콤달콤 고소함이 입안에서 퍼져나간다. 아아, 이곳은 어디인가. 80년대 서울의 한 레스토랑일까? 아니면 가본 적조차 없는 파르마의 대를 이어 명맥을 지켜온 오스테리아(와인이나 간단한 음식을 파는 식당)일까? ---「먼 기억 속의 노스탤지어」중에서 외국 음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로컬라이징 되고 한국식 발음으로 이름을 얻어 점점 생활 속에 녹아드는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그 음식의 원형에 가까운 음식이 들어오면 현지 발음에 가깝게 부르며 차별성을 둔다. 쉬운 예를 들면 돈까스도 요즘 유행하는 정통 일본식 돈까스 가게에서는 ‘돈카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카레’라고 하면 한국식이나 일본식일 가능성이 높지만, ‘커리’라고 하면 인도나 동남아시아 혹은 서남아시아 스타일이다. ---「호쾌한 호프 스타일」중에서 내가 먹어본 왕돈까스의 역사는 성수돈까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데, ‘왕’이라는 수식어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돈까스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고 묻는 듯한 늠름한 자태, 그 당당한 위용에 살짝 주눅이 들 정도다. 왕돈까스는 고기를 얇게 펴서 만드는 게 보통인데, 이곳 돈까스는 고기가 그렇게 얇지도 않다. 덩어리가 크고 두꺼울수록 균일하게 튀기기 어렵기 때문에 크기에만 집착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맛을 놓치기 쉽지만, 이 왕돈까스는 놀라울 만큼 고르게 잘 튀겼다. “크고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겉모습이 그저 허장성세에 그치지 않으니 그야말로 ‘외강내강’의 돈까스라 할 만하다. ---「진정 왕이 될 상이로구나」중에서 돈까스 메뉴판에서도 이런 무신경함을 자주 마주한다. 한국식 돈까스 가게에서는 대개 문제가 없다. 설명이 필요한 메뉴는 정식 정도인데, 보통은 친절하게 괄호 안에 “돈까스+함박+생선까스”라고 써 두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본식 돈까스다. 일본식 돈까스 가게에 가면 최소한 메뉴가 두 가지는 있다. 바로 ‘로스(ロ-ス)’와 ‘히레(ヒレ)’다. 일본식 돈까스를 즐기는 분들이 많아져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전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로스랑 히레가 뭐가 달라?”라며 메뉴판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기회에 잠깐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필레의 끝판왕」중에서 이제는 빵을 같이 맛볼 수 있는 돈까스 가게는 귀한 편이다. 밥 대신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특별 대우를 받기는 해도 사실 빵 자체에 집중해서 본다면 그리 열광할 만한 이유는 없다. 빵이라야 마트나 빵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판용 모닝롤인데, 겉면을 살짝 버터나 기름에 지져서 주는 가게라면 그나마 훌륭한 편이고 대개는 그냥 그대로 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양식이란 자고로 식전에 주는 수프가 누구나 아는 대기업의 익숙한 맛이더라도, 식후에 디저트로 내주는 탄산음료에 김이 빠졌더라도 음식 맛과는 별개로 형식 자체를 구성 요소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데에 재미가 있다. 그러니 빵 또한 맛 자체보다는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운 것이다. ---「나는 경기도 안양의 에버그린이다」중에서 ‘너드미’라는 말이 있다. 괴짜, 따분한 사람을 뜻하는 영어 단어 nerd에 한자 미(美)를 붙인 단어로 ‘너드 같은 매력을 지녔다’는 뜻으로 쓰인다. 너드에 대한 정의는 폭넓고 완전히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상황마다 쓰는 사람마다 전혀 다른 뜻으로 쓰기도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너드란, 어떤 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이거나 혹은 그것만 파고들어 다른 모든 면에서는 허술하고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듯한 사람을 뜻한다. 식당 중에서도 이런 너드미를 발산하는 가게들이 가끔가다 있는데, 나는 매번 이런 가게에 끌린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The 92 산들바다’는 외관에서부터 너드미를 제대로 드러내는 가게다. 내가 주로 식당에서 너드미를 느끼는 요소는 간판인데, The 92 산들바다의 간판은 가히 너드미의 응축이라고 할 만하다. ---「오직, 돈까스 전문」중에서 일본에서 돈까스 원조로 알려진 도쿄 긴자의 레스토랑 렌가테이의 메뉴를 보면, 흔히 일본식이라 생각하는 돈까스보다는 오히려 한국식에 가까운 이른바 경양식 돈까스 형태를 띠고 있다. 원래 커틀릿이나 슈니첼,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먹는 비너슈니첼(Wiener schnitzel)은 송아지고기로 만든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처음에는 소고기로 만들었으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소고기는 대부분 통조림에 담겨 군용 식량으로 사용되었고, 상대적으로 사육 기간이 짧은 돼지고기를 쓰기 시작하며 돈까스 두께도 점점 두꺼워졌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고기는 돼지고기로 만들되 넓게 두드려 펴서 튀긴 돈까스로 정착했다. 이러니 현시점에서만 본다면 한국식이 유럽 원조에 보다 가깝다고 생각할 법하다. 물론 돈까스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이미 커틀릿, 슈니첼과는 확연히 다른 엄연한 한식이다. ---「프라하의 맛」중에서 그러고 보니, 돈까스를 빵 사이에 끼운 카츠산도에 양배추 코울슬로, 여기에 커피를 더하면, 밥과 국이 딸려 나오는 일본식 돈까스 정식을 구성 요소별로 재해석한 차림이 된다. 서양에서 건너온 커틀릿을 밥과 곁들여 먹는 정식으로 만든 돈까스, 이를 다시 서양식으로 재해석한 카츠산도와 커피. 이렇게 돌고 도는 음식 간의 관계를 생각하니 더욱 흥미진진한 식사가 되었다. ---「커피와 카츠산도」중에서 |
본캐는 일본어 번역가, 부캐는 돈까스 애호가가 안내하는
‘돈까스학’의 모든 것! 한국인치고 돈까스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로 많이 찾는 메뉴 상위권의 자리를 줄곧 지키고 있는 이 대중적인 음식의 세계는 기실 어찌나 넓고 깊은지, 칭하는 이름도 제각각이요, 사람마다 떠올리는 생김새도 모두 다르며 ‘경양식파냐 일식파냐’, ‘안심(히레)파냐 등심(로스)파냐’ 등 깨알 같은 논쟁거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돈까스를 쫓는 모험』은 일본어 번역가인 저자가 서울과 경기 일대의 돈까스를 쫓아다닌 모험의 기록이자, ‘최고의 돈까스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좇은 결과다. 음식을 맛보고 즐기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팝업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을 만큼 미식을 사랑하는 저자가 하고많은 음식 중 가장 사랑하는 메뉴는 돈까스. 저자는 ‘친숙하고, 다양하고, 재미있으며,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인 돈까스에 빠져 2017년부터 동명의 블로그 ‘돈까스를 쫓는 모험’(누적 방문자수 353,600)에 돈까스 품평을 써오고 있다. 매년 한 해의 돈까스를 결산하는 포스팅 ‘이 돈까스가 대단해!’는 업로드하는 족족 수많은 공감 세례를 받기도 했다. 추억의 경양식 돈까스, 바라만 봐도 든든한 왕돈까스, ‘히레파 vs. 로스파’ 일본식 프리미엄 카츠, 딸기잼을 곁들이는 슈니첼… 바삭한 튀김옷과 눅진한 소스의 대향연 『돈까스를 쫓는 모험』은 저자가 방문한 수백 곳의 서울·경기권 돈까스집 중 29곳을 엄선하여 담았다. 단지 맛집 가이드가 아니다. 다양하고 맛있는 돈까스의 세계를 모험한 지도라 할 수 있다. “밥으로 하시겠습니까,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정장을 차려입은 점원의 추억을 소환해내는 경양식 돈까스(‘에버그린’), 보기만 해도 배가 든든해지는 듯한 왕돈까스(‘성수돈까스’, ‘역촌왕돈까스’), 조각마다 맛의 뉘앙스가 다른 일본식 프리미엄 카츠(‘가쯔야’, ‘오무라안’ 등)처럼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돈까스뿐만 아니라 ‘이 조합이 어울린다고?’ 싶은 즉석우동집의 돈까스(‘망원즉석우동’), 대만인의 소울푸드인 중식 돈까스 파이구판(‘향미’), 딸기잼을 곁들여 먹는 슈니첼(‘더 보헤미아’), 그리고 ‘돈까스김치나베’처럼 본류의 곁가지에 있는 돈까스(‘가츠시’)도 빼놓지 않았다. 이 중에는 소문난 돈까스집도 있고 저자가 소개하지 않았더라면 좀처럼 몰랐을 법한 숨은 강자도 있어서 돈까스 맛집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는 맛집을 탐방하고 맛을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돈까스라는 음식을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보다 원론적인 방법을 안내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일단 여러 번 먹어보고, 먹다 보면 알아차리게 되는 ‘포인트’―돈까스의 색이나 튀김옷의 두께, 육질이 연하거나 단단한 정도, 밑간의 균형감, 소스나 다른 반찬과의 조화―를 눈여겨보고, 이 포인트를 중심으로 ‘한국식/일본식’, ‘(일반적이면) 정파/ (독특하면) 사파’ 등과 같이 분류 체계를 확립한 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면 돈까스 하나하나 고유한 개성을 지닌 저마다 다른 음식으로 좀 더 섬세하게 즐길 수 있단다. 물론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대원칙은 무엇보다 ‘즐거움’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일본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저자가 들려주는 음식에 얽힌 일본 문화나 역사, 언어와 관련한 해박한 이야기도 이 책의 묘미다. 정통 일본식 프리미엄 돈까스를 내는 가게에서는 왜 규범 표기인 ‘돈가스’ 대신 ‘카츠’라는 표기를 더 선호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이미 현지화된 ‘돈까스’와 이보다 시간이 지난 뒤 들어온 일본 본토 스타일의 돈까스를 구별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본다. 나중에 들어온 돈까스는 일본 현지 발음에 가깝게 부르며 기존의 돈까스와 차별성을 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또, 일본에서는 중요한 시험이나 회사 면접을 앞두고 돈까스 덮밥인 ‘카츠동’을 먹는 관습이 있는데, 그 이유는 돈까스의 ‘까스(일본어 발음으로 카츠かつ)’가 일본어로 ‘이기다’를 뜻하는 ‘勝つ’와 발음과 같기 때문이란다. 분식집이나 구내식당에서 자주 보는 ‘카레돈까스’와 일본식 카레 가게에서 판매하는 ‘카츠카레’의 차이점이 궁금하다면? 일본 식당 중 이름 끝에 ‘안庵(한글 독음으로는 ‘암’)’ 자가 붙은 식당이 소바 전문점을 뜻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펼쳐보자. 돈까스라는 크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더 많이 나누고 싶은 마음 ‘일개 돈까스인데?’ 싶다가도 읽다 보면 고집스러운 돈까스 철학에 묘하게 설득되는데, 누군가에게는 흔하디흔한 음식이지만 저자에게는 진심을 건 음식이 돈까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은 돈까스라는 크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에 관한 에세이라고 표현해도 괜찮겠다. 한 접시에 다종다양한 가니시가 한데 어우러진 돈까스처럼, 돈까스에 순정을 바친 저자의 마음과 맛깔나는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당신의 기억 속 돈까스를 소환할 것이고, “오늘 돈까스 어때?”가 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돈까스를 쫓는 모험』의 마지막은 나만의 돈까스를 찾아 모험을 떠나고 싶어 할 독자를 위해 특별하게 구성했다. 책에서 다루는 돈까스집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돈까스 지도’로 편리함을 더했고, ‘돈까스 테이스팅노트’를 수록해 돈까스도 한 잔의 와인처럼 음미해보도록 했다. 또한 ‘전격 비교! 집에서 즐기는 냉동 돈까스’ 페이지를 마련해 몇 년째 이어지는 팬데믹 시국에 집에서도 외식 부럽지 않은 미식 체험이 가능하도록 도왔다. |